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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구나무 Jun 20. 2022

무녀도 모감주나무

뭉게구름이 그려내는 여름 하늘이 상상력을 키워낸다. 호랑이 구름에 쫓기던 토기가 양 떼 무리에 급히 몸을 숨기더니 커다란 아가리를 벌린 용으로 변신하자 주춤하던 호랑이가 혼비백산 흩어지고 만다. 지루한 오후 일정이 따분했던지 구름 사이 태양도 숨바꼭질을 마다하지 않는다. 징검다리를 겨우겨우 건너듯 나무 그늘로 옮겨가며 걷는 걸음인데도 등짝은 벌써 땀이 찬다.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솔숲 아래 바람처럼 맑지 않다. 무겁고 끈적한 공기는 땀을 식히지 못하고 목덜미는 이미 버석거리는 소금기로 꿉꿉하다.      


바닷물이 밀려 나간 무녀도 서들이 마을 앞 갯벌은 뙤약볕에 무방비로 맨몸뚱이를 드러냈다. 조각 그늘 하나 없이 숨통을 조여 오는 적막만 바짝 엎드려 있다. 이 계절에는 바지락 공동작업도 쉰다. 사람만 힘든 게 아니다. 7월의 태양 아래서 칠게도 구덩이 속으로 몸을 감추고 바지락도 펄 속 깊이 파고든다. 모처럼 쉼표가 찍힌 갯벌의 고요가 바다를 끼고 살아가는 생명들에게 힘든 고비 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작은 안내판 하나가 잡풀 더미 사이에서 눈길을 끈다. 천연기념물로 알려진 모감주나무가 자라는 군락지라고 소개하고 있다. 지자체에서 세워둔 듯싶은데, 바랜 사진과 흐릿한 글씨가 초췌하다. 귀한 존재이므로 보호가 절실하다고 적힌 글씨는 무기력해서 가슴을 무찔러 들지 못하고 표지판은 권위를 가지지 못했다. 가까이 서너 그루 그리고 선유도 망주봉 방향으로 뻗어나간 섬 자락을 따라서 드문드문 이십여 그루가 보인다.      


붉은 꽃심을 품은 황금색, 뜨겁게 피워낸 열정이 폭염에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다. 여름 장마가 시작되기 직전 꽃을 피운다. 꽃이 드문 계절인 탓인지 짙은 노란색 꽃이 파란 하늘 아래 더욱 유난하다. 서양에서는 황금비를 불러온다고 알려져 있다. 비바람 속에서 선연한 꽃비가 뚝뚝 떨어지면 나무 발치 아래에도 꽃이 핀 듯 환하다. 번영이라고 했던가. 누구의 상상력인지 몰라도 꽃말을 지어 붙인 사람의 마음이 묻어난다. 꽃이 지고 나면 미색의 꽈리가 부풀어 오를 것이다. 세 개로 나뉜 방마다 작고 단단한 구슬이 두 개씩 들어찬다. 검은 광택을 내는 열매는 새끼손톱만큼이나 작지만, 금강석처럼 단단해서 ‘금강자’金剛子라고 불릴 만큼 야무지다. 절에서는 이 열매로 염주를 만들어 썼다고 한다. 한 알 한 알 손에 쥐고 넘겨 가며 비는 간절한 소망이 무엇이었을까. 가족의 건강과 자식들의 성공, 더러는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거나 사업이 번창하기를 바랄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사찰마다 내걸리는 연등이나 기와 불사에 적힌 염원들은 한결같다.      


국내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군락지는 세 군데다. 태안 안면도와 완도 대문리 해안 그리고 포항 발산리 해변이다. 1962년 12월 천연기념물 제138호로 가장 먼저 지정된 안면도 군락지는 어른 키를 훌쩍 넘는 모감주나무 400여 그루가 방포해수욕장 해변과 마을 경계에 자리 잡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완도 대문리 군락지는 474주 나무가 완도의 북서쪽 해안선을 따라 약 1킬로미터, 폭 40~100미터 장방형 모양을 갖추고 있다. 압록강 하구와 황해도 장산곶 근처에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혹 내륙지역에서도 눈에 띄지만, 주로는 해안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여러 가설에도 불구하고 원산지인 중국에서 바다를 건너왔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모감주나무의 존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지난 2018년 9월, 3차 남북정상회담차 평양을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백화원 초대소에 10년생 모감주나무를 기념식수했다. 황금색 꽃처럼 남과 북의 번영을 염원하자는 취지를 설명하며 열매의 쓰임새도 덧붙였다. 방송과 신문에 대서특필 되면서 관심을 끌었고 얼마 전부터는 정원수나 가로수로 심기도 할 만큼 인지도가 높아졌다.      



만질수록 윤기를 더해가는 열매는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를 견뎌내려는 견결한 의지로 읽힌다. 꽃이 진자리에서 상처가 아물며 여무는 것이 씨앗이다. 무엇하나 의지할 데 없는 바닷가에서 거친 해풍을 견뎌내던 시련과 소금기 날려 드는 척박한 땅에 뿌리내려야 했던 제 운명의 아픈 기억들처럼 황금시대를 꿈꾸는 꽃들의 희망은 역설이다. 현실이 힘들수록 간절해지는 기도같이 꽃들의 역설은 비극이고 씨앗에 담기는 사연 또한 애절하다. 검정 빛깔에는 생로병사에 대한 고뇌도 부귀영화에 대한 들뜬 바람도 절제되어 있다. 삶에 대한 욕망도 죽음을 너머 자라지 못한다. 무채색 죽음에 어울리는 검정은 세상의 모든 색깔을 품고 있다. 검정은 색깔 있는 모든 것들의 귀환이다. 황금색 꽃의 명멸도 짙은 녹음으로 활력을 불어넣던 이파리들의 소멸도 마침내 검정으로 소환된다. 모든 욕망과 잠재력이 알갱이 하나로 응축되어 세대를 넘고 죽음의 경계마저도 넘어선다. 그렇게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잎이 나고 가지가 자라며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번성해간다. 맞물려 물고 물리는 삶과 죽음이 순환하는 원리가 이 작은 알갱이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         

      

무녀도 서들이 마을은 선유대교를 건너 모감주나무 군락지를 지나면서 시작된다. 긴 혀를 내민 개들도 제집 그늘 속에서 낯선 길손에 무심하다. 근처 군락지에서 옮겨 심었는지 정원에 황금색 꽃이 집집마다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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