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구나무 May 13. 2022

갯강구와 지네 그리고...

곤충昆蟲, 벌레, 전라북도 사투리로 ‘벌거지’ 또는 ‘버러지’라고도 한다. 분류학 용어인 곤충에 비해 벌거지나 버러지는 비하적인 냄새를 품고 있다. 사람에 빗대어 이런 표현을 쓰면 자칫 시비가 붙거나 멱살 잡힐 수도 있다. 벌레라는 단어는 학문적으로 엄격하게 구분되는 곤충보다 훨씬 포괄적으로 쓰여서, 학자들이 곤충이 아니라고 가르쳐도 사람들은 벌레라고 부르는 종류가 생각보다 많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곤충의 ‘곤’이 사람과 어울려 살기 곤란하다는 의미로 ‘곤란할 곤困’이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갯강구와 지네도 그렇다. 섬사람들은 그들을 벌레 또는 벌거지라고 일컫는다.       

   


섬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 또는 섬사람이 된다는 것은 이들과의 공존을 의미한다. 떠밀려온 물고기 사체 밑에서 구덕구덕 기어 다니거나 방조제에 그늘진 물구덩이에 득실득실 모였다가 발자국 소리에 순식간 흩어지는 존재. 징그럽다. 긴 더듬이 한 쌍을 곧추세운 흡사 바퀴벌레와 닮은 외형도 그렇고 절대 다가오지도 않으면서 결코 멀리 도망가지도 않는 습성 때문에 경계심을 떨쳐낼 수도 없다. 한두 마리도 아니다. 언제나 수십에서 수백 무리 지어 저만치 앞에서 흩어졌다 뒤돌아보면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오곤 한다. 그들은 떼를 지어 몰려다니다 밤에는 어두운 곳을 찾아 한데 모여 쉰다. 아침이면 해안가 주변 지저분한 쓰레기를 뒤져 먹는 잡식성이다. 뿌리는 바퀴벌레약으로 감당하기에 턱없이 많다. 포기하고 익숙해지는 도리밖에 없겠지만 시간과 인내심을 요구받는다.

      

신발을 찾으려고 시선을 내려놓는 찰나 번갯불처럼 질주하는 시커먼 그림자에 넋이 빠지는 때가 있다. 수건에 달라붙어 있다가 기겁을 하거나 무심결에 잡은 젖은 행주 속에서 꿈틀대는 무엇에 소름이 돋는 순간도 있다. 이 불청객은 방심의 순간에 가장 내밀한 방안까지 찾아온다. 이상한 낌새에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 보면 이불속까지 파고든 뻔뻔한 지네와 마주친다. 그렇게 짜릿한 만남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더욱이 지네는 갯강구와 달리 독을 지녔다. 목숨을 위협받을 정도로 치명적이지 않다고 알려졌지만, 더러 심하게 붓거나 통증 때문에 고생했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어쩌면 지네에 대한 공포는 독보다는 허를 찌르는 갑작스러운 출현 때문에 극대화되는 듯하다. 섬 목회 활동차 다녀갔던 뭍에서 온 사역자들의 기록에 한결같이 빠지지 않는 대목이 지네 이야기다. 충격은 몇 달이 지나도 쉽게 누그러들지 않는다.  


축축한 곳을 좋아하는 지네는 섬마을이나 산자락에 붙은 집 주변에 유난히 많다. 다른 계절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봄에 날이 풀려 번식기가 되면 짝짓기 때문에 자주 눈에 띄게 된다고 한다. 여러 민간요법이 있지만, 딱히 해독제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는데 말이 그렇지 막상 눈앞에 상황이 닥치면 오줌을 저릴지도 모른다. 좀처럼 친해지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갯강구와 지네는.  

   

반딧불이나 나비, 장수풍뎅이도 모두 곤충이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징그럽다고 하지 않는다. 어른 손가락 크기 풍뎅이 애벌레를 직접 만지기도 하고 나비나 반딧불이를 찾아 먼 걸음을 마다하지 않는다. 함평의 나비 축제나 무주의 반딧불이 축제는 해마다 성황이다. 곤충 보기 어려워진 도시를 찾아가는 곤충 전시회가 인기고 심지어 미용과 피부에 좋다는 식용 곤충 체험 코너도 발걸음이 밀린다.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이나 농촌에 새로운 활력을 모색하는 농민과 시군 지자체도 적극이다. 그렇다고 해도 갯강구나 지네로 고군산 생태관광 특성화 전략을 고민해보자는 말은 차마 못 하겠다. 더러 말린 지네가 약재시장에서 비싸게 팔려 부업을 하거나 술을 담는다는 건 알고 있다. 갯바위 낚시할 때 갯강구를 미끼로 쓴다는 글은 도감에서 읽었지만 실제로 그래 봤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나는 아직 이 섬에서 반딧불이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몇 해 전 새만금 방조제가 마무리되던 즈음, 부안 해창 해안 일대에서 엄청나게 출몰했던 늦반딧불이 소식은 알고 있다. 새만금 홍보관 인근이고 새만금 바다를 지켜달라며 세웠던 장승 무리가 가까운 곳이다. 원조를 자처하며 부안의 명물이 된 바지락죽 가게들이 몰려 있기도 하다. 소식을 전했던 이는 곤충농원을 운영하며 마을 이장도 맡아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원인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그 지점이 부안댐에서 흘러 바다로 이어지는 물길 때문에 늘 습해서 반딧불이 유충의 먹이가 되는 달팽이가 많기는 해도 몇 해 동안 반짝 개체 수가 늘었던 이유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 까닭에 무녀도 갈대 무성한 폐염전이나 신시도 논과 저수지 그리고 관리도의 버려진 농지에 무엇이 살지 궁금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풀숲을 눈여겨보았지만 두어 번 뱀에 놀란 다음부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별처럼 비상하는 성체를 확인하려면 해가 저문 다음 서너 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하겠지만, 아직은 늦반딧불이가 나오는 가을도 애반딧불이가 보이는 계절도 아니었다. 다만 아름다운 고군산군도 섬들의 밤 풍치에 낭만적인 상상력 하나 혼자 더해본다.      

이전 03화 한국인의 밥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