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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구나무 Jun 09. 2022

섬마을 빈집

번듯한 펜션들 사이에서 문득 빈집 하나가 발길을 붙잡는다. 우체국 돌아 선유도 진말 안쪽, 마실 삼아 나선 길이었다. 도로에 인접해서 외지 지도 않고 선착장에서도 멀지 않으니 제법 목도 좋은 자리다. 

낮은 담장 너머 마당에 잡초가 우거지고, 빈 빨랫줄에 색이 바랜 집게가 하릴없이 남았다. 집안으로 드나드는 문은 꼭꼭 입을 다물었고 장독 단지며 신발 몇 켤레조차 없는 것이 작심하고 이사를 한 모양이다. 무슨 사연으로 집을 비웠을까.     


주인은 바닷일을 했었나 보다. 그물에 매달아 바다 위에 띄우던 부표가 길을 잃고 마당 한쪽에 뒹굴고, 물고기 대신 바람에 들썩이던 지붕을 붙잡아 놓은 허연 폐그물을 보니 왠지 그렇다. 안테나보다 성능 좋은 접시 수신기도 한쪽에 처박혔고 젓갈을 담았을 법한 고무통마저도 뒤집어 놓았다. 늦은 봄 빈집 마당엔 꽃 피기 직전 망초가 그득하다. 그 사이로 기득권을 주장하는 아주까리가 키를 키웠지만, 왠지 옹색하다. 남겨진 화분 몇 개는 일찌감치 명아주며 강아지풀이 차지했다. 아마 김양식이라도 했었나 싶다. 마당 가로질러 처마 여기저기 묶은 줄이 네 줄이고 두 개 장대가 늘어진 속옷 고무줄 같은 빈 줄을 겨우 붙잡고 있다.               



돌아가시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더는 힘든 바닷일을 할 수 없어 뭍에 있는 자식에게 간 것일까. 어떤 이유건 더는 사람이 살지 않는 옛집의 처분은 자식들 손에 넘겨졌을 테지만, 다시 섬으로 돌아와 살 자식들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처분하자니, 다리가 연결되고 길도 나면서 나날이 들썩이는 땅값 시세를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태어나는 아이는 없고, 돌아가시는 어른들만 남겨졌으니 섬 인구는 갈수록 준다. 빈집이 늘면서 애지중지 가꿔왔을 텃밭도 풀밭이다. 더러 연고가 있는 사람들이 낚싯배를 마련하고 집도 장만해서 귀촌한다지만 드문 일이다. 선유 2구 해수욕장을 끼고 몰려 있는 가게들도 밤이면 육지로 퇴근한다. 비수기에는 아예 며칠씩 장사를 접기도 한다. 고군산 일대 섬이 속한 옥도면 주민등록상 인구는 3천2백여 명(2022.1 기준) 정도라고 하지만 실거주 인구는 절반 정도 된다고 한다. 특히 겨울나기가 쉽지 않아 한겨울 섬은 사람 구경 쉽지 않다.    

   

학교는 더 심각하다. 해방 직후인 1946년에 개교한 선유도 초중학교에는 2022년 3월 현재 초등학생 4명, 중학생 7명이 전부다. 무녀도초등학교는 12명, 신시도초등학교는 야미도 분교 1명을 포함해 모두 5명이다. 아직 학교가 남아 있는 세 개 섬을 통틀어 초등학생이 21명이고, 중학생이 7명이다. 나머지 섬 학교들은 진즉 폐교됐다. 1991년에 고군산, 관리도, 말도 분교가 문을 닫았고, 이듬해 명도, 방축도 분교도 마찬가지다. 

              

연결도로를 내면서 헐린 고군산 국민학교 교정, 지금은 주차장이다.


그중 장자도에 있었던 고군산 국민학교는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반에 가장 먼저 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 기억으로는 그 이전부터 일본어를 가르치고 찢어진 신문지에 글씨 연습을 했었다고 한다. 남아 있던 학교 부지와 건물은 고군산 연결도로가 뚫리면서 주차장 터를 마련하려고 철거됐다. 단층 건물에 오래된 은행나무들을 뒤에 세운 학교였었다.


선유도 초중학교에는 그 당시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선유도로 유학 와야 했던 아이들이 쓰던 기숙 건물도 남아 있다. 날씨가 험한 주말에는 배편도 끊겨 내내 학교 운동장에서 놀거나 해수욕장 주변을 배회하기도 하고 아니면 교회에 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섬을 떠나면서 일찍부터 떨어져 지내는 가족이 많아졌다. 생업을 놓을 수 없고 자식도 가르쳐야 하는 고충이다.     

 

연결도로가 나고, 개발에 대한 기대는 새로운 인구 증가보다는 땅값이 먼저 알았다. 장자도는 평당 가격이 3백만 원까지 올랐다고 하고 연결도로 인근에는 평당 3천만 원짜리 매물이 나왔다는 소문도 떠돈다. 출퇴근처럼 오가는 사람은 있어도 아이들 데리고 들어오는 사람은 아직 드물다. 선유도 초중학교와 무녀도 초등학교는 올해 겨우 졸업식을 치렀다. 각각 한 명 학생을 졸업시켰지만, 내년에도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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