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
느끼한 표정의 중년 남성은 그녀를 보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를 옆에 앉히고는 과일 안주 한 개를 집어 강제로 그녀에게 먹이려 했다.
그는 이미 한참을 술에 취해있었다.
그녀는 억지로 과일 하나를 입에 넣었다.
중년 남성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옆에 앉은 그녀에게 계속 추근거리며 두꺼운 손바닥을 그녀의 허벅지에 올렸다.
살짝 손을 밀쳐냈지만 그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중년 남성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는 맥주를 한 잔 따라 그녀에게 마시라고 강요했다.
그 남자의 손이 그녀의 어깨에서 가슴으로 슬그머니 미끄러졌다.
그녀가 다시 한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자는 자신의 명령을 거역한 반역자를 보듯 분노로 이글거리더니 따귀를 올려붙였다.
"뭐야? 뭐 이런 X이 다 있어? 가라오케에서 일하는 X이 어디서 함부로 성깔을 부려! 너도 내가 만만해 보이냐? X 같은 것들이 어딜 가나 나를 무시한단 말이야. 이런 것들은 좀 맞아야 한다니까. 안 그러냐? “
그는 동료들에게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는 듯 동료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부장님 참으세요. 김이사가 오늘 회의에서 부장님을 그렇게 깐 건 정말 너무했어요.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사장님이 계신 자리에서 어떻게 그렇게 부장님을 깔 수 있는지. 김이사도 자기가 사전에 보고 받을 때는 전반적으로 잘된 거 같다고 했잖아요.”
아마 그 부장이라 불리는 남자는 회사에서 공들여 준비한 프로젝트 기획안이 사장님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받은 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팀원들과 술을 마시고 2차로 가라오케를 찾은 듯했다.
팀원의 말이 오히려 그의 아픈 곳을 자극했다.
“아 씨 X 내가 가라오케 애들한테까지 무시받아야 하냐고? 너 이리 와.”
그 남자는 사달이라도 낼 듯 그녀에게 다가갔다.
팀원들은 부장의 기세에 눌려 제지할 엄두도 못 내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달려들어 그 중년 남성의 손을 깨물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그 남자는 야만스럽게 움켜쥔 주먹으로 그녀의 얼굴을 후려쳤다.
가냘픈 그녀는 휘청거릴 새도 없이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그것도 성에 안 찼는지 쓰러진 그녀의 몸 위로 사정없이 발길질을 했다.
도우미 아가씨들은 비명을 지르며 매니저를 찾아 뛰쳐나갔다.
매니저와 기도가 방에 도착한 후에나 간신히 매질이 멈췄다고 했다.
매니저는 손님에게 싹싹 빌었다.
술값과 안주값을 받지 않겠으니 노여움을 풀라고 했다.
애걸복걸 간신히 달래서 보냈다.
그녀의 찢어진 입술에서는 선홍빛 피가 흘러나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얼굴은 퉁퉁 붓고 멍투성이가 되었다.
그래도 독하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
현기증에 비틀거리며 제대로 서지도 못했지만 오히려 그녀의 눈빛은 생기가 돌고 뭔가 결심한 듯 결연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N 매니저는 그날의 비용을 그녀의 급여에서 차감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며칠 뒤 공안이 J가라오케를 덮쳤고 불법적으로 아가씨들을 고용해서 영업하던 그 업소는 한 달간 영업정지를 당했다. 아마도 그 중년 남성의 신고가 아니었을까 N매니저는 생각했다.
그 뒤로 그녀를 본 사람은 없었다.
나의 입은 이미 바짝 메말라 있었다.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바람에도 휘청거릴 것 같은 순하고 착해 보이는 그녀가 무엇 때문에 그 독한 삶을 살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그녀에 대한 이미지는 도미노처럼 하나둘씩 쓰러지고 쓰러져 완전히 해체되었다.
한때 그녀는 나에게 슬픔과 함께 경험해 보지 못한 광채와 기쁨을 주었다.
그런데 이제 그 기쁨에 대한 청구서가 날아온 것 같았다.
베트남에선 외국인이 토지를 매입하거나 건물을 소유할 수 없었다.
당연히 모든 부동산의 명의는 그녀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그녀가 원하다면 나의 동의 없이 언제든 매매가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나는 눈물이 날까 짐짓 도로 건너편 나무 그늘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런데도 나의 눈에 이윽고 얇은 눈물이 드리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 상황에서 돈에만 온통 신경이 가있었던 내 속물근성이 부끄럽기만 하다.
'그래. 그깟 돈 얼마 된다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지 뭐.'
그랬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멀리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잘살아보겠다고 악을 쓰며 애쓴 노력이
어처구니없는 사기를 당했다는 것이 서러웠다.
