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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구나무 May 18. 2022

한국인의 밥상

섬마을 빨랫줄에는 빨래보다 생선이 더 자주 걸린다. 갑오징어도 널리고, 잔 갈치도 걸린다. 서대나 박대도 단골이다. 시선을 압도하는 건 단연코 아귀다. ‘배고파 죽은 귀신’을 연상시키는 이름처럼 흉측스러운 몰골이다. 사납게 가시 돋친 검붉은 피부에 커다란 주둥이 더구나 내장까지 발라낸 허연 속살은 전혀 식욕이 돌지 않는다. 호기심에 사진기를 들이대기도 하지만 줄줄이 걸린 모습이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간혹 시커먼 파리떼라도 달라붙어 있다면 어떻게 저런 걸 다 먹을 생각을 했을까 싶다.       

        


바닷바람과 햇볕에 반쯤 말린 아귀는 꾸덕꾸덕한 식감 때문에 찾는 사람이 많다. 속풀이에는 맑은 지리로 끓여내는 탕이 좋지만, 콩나물과 미나리를 매운 양념과 버무려 먹는 찜이 인기가 많다. 걱정스럽던 겉모습과 달리 뼈나 가시가 억세지 않다. 군산이나 서천 같은 이름을 단 식당과 전문 체인점까지 생겨날 정도로 시장이 커졌다. 뱃사람들 말로는 아귀가 그물에 걸려 올라오면 ‘재수가 없다’며 버렸었다고 한다. 굳이 아귀가 아니어도 광어며 우럭이나 돔같이 값나가는 물고기가 흔했기 때문이란다.  

    

고군산 섬사람들 밥상은 ‘한국인의 밥상’에 가끔 소개되곤 한다. 새벽 찬 바람을 맞고 그물을 보고 온 자식의 허한 속을 달래주는 얼큰한 아귀탕. 무녀도 갯벌에 지천으로 널린 굴을 따다 끓인 칼국수 한 그릇. 꽃게가 제철인 계절에 빨갛게 버무린 양념게장과 간장 꽃게장. 출연자들은 ‘뭐 이런 거가 테레비 나올 꺼리냐’며 쑥스러워하면서도 진행자의 찰진 말솜씨와 넉넉한 웃음에 한껏 정성을 더 한다. 촬영할 때부터 떠돌던 동네 뉴스는 방송이 나간 후에도 한참이나 화제가 된다. 국민배우 최불암 씨와 함께 찍은 인증숏은 더없는 자랑거리다. 바지락을 캐는 공동작업을 할 때나 이웃끼리 어울린 저녁 술자리에서는 다음 출연자와 메뉴를 점찍기도 한다.      

바다에서 갓 낚아 올린 재료는 싱싱함이 묻어있다. 생명이 아닌 먹을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죄책감을 따지는 건 나쁜 관념론자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고리에서 인간도 자유롭지 못하다. 운명의 순간을 직감한 피식자의 몸부림에 꿈틀거리는 식욕을 느끼는 순간만큼은 우리도 포식자다. 포구까지 돌아가기를 기다릴 이유가 없다. 칼과 도마 그리고 초고추장과 소주 한 모금. 굳이 직업적 어부가 아니어도 그 맛을 못 잊어 휴일마다 낚싯대를 챙기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포구로 돌아오면 그물이 찢어지도록 물고기 떼를 만난 행운은 여러 군데로 나뉜다. 홀어머니를 모시는 형님네로 보내고, 나이 들어 더는 배를 타지 못하는 늙은 어부네로도 가고, 지난번 고마웠던 이웃 몫도 챙긴다. 바로 먹을 수 없는 것은 소금에 절이고 햇볕과 바람에 말렸다. 날씨가 궂어 뱃일을 못 나가거나 빈 그물을 털어야 할 때도 삼시세끼 끼니는 매일매일 돌아온다. 말린 생선과 젓갈은 냉장고는 물론이고 전깃불도 귀하던 시절에도 가족들의 배를 곯지 않게 했다. 나눌 줄 아는 지혜는 고립된 섬에서조차 마을이 살아남았던 명쾌한 비결이다. 남는 것은 뭍에 나가 팔기도 하고 쌀이나 과일로 바꿔 먹었다. 이 바다가 예전만큼 풍요롭지 못해도 아직껏 멸치를 말리거나 액젓을 담는 집들이 남아 있다.  

    

자연에서 나는 것들은 제철이 따로 있다. 봄철 주꾸미가 알을 품고, 어린 쑥이 자랄 무렵 도다리 맛이 땅기다가 여름 삼복더위를 민어로 견뎌낸다. 벚꽃이 만발하는 계절에는 알을 품은 꽃게를 잡지만, 가을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살 오른 수꽃게 철이 돌아온다. 바다에 의지해 살아가는 일이 고되다지만, 때를 놓치지 않고 맛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점 하나, 호사라면 호사다. 오죽하면 가을 전어 철이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속담이 생겼을까.      


섬사람들의 밥상은 소박하지만 따뜻하다. 마음이 담긴 밥상은 무언의 소통이다. 어머니의 밥상은 아들의 입맛에 맞춰 차려진다. 시원한 굴 칼국수 한 그릇을 나누자며 혼자 사는 이웃 언니를 부르는 건 애틋함이다. 손맛으로 담그는 게장은 멀쩡한 직장 때려치우고 배를 탄다며 자식 속을 긁어놓은 미안함이다. 호사스러운 표정도 없고 화려한 찬사도 생략된 화장기 없는 얼굴 같은 다큐멘터리가 벌써 십 년 넘게 장수하는 비결은 밥 한 그릇에 담긴 사연들 때문이기도 하다. 애틋하다. 먹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음식이 불러오는 아련한 추억으로 풋풋한 사람 냄새에 허기진 도시 생활의 빈자리를 채운다. 엄마 젖을 찾아 품을 파고드는 어린아이 같은 원초적 그리움이다. 바다에서 길들여진 입맛은 고향을 떠나도 잊을 수 없다. 더러 그 맛을 잊지 못해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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