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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구나무 Jun 13. 2022

새만금 상괭이의 죽음

재빠르게 죽음을 감지해 낸 것은 후각이다. 해변 가장자리 모퉁이를 돌아서면서부터 짓무른 젓갈 썩어가는 악취가 코를 후벼 든다. 호기심에 이끌린 걸음이 바람 끝을 더듬어가다 꼬리가 자갈밭에 묻힌 한 물고기의 주검을 찾았다. 제법 다 자란 아이만큼이나 큰 덩어리의 실체는 ‘상괭이’다. 등지느러미가 없고 이마에서 턱까지 직선에 가깝게 내려온 안면부, 벌어진 주둥이 틈으로 드러난 이빨은 사람 마냥 고르게 자리 잡았다. 죽은 지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듯 등지느러미 자리는 깊게 짓물렀다. 윤기가 흘렀을 표피가 벗겨진 자리는 이미 진한 갈색으로 퇴색되고 있다. 파리가 들러붙은 눈두덩과 동전만 한 가슴팍 상처에서 구더기가 끓어 넘친다. 좀 더 가까이 시선을 붙여 보았지만 더는 주검을 들춰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기껏 이름 정도나 알고 있는 몽매한 바다 지식으로는 그 상괭이의 사인을 추론해낼 수 없었다.    

           


주민들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흔한 죽음일 뿐이란다. 눈요깃거리도 되지 않는데 호들갑스럽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모습이 도리어 별스러웠던지 지나가던 입들이 한 두 마디씩 적선한다. 한 해에도 두어 차례 겪는 일이라고 한다. 간혹 어부들의 그물에 걸려 죽기도 하고 지난 주말처럼 폭우가 퍼붓고 파도가 거칠게 들고일어나던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떠밀려온다고 한다. 죽은 상괭이를 먹어봤다는 이의 말로는 영낙없이 고래 고기 맛이란다. 지난봄 방축도 해변에서 그리고 말도 바깥 바다 쪽 송장배미 옆장불에서도 죽은 상괭이를 봤다. 섬사람들은 이 작은 고래를 ‘쇠물돼지’나 ‘무라치’라고도 불렀다.      


상괭이(Neophocaena phocaenoides)는 쇠돌고래과에 속하는 여섯 종 고래 중 하나다. 살았을 때 몸빛은 회백색이지만 어린 새끼는 윤기 나는 검은 빛깔을 가진다. 다 자라면 어른 키만큼 자라는데 등지느러미 대신 약 1센티미터 정도 되는 융기만 있어 배 위에서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바다와 강을 오가며 살아서 최근 한강 하류에서도 종종 눈에 띄곤 한다. 어느 환경단체가 ‘토종 돌고래를 살리자’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제법 알려졌지만, 예전에는 바다 일 하는 어부와 전문가나 알고 있던 종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 금지조약(CITES)’에 등록된 상괭이가 상업적 거래가 금지된 보호종이라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려진 사실이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지만, 우리 바다 서·남해에서는 비교적 흔하다. 고래연구소의 연구에 의하면 서해에만 3만 6천여 마리 정도 서식하며 우리나라 연안 전체에 약 4~5만 마리가 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도양 연안에서부터 동남아시아 그리고 일본과 한국의 바다에 널리 분포하지만, 하구를 끼고 수심이 얕은 바다를 좋아해서 조석 차가 크고 해안선이 복잡한 우리나라 서해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살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상괭이는 간혹 그 주검으로 생존 여부를 증명하거나 보호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시위하기도 한다.     

  

지난 2011년 2월 3일, 새만금 방조제 안쪽 호수에서 떼죽음을 당한 상괭이 무리가 발견됐다. 2006년에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4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최초 발견한 어부는 해양경찰에 신고했고, 나흘 후부터 수면에 떠 오른 주검과 연안으로 밀려온 사체들이 수거됐다. 수거 과정에서 폐사한 고래들이 대량으로 확인됐다. 대량 폐사한 상괭이가 발견되면서 새만금 방조제 안쪽에도 상괭이가 서식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2월 24일까지 3주간 확인된 개체만도 223마리였다. 고래류의 집단 죽음은 간혹 있는 일이지만 마지막 사체가 수거된 4월까지 총 249마리에 달하는 집단폐사는 유례없는 사고였다. 어쩌면 기네스북에 오른 새만금 방조제의 길이만큼이나 대단한 기록이 될 수도 있었다.          


지역 언론사 기자들이 취재를 나왔고 현장을 다녀간 환경단체가 즉각적인 성명서를 냈다. 성명서는 상괭이 떼죽음의 진상을 철저히 밝히기를 요구했고, 방조제 수문 관리의 허점을 지적했으며 새만금호의 수질 상태를 의심했다. 해수 유통의 필요성이 재차 강조됐고 ‘무분별한 생태계 파괴’와 ‘묻지 마 식 개발이 가져온 후과’라는 해석이 반복됐다. 사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전북대학교 수의병리학실로 옮겨진 사체 중 비교적 상태가 양호해 보이는 8구가 골라졌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에서도 연구책임자가 파견됐다. 부검 결과를 기다리는 눈과 귀가 많았다. 샘플 선정과 측정치에 대한 오류의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고 사전에 말이 새는 것도 신경 써야 했다. 공동연구는 결과치에 대한 해석에도 서로의 의견이 엇갈릴 수 있어 여간 부담스러운 작업이 아니다. 얼어 죽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사고 기간 인근 지역 기상 데이터가 수집됐다. 새만금에서 죽은 상괭이들의 영양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2010년 서해 연안에서 그물에 혼획된 77마리의 지방층 두께가 비교됐다. 8마리 중 수컷 한 마리와 암컷 세 마리가 해부되어 소화기의 내용물이 분석됐다. 수질오염에 따른 의심에 확답을 주기 위해 필요한 조직과 장기의 중독 여부를 확인해야 했고, 세균에 의한 감염이나 질병 여부도 빠뜨리지 않았다. 부검은 10일부터 2주간에 걸쳐 진행됐고 부검을 의뢰했던 기관에 최종 결과가 전달됐다.       


2월 25일 전주지방환경청 새만금 유역 관리단이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상괭이의 폐사와 새만금호의 수질 연관관계가 없다’고 머리말을 뽑았고 ‘한파로 인한 질식사’라고 끝을 맺었다. 한국농어촌공사 새만금사업단은 환경청의 발표를 인용하여 고래들의 죽음이 40년 만에 몰아닥친 한파 때문임을 재차 강조하며 혹시나 모를 비판의 표적에서 멀찌감치 비켜섰다. 얼마 후에 연구에 함께 참여했던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와 전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그리고 한국농어촌공사 새만금사업단의 연구자들 공동명의로 한국 수산 과학지에 논문이 발표됐다. 연구 논문은 다양한 근거들을 종합해 상괭이 죽음의 원인을 추적했지만 ‘물에 사는 고래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결론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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