그 보다 이 사기의 중심에 그녀가 있다는 것이 더 억울했다.
내 애틋한 마음이 배신을 당한 것이었다.
"과장님 괜찮으세요? 아휴 더위 먹으신 거 아니에요? 시원한 물 좀 드세요."
N매니저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에게 가야 했다. 가서 따지든, 화를 내든 이 사실에 대한 변명이라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복수심만큼 잘 듣는 처방도 없다.
이글 거리는 복수심으로 나는 다시 길을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카페에 도착했다.
그녀는 땀으로 흠뻑 젖은 나의 모습과 분노에 찬 눈빛을 보고 자지러질 듯 놀랬다.
"오빠, 걸어서 온 거예요? 택시 안 탔어요? 미안해요. 난 당연히 오빠가 택시를 타고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나의 분노를 단순히 그녀가 나를 두고 혼자 가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순진한 반응에 더욱 울화가 치밀었다.
"나 조금 전에 N매니저를 만났어요. 그리고 당신에 대해 모든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녀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호아 씨, 당신 호찌민대학교 출신도 아니고 가라오케 업소에서 일하는 여자였다면서요?"
나는 최대한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충격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미안해요. 오빠. 속일 생각은 없었어요."
"그래. 나한테 접근한 이유가 뭐예요? 그리고 왜 하필 나예요?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어요?"
"아니에요. 제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됐어. 됐고, 내 돈 돌려줘요. 커피숍이고 동업이고 다 필요 없으니 내 돈 돌려 달라고요."
내가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자 꽝 소리가 나며 카페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쏟아졌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커피숍 처분해서 바로 오빠 돈 돌려줄게요."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요? 각서라도 써주세요."
쓸데없는 소리였다. 커피숍 매각 후에 잠적이라도 한다면 각서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오빠, 나 못 믿어요?"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어요? 지금까지 나를 속여온 당신을 어떻게 믿냐고요."
"알았어요. 딱 한 번만 저를 믿고 며칠만 여유를 주세요."
불안했지만 나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딱 일주일 시간을 줄게요. 이번 주 토요일에 내 돈 돌려줘요. 딴생각하면 경찰이든 모든 방법을 써서 당신을 찾아낼 거니까 알아서 하세요."
타국에서 효력도 없는 으름장을 놨지만 난 이 상황에서 나는 철저하게 불리한 을의 입장이었다
그리고 울컥하는 마음을 달래려고 술집으로 향했다. 혼자서 분노를 삭이며 술에 취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녀가 나를 속인 것은 그녀의 학력과 종전 직업이었다.
카페 투자를 명목으로 내 돈을 갈취한 것도 아니었고 몇 개월 되지 않았지만 수익도 약속대로 꼬박꼬박 받았다.
'그래, 처음에는 약속대로 수익금을 나누면서 안심시키는 그런 술수일 것이다.'라는 생각이 미치자 더 화가 났다. 밤이 깊어가자 술에 취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음주 운전자들의 오토바이 소리가 마왕의 비웃음으로 변해 한껏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시간은 더디 갔다. 한 달쯤 지난 것 같은데 고작 3일이 지났을 뿐이었다.
퇴근해서 기숙사 침대에 누워 천장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핸드폰에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낯선 번호에 영문으로 작성된 메시지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뭐지?" 나에게 영문으로 메시지를 보낼 사람은 없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나는 호아 씨의 카페를 자주 찾아갔던 사람입니다. 지난번 당신이 호아 씨에게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실 나는 호아 씨에게 관심이 많아서 자주 커피숍을 찾아갔었고, 그녀와 종종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내가 아는 호아 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사기꾼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호아 씨를 좋아하지만 그녀는 당신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호아 씨에 대한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좋은 친구로 그녀 곁에서 그녀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가난이 싫었다고 했습니다. 가라오케에서 일하는 것은 더더욱 싫다고 했습니다. 그 지옥 같은 삶에서 당신이 그녀를 구원했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고 더 이상 호아 씨는 당신 곁에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 당신은 그런 그녀를 아프게 하는 겁니까? 잠시나마 지옥 같은 현실을 벗어나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 그녀를 왜 당신은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당신이 원하는 돈은 내가 호아 씨에게 빌려 주기로 했습니다. 그 돈을 받는다면 더 이상 그녀를 힘들게 하지 말고 영원히 그녀에게서 떠나 주세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남자는 카페에서 몇 차례 봤던 젊은 남자다.
한국 사람처럼 생겨서 한국인으로 착각했던 공허한 눈빛의 그 남자였다. 그가 어떻게 내 핸드폰 번호를 알아냈는지 여전히 나는 알지 못한다. 아마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을거란 짐작만 한다.
