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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구나무 Jun 17. 2022

가깝고도 먼 섬, 관리도

관리도는 가깝고도 먼 섬이다. 

육지로부터 연결된 도로가 장자도에서 끊기면서 더욱 그렇다. 장자도 선착장에서 바라보면 직선거리로 2킬로미터 남짓 코앞이고, 배로 10분이면 건널 수 있다. 하지만 따로 배편 없이 객선을 타려면 하루 두 번뿐이다. 그것도 날이 좋을 때 이야기다. 바람이 거세거나 안개라도 들이닥치면 여객선도 장담할 수 없다.


섬은 남북방향으로 가늘고 길쭉하게 뻗었다. 대장봉에 오르면 한눈에 잡히는 꼬챙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꽂을 관(串) 자를 쓴 이름을 얻었다. 고군산 섬 무리 중 맨 서쪽 가장자리에 울타리를 두른 듯 솟아 한겨울 매섭게 달려드는 북서풍의 거친 숨을 달래 놓는다. 어쩌다 안개가 자욱한 날 아침, 섬 봉우리가 하늘에 떠 있는 모습을 드물게 볼 수 있다. 그런 날 섬은 턱밑까지 바짝 다가와 있다. 마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천공의 섬, 라퓨타처럼.               



여객선에 오르면 자리에 앉을 새도 없이 내릴 준비를 해야 한다. 좁은 해협 사이, 관리도의 수문장 같은 시루섬을 지나치면 바로 선착장이다. 수심 탓인지 선착장은 마을이 있는 포구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다. 평일 오후 배에는 외지 손님도 없다. 육지에서 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주민 두엇이 전부다. 겸사겸사 장을 봤는지 묵직한 보따리가 한 짐이다. 접안하는 짧은 사이, 선원의 손길까지 더해 짐 내리기는 순식간이다. 미리 연락이 있었던지 전기 카트가 마중을 나와 있다. 짐을 옮겨 싣고 덤으로 얹혀간다. 선착장 초입에 들어선 발전소가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90년대 초반에 지어졌다고 한다. 카트는 전봇대가 세워진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간다. 통성명을 하고 누굴 찾아왔는지 묻더니 내비게이션보다 친절한 길 안내는 물론이고 아예 집 앞까지 실어다 준다. 담장도 대문도 따로 없다. 스물일곱 세대가 사는 곶지마을은 안쪽으로 깊은 포물선 포구를 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다. 주민등록상 인구는 130여 명이지만 실거주자는 육십여 명 안팎이라고 했다. 지붕 색깔도 가지각색이다. 마을 안쪽에 나지막한 교회가 있고, 국민학교가 있었던 자리는 새로 들어설 캠핑장 조성 공사로 어수선했다.               


마을 구경삼아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중년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전혀 낌새 챌 수 없었는데 파출소장이라고 한다. 두어 마디 말을 섞다가 아예 파출소로 초대받았다. 팽나무가 있는 포구 길 끄트머리 옆쪽 언덕이다. 태극기가 걸려 있는 유일한 관공서 건물이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는데 차도 한 잔 내어준다. 책상 하나, 컴퓨터와 전화기 한 대씩 그리고 대화를 나눌 작은 공간에 자취 살림하는 숙소가 뒤쪽에 딸렸다. 무기 저장고나 유치장 같은 시설은 따로 없냐고 농담 삼아 물었더니 무전기와 아까 순찰 돌 때 타고 나갔던 자전거가 비품 전부란다. 대간첩작전 임무가 있었던 오래전에는 젊은 전투경찰도 서너 명 근무하고, 돌아가며 초소 경계 근무도 서며 실탄 지급도 받았지만, 요즘 같은 시절에 어느 간첩이 배 타고 침투하겠냐며 웃는다.      


파출소장은 고군산군도에 침투했었던 간첩 사건을 들려준다. 60년대 말쯤, 관리도에서 이십여 킬로미터 떨어진 십이동파도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 당시 세 가구 정도가 살고 있었던 섬이었는데, 무장한 간첩들이 주민 두 명을 납치해간 사건이다. 그 사건 이후로 고군산군도 일대 섬 중 소규모 마을들이 소개됐다고 한다. 관리도만 해도 3개 마을이 있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곶지마을로 강제 이주하면서 나머지 두 개 동네가 사라졌다. ‘설록금’이라고 불리던 부근에는 약 만 평정도 논도 있었고 쌀도 팔십 가마니 정도 냈던 모양인데 농사지을 사람들이 떠나면서 지금은 갈대 무성한 습지로 버려졌다. 반공이 국시였던 시절이니 좋다 싫다 한 마디 못하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해야 했던 아픈 역사다.      



소장은 혼자 근무했다. 관리도뿐만 아니라 인근 섬들 대부분 형편이 그렇다고 한다. 일주일에 절반 정도는 섬을 떠나 있고, 한여름 피서철에는 아예 두어 달 선유도로 파견 나가 섬을 비워야 하지만 별 탈 없을 정도로 주민들은 순박하다. 비밀도 없고 더는 훔쳐 갈 것도 남지 않은 섬이다. 관리도까지 찾아오는 관광객도 많지 않아 따로 신경 써야 할 일도 적은 편이다.       


섬 근무가 딱히 힘들지는 않지만, 가끔 섬 안에 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한다. 사람 사는 곳이니 섬 주민들 사이에도 종종 다툼이 일어 서로 욕설을 퍼붓거나 멱살을 잡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파출소까지 끌고 오거나 경찰이라고 신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도 혹시 싶어서 현장에 나가 보지만 또 다른 누군가 나서서 말리거나 대부분 알아서 정리한다고 한다. 겉으로야 별것도 아닌 시시콜콜한 일 같지만 오랜 시절 묵은 감정이 뒤엉킨 갈등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어설프게 나섰다가 불에 기름 붓는 꼴이기 때문이다.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그는 퇴직하면 섬에 묻혀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나누고 돌아 나오는 파출소 뒤쪽 오솔길은 관리도 뒤편으로 넘어간다. 힘겨운 고군산의 하루를 지켜왔던 지친 해가 능선 너머 서해 먼바다로 기울어 간다. 마지막 순간을 노리는 바다는 거침없이 붉기만 하다. 산자락 아래 마을은 이미 어둠의 차지다. 전봇대마다 매달린 가로등이 불을 밝히면 섬은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무너진 틈으로 슬며시 몸을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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