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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구나무 Jul 04. 2022

섬마을 잔치가 있던 날

잔치가 늦어지고 있다. 갑작스레 몰려든 불청객 때문이었다. 군산에서 귀빈들을 실은 배는 아직 도착하지 못하고 있다. 여객선이 포구에 들어오기 직전부터 해무는 북서쪽에서 불어온 바람을 타고 섬 뒤쪽 능선을 넘어 스멀스멀 행사장을 선점하고 있었다. 행사를 주관하는 청년회장과 이장이 번갈아 전화 통화를 하고, 마이크를 잡은 진행자가 간간이 양해를 구하는 안내를 했다. 그러나 20여 분이 넘도록 늦어진 개회식 때문에 불평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펜션 단지 뒤쪽으로 차양을 드리우고 마련된 테이블에는 이미 음식들이 푸짐하게 차려졌고, 일찍부터 자리한 주민들 사이에는 벌써 서너 잔 술잔이 돌고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부녀회원들이 전을 부치고 싱싱한 회를 추가 주문받으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오늘은 섬마을 한마음 잔치가 열리는 날이다. 방축도, 명도, 말도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매년 초여름 세 개 섬이 번갈아 가면서 행사를 주관한다. 올해는 말도 차례다. 얼추 이백 명이 넘어 보인다. 이 많은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 살고 있었을까 싶다. 고군산군도 가장자리에 따로 떨어진 이유 탓인지 섬 주민들끼리 유대 관계는 남다르다. 새만금 사업이 추진되기 전에는 고군산 일대 전체 섬 주민들이 모여 체육대회를 했었다지만, 개발사업에 대한 의견 충돌 때문에 더는 그런 자리가 없다고 한다.      


손님들이 도착하면서 개회식이 진행됐다. 두루 무슨 무슨 기관과 단체 대표들이 줄지어 마이크를 잡았다. 한결같은 인사말은 계절 인사로 시작해서 자신들의 치적을 늘어놓다가 짧게 갈음한다는 말로 아쉬운 마이크를 넘기곤 했다. 연단에 오르는 연사가 바뀔 때마다 박수가 반복됐다. 먼 걸음을 했으니 그 정도 인사치레는 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빨간 마후라에 조종사복을 입은 전투비행단장도 축사를 했다. 그의 인사는 좀 남달랐다. 무대 뒤편에 수북하게 마련한 경품 소개를 한참 했다. 청소기, 제습기, 선풍기, 커피포트 등등 크기와 색깔도 제각각인 세간살이 상자가 가득하다. 주민들 반응도 상품 소개 때마다 이어졌다. 아마도 직도 사격장 때문이라 짐작됐다. 개회식 행사는 감사패 전달로 마무리했다. 자리를 마련하느라 애쓴 몇몇이 패를 받았다. 뱃일이 기다리는 사람들은 1부 행사가 끝나자 물때에 맞춰 자리를 떴다. 늘어지던 인사말에 지루했던 건 사회자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각설이 복장을 한 그는 무선 마이크를 챙겨 들고 아예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텔레비전을 켜놓은 것처럼 무대 위에서 축하 공연이 진행되는 사이, 각설이는 객석 여기저기를 누비며 흥을 돋웠다. 노련한 솜씨 덕에 분위기는 금방 달아올랐다. 기다리던 노래자랑 시간이다. 마을마다 명가수로 꼽히던 단골들이 빠짐없이 소환됐다. 대략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흥에 겨운 사람들이 너나없이 무대 앞으로 나가 춤을 췄다. 원색의 나들이 복장에 선글라스까지 멋을 부린 이와 몸빼 바지에 앞치마를 두르고 밭일할 때 쓰는 모자를 한 말도 부녀회원도 어울렸다. 춤판은 초대 가수가 노래할 때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고전적인 관광버스 춤에 학창 시절 막춤에 엉거주춤한 이장 춤까지. 막판에는 말도 최고령 할머니도 불려 나왔다. 흘러나오는 반주 따로 각자의 춤사위 따로였지만 아이들처럼 신이 났다. 잠시 전 인사말을 했던 이들도 술자리에 끼었다. 직함보다는 형님 동생으로 서로를 불렀다. 더러는 행사장 뒤쪽에 따로 모여 담배를 피웠다. 뭔가를 따지려는 이와 쩔쩔매는 시의원의 표정은 멀리서도 심각해 보였다.     

     

11시에 시작한 잔치는 오후 객선 시간을 훌쩍 넘기도록 이어졌다. 그래도 마무리를 서두르는 사람은 없었다. 언제까지 행사를 마무리할 것이라는 안내도 따로 없다. 술이 떨어지고 안주가 바닥날 때까지 제풀에 지쳐 돌아갈 때까지 계속할 낌새다. 행운권 추첨을 시작한다는 방송이 나오고서야 춤판이 겨우 진정됐다. 초대 가수가 먼저 두어 장을 뽑았고, 아직 남아 있던 귀빈들도 차례로 추첨을 했다. 세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으면 다시 뽑았다. 경품이 바닥날 때까지 뽑고 또 뽑았다.      



삶이 무겁고 심각해 보이다가도 생각보다 단순할 때도 있다. 같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마주 보며 춤을 추고, 아이들처럼 어울려 노는 것. 3개 섬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그렇게 모여서 먹고 마시고 춤추며 놀았다.

2023년이면 세 개 섬과 중간중간 보농도와 광대 섬을 잇는 다리가 놓인다. 물론 주민들을 위한 다리는 아니다. 포구를 끼고 앉은 섬마을끼리는 배가 더 빠르고 편하다. 그래도 섬 주변으로 탁 트인 바다를 끼고 오르락내리락 파도처럼 이어진 트랙킹 코스가 완성되면 지금보다 형편이 한결 나아질 것이다. 물고기가 줄어가는 걱정에 관광객의 마음을 낚아야 하는 새로운 고민도 늘어갈 테지만. 초여름 해가 이울어갈 무렵 사람들은 저마다 배를 타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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