다만 그의 메시지는 가난이 싫었던, 그래서 무슨 일이라도 해야 했던 그녀의 힘겨운 몸부림에 대한 진혼곡이었으며 삶에 대한 비가였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자란 바나나 열매가 유일한 영양분 공급처였던 그녀.
남들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로 예쁘게 꾸미고 가꾸기 바빴던 그 시절,
샴푸값을 아끼기 위해 단발로 머리를 잘라야 했던 그녀.
술주정과 담배 냄새를 견디며 아버지 같은 남자들의 술시중을 들며 수난을 당해야 했던 그녀.
한국으로 돈을 벌러 가기 위해 밥값을 아껴 한국어 학원비로 내면서도 희망으로 내내 행복했을 그녀.
그녀가 버텨온 세상의 가치를 나는 돈 몇 푼에 시궁창으로 내동댕이 친 것이었다.
마치 가롯 유다가 예수를 은 30냥에 팔아넘겼던 것처럼.
*음주 운전자
한국인 입장에서 베트남 맥줏집을 본다면 의아한 풍경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웬만한 맥줏집마다 오토바이들이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기 때문이다.
호찌민 시내에는 대형 주차장을 구비한 맥줏집도 제법 많다.
‘오토바이의 나라’인 베트남은 2022년 맥주 소비량으로 동남아시아에서 1위, 아시아에서 3위를 차지했던 ‘
애주가’들의 나라이기도하다.
하지만 맥주집과 주차장이라는 두 가지 사실을 결합하면 어색한 풍경이 만들어진다.
맥주를 마시러 오는 손님들이 당연한 듯 오토바이를 끌고 오고, 주차 안내원 역시 익숙하게 주차 자리를 안내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는 데다가 다음날 출근이라도 하려면 오토바이가 없어서는 안 된다.
베트남 정부가 음주운전 단속을 강화하면서 그간 베트남에선 볼 수 없던 새로운 서비스들이 나타나고 있다.
베트남 호찌민시 3군에 있는 식당 ‘손 투이’(Son thuy)는 최근 술 마신 고객들을 집에 데려다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정부의 음주운전 단속으로 매출이 15~20%가량 줄어들자 내놓은 특단의 조치였다.
오토바이나 자동차로 고객을 데려다 주기 위해 대기하는 대리 운전기사들이 20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술 마신 고객을 위한 안전하게 귀가시켜주는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현지 언론인 VN익스프레스는 “음주 운전에 대한 정부의 무관용 원칙 때문에 2023년부터 맥주와 주류 시장의 매출이 급감하자 맥줏집과 식당들이 생존을 위해 혁신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호찌민시 4군에서 식당과 맥줏집 등 4개 지점을 운영하는 한 사장은 고객들이 밤새 식당에 오토바이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도록 하거나 차량 호출 비용을 대신 지급해주고 있다고도 한다.
음주 단속으로 월 7억 동(약 3800만 원)이었던 수익이 3억 동(약 1630만 원)으로 절반 이상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의 음주 운전 단속이 강화된 이후 술을 마시는 사람이 줄었다.
베트남 주류 협회는 지난달 “작년 매출이 11% 감소했고, 세전 이익은 23%나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베트남 증시에 상장된 맥주 회사들의 매출도 18.2% 감소했다.
2023년 베트남에서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운전자만 77만여 명, 전년 대비 1.5배로 늘어났다.
베트남 교통경찰국이 내놓은 ‘2023년 교통위반 적발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음주운전 적발 건수는 77만 679건으로, 지난 2020~2022년 3년간 적발 건수를 합한 것보다 많았다. 과거보다 술 소비량은 줄었는데 적발 건수는 늘어난 것을 보면 단속이 얼마나 강화된 것인지 알 수 있다.
베트남은 현재 혈중 알코올 농도와 상관없이 음주운전을 할 경우 최대 벌금 4000만 동(약 217만 원) 및 24개월간 운전면허 취소 처분을 내린다. 오토바이, 자동차는 물론 자전거도 여기에 해당된다.
베트남 공안부는 “베트남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중 50% 이상이 음주와 관련 있고, 도로교통법 위반이나 공공질서 문란, 성폭행 등 많은 사건 사고 가해자들이 음주와 관련돼 있다”라고 발표했다.
지난 2022년 6월부터 12월까지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사상자 수는 전체 교통사고의 20%를 차지했다.
여전히 “국민 문화와 관습에 맞지 않는다” “전통문화라는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는 반박이 나오긴 하지만 베트남 정부의 음주운전 단속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조만간 베트남에서도 “대리 운전기사 부르신 분?”이라는 말이 들려오지 않을까?
어쨌든 음주운전이 줄어드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