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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구나무 Jun 07. 2022

성자가 아닌 청소부

식객으로 지냈다. 그렇다고 그저 놀고먹을 수는 없었다. 잠시 다녀가는 여행길이면 모를까 제법 오래 묵기로 한 이상, 얹혀 지내기로 한 사촌 형의 뱃일과 식당 일을 거들기로 했다. 할 일은 많았다. 고장 난 펌프 수리를 돕거나 바람에 날려간 차양막 수선 같은 허드레 일도 그렇지만 식당 일은 특히 손이 많이 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환기부터 시키고 테이블과 바닥 청소로 시작한다. 주방에서 밑반찬 준비하는 거야 형수와 주방 이모가 전담하겠지만 어쩌다 손님이 몰리면 설거지부터 밀렸다. 형수는 주방을 넘나드는 시동생의 발길이 편하지 않은 기색이어도 극구 말리지는 않았다.      


일과가 마무리될 즈음이면 양동이로 두어 개 음식물 쓰레기가 나왔다. 대체로 매운탕을 끓여내는 횟집 차림이라 먹다 남은 생선 뼈와 조개껍질, 밑반찬 재료들이 뒤섞인 걸쭉한 찌꺼기는 곁에 오래 두기 어렵다. 어떻게 치워야 하나. 전용 봉투에 담아 내놓거나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이 따로 있는 도시가 아니다. 전용 수거 차량을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잠깐 서서 머뭇거리는데, 사촌 형이 그냥 바다에 버리란다. 대부분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들이니 돌려보내면 바다가 알아서 할 거라며. 생각해보니 그 말도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찜찜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연결도로가 나기 전, 쓰레기는 감출 수 없는 섬의 또 다른 풍경이었다.


소각용 폐기물은 마을로 들어오는 귀퉁이에 버렸다. 어느 정도 양이 모이면 태웠다. 불을 놓는 사람이 따로 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분명 누군가 불을 놓았고 시멘트 블록으로 둘러싸인 쓰레기 더미는 시커먼 연기를 내뿜었다. 간혹 부탄 가스통 터지는 소리도 들렸다. 태울 수 없는 쓰레기나 고장 난 가전제품 처리는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마을마다 고물을 모아놓는 장소가 따로 있었다. 대체로 눈에 잘 띄지 않는 외진 곳이나 별도 가림막을 해둔 장소를 기웃거리면 김 양식에 쓰였던 파란색 약품 상자들이나 녹슨 자전거부터 사라진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 따위의 행방을 추적할 수 있었다. 선유 3구 선착장 한쪽에는 아직 번호판조차 떼지 않은 봉고차도 있고 숙박 손님을 실어 나르던 전기 카트도 여러 대 있었다. 규모는 제각각이지만 이런 공간은 고군산군도 섬마다 있었다. 주로 배가 닿는 선착장 구석 자리였다. 사정을 알아보니 1년에 한두 차례 대형 바지선에 실어 군산으로 실어 낸다고 한다.      


말도에서 만난 전임 옥도면장은 깊은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쓰레기라고 했다. 섬 둘레를 따라 골진 자리마다 파도에 밀려오는 쓰레기는 규모도 파악하기 어렵고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 바다를 건너온 중국발 페트병도 있고 인근 바다 양식장에서 떠밀려온 부표용 스티로폼, 버려진 어구들이 가득하다. 더러 조류를 따라 떠돌던 폐그물이 항해하던 선박의 스크루에 감기는 사고도 일으킨다. 무전 시설이나 수리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소형 선박 같은 경우 먼바다로 떠밀려가거나 불상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위험천만한 일이다. 간혹 인터넷에는 플라스틱 빨대를 꽂고 신음하는 거북이나 뱃속 가득 플라스틱을 삼킨 채 해변으로 떠밀려온 죽은 새의 영상이 떠돈다. 몇 해 전 방영된 어느 다큐멘터리는 태평양 한복판 한반도 면적의 7배가 넘는 플라스틱 섬의 존재를 알리기도 했다. 정말이지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이다.          


발길 닿지 않는 구석구석, 바람과 파도를 타고 흘러든 쓰레기는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


생명을 키워내지 못하는 바다, 그 바다가 품은 섬의 운명도 매한가지다. 생기를 잃어가는 바다를 지켜보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있다. 해변으로 밀려온 폐기물로 작품도 만들고 교육도 하는 예술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어느 스쿠버다이빙 동호회가 바다 밑바닥 쓰레기를 주워내는 봉사활동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도 있다. 올레길에서는 ‘클린 올레’ 캠페인을 벌인다. 올레꾼들이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모아 지정된 장소에 모아두면 수거해간다.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도 줍는 소위 ‘플로깅’이나 ‘줍깅’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아예 ‘제로 웨이스트’를 선언하거나 ‘미니멀 라이프’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행사를 기획하고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 귀한 존재다. 성자가 아닌 이상 자신이 버린 것도 아닌 쓰레기를 줍는 일이 어찌 신나고 재미나는 놀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한결같이 즐거운 표정들이다.      


자동차로 손쉽게 닿을 수 있는 섬,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다. 덩달아 새로운 골칫거리도 따라올 것이다. 전기며 물 소비도 늘 것이고, 주차장 부지도 마련해야 한다. 제때제때 쓰레기도 치워야 한다. 군산시나 관련 기관에서 대책도 마련하고 예산도 세우겠지만, 식당이나 상점 그리고 펜션을 운영하는 주민들 고민도 필요한 일이다. 번거롭고 마땅찮은 일에 솔선수범할 사람이 많지 않기에 예상되는 바가 없지 않지만, 더는 예전처럼 살 수는 없다. 너무 편하게 지내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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