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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연금술사 Jun 14. 2024

#10. 그녀를 믿지 마세요.

매력이 철철 넘치는 여자 사기꾼


생각이 길어지면 용기는 사라지는 거예요. - 연극 '그녀를 믿지 마세요.' 중에서



10시를 넘은 베트남의 태양은 에너지가 넘치는 사춘기 소년처럼 온 힘을 다해 열꽃을 뿜어 대고 있었다.

최대한 가로수 그늘 속으로 파고들어 걸으려 했지만 햇빛에 가로수 그늘마저 녹아내린 듯 그림자는 손바닥 만하게 변해 있었다.

한 시간가량을 걸었을 때였다.

길 끝으로 대로가 보였다. 커다란 나무 밑에 노점상이 오아시스처럼 어른거렸다.

티셔츠는 이미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노점상 앞으로 펼쳐진 좌판에는 무릎 높이의 플라스틱 테이블과 목욕탕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아이스 박스에는 시원한 음료수들이 얼음에 쌓여 있을 터였다.

노점상이 현실로 눈앞에 펼쳐지자 누군가 나를 부르며 아는 척을 한다.

지난번 사달이 난 J 가라오케의 N 매니저였다.

그는 나무 그늘 밑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니 과장님 아니세요? 이 땡볕에 어디 다녀오세요? 세옴이라도 타시지, 걸어서 오시는 거예요?"

그의 질문에 답할 기운도 없었다.

무엇보다 물이 급했다.

조그만 목욕탕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아이스박스 제일 아래쪽에 있는 물을 꺼낸 후

계산도 하기 전에 벌컥벌컥 마셨다. 약간 남은 물로 얼굴을 씻어냈다.


N매니저는 한국에서 사업이 망한 후 베트남에서 가라오케를 운영하는 사촌 형님을 찾아왔다고 했다.

거기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데 나보다 2-3살가량 나이가 많았다.

인상이 서글서글하고 붙임성이 좋은 사내였다.


"과장님. 요즘 왜 자주 안 오세요? 언제 한번 놀러 오세요. 제가 서비스 잘해드릴게요."

그는 커피잔 속에 남아 있는 얼음을 탈탈 털어 입어 넣으며 말했다.


"지난번에 호아랑 나가시던데 호아가 또 무슨 문제라도 일으켰어요?"

호아라는 이름이 나오자 귀가 번쩍 열렸다.

"호아를 잘 아세요?" 

나는 N 매니저가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이 말하는 것이 이상해서 물었다.

"그럼요. 애가 곱상하고 사근사근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더랬죠. 그런데 생긴 것과 다르게 독한 면이 있는 애예요."

나는 아이스박스에서 물 한 병을 또 꺼내 들었다.

뚜껑을 돌려 열때 쯤 그가 다시 말은 던졌다.

"이 근처 업소에서 유명한 애죠."


그 한마디는 치명적이었다. 업소? 유명?

"어디 한번 자세히 이야기해 보세요."

나는 물병 뚜껑을 여는 것도 잊고 이야기를 독촉했다.


그녀의 고향은 베트남 최남단의 까마우였다.

아버지는 그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집을 나가 미국으로 갔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함께 미국으로 가자고 했으나 순진한 시골 아낙은 멀고 먼 미국 땅에서 살 엄두가 나지 않아 따라나서지 못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똑똑했다.

이웃들에게 복잡한 금전적 문제가 생기면 수학적으로 풀어냈고, 마을에서 장기나 체스를 두면 진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그에게 시골 마을은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좁았다.

항상 더 큰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 했다.

결국 그는 온갖 수단을 사용해서 가족을 남겨 두고 야반도주하듯 미국으로 떠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한동안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울다 지쳐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다.

새아버지는 사람 좋은 농사꾼이었지만 남부의 대부분 남자들이 그렇듯 대단한 술꾼이었다.

남부의 술꾼들은 농사가 한가할 때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을 마셨다.

그녀는 그런 새아버지가 싫었다.

집이 가난해서 먹성 좋을 나이임에도 제대로 끼니조차 못 챙기고 학교를 다녔다.

배가 고프면 길섶 바나나 나무에서 설익은 바나나를 까서 먹거나 이름도 모를 열매들을 따서 먹었다.

영양실조로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가 까무러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가난이 싫고 영영 낯선 새아버지가 싫어서 그녀는 고향을 떠나고 싶었다.

당연히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도시로 나가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껴 모았던 몇 푼으로 새끼 오리를 몇 마리 샀다.

정성스럽게 키운 오리는 다행히 무럭무럭 자라주었다.

오리가 살이 오르자 그녀는 오리를 팔아 도시로 나갈 차비를 마련했다.

어느 날 친아버지처럼 그녀도 어머니에게 간단한 편지를 남긴 채 무작정 대도시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않은 그녀의 나이 18살 때였다고 한다.

호찌민 시 인근에 싸구려 기숙사에 자리를 잡은 후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제조업 붐이 불던 시기라 여기저기 공장들이 들어섰고 생각보다 일할 곳은 많았다.

하지만 나이가 문제였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나이라 웬만한 공장에서는 그녀를 취업시켜 주지 않았다.

그녀는 서류를 조작해서 이어폰 제조 공장에 취업했지만 금방 들통이 나서 공장에서 쫓겨났다.

결국 그녀가 일할 수 있는 곳은 동네 작은 미용실이나, 마사지 숍같은 곳뿐이었다.

살기 위해 그녀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미용실에서 일하면서 미용 자격증을 땄고, 마사지 숍에서 일하면서 마사지 자격증을 땄다.

억척같이 일하며 돈을 모았다.

그리고 저녁엔 S 어학당을 다니며 한국어를 공부했다.

언젠가 한국에 가서 큰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죽어라 일을 해도 한국으로 갈 만큼의 돈은 모이지 않았다.


어느 날 잘 차려입은 아가씨가 미용실로 찾아왔다.

예쁘장한 얼굴을 한 아가씨는 머리를 손질하거나 손톱을 꾸미기 위해 자주 왔다.

그녀는 단골이 된 그 아가씨의 화려한 모습에 끌렸다. 하얀 피부에 잘 꾸민 외모가 부러웠다.

그 아가씨도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왔고 동병상련인양 둘은 곧 친자매처럼 가까워졌다.

어느 날 언니는 자신이 일하는 가라오케에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했다.

23살 아직 어리기만 한 순진한 그녀는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언니를 따라 가라오케에 처음 발을 디뎠다고 한다.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저 앉아서 손님들의 노래가 끝나면 손뼉을 치거나 술을 따라주면 되는 것이었다. 다만 힘든 것은 술을 권하는 손님과 담배 연기였다고 한다.

그녀는 아버지를 닮아 영리했다.

낮에는 중국어를 공부했다. 몇 개월이 지나자 중국 손님이 올 때면 더듬더듬 중국어를 할 수 있었고,

한국 손님이 오면 한국어로 농담도 할 수 있었다.  

그녀를 찾는 손님이 늘었고 수입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손님들이 주고 가는 팁이 월급보다 많을 때도 있었다.


어느 날 한 무리의 손님이 가라오케를 찾았다.

누가 추천했는지 중년의 남성은 17번 아가씨를 불러달라고 했다.

가라오케에서는 이름대신 번호로 사람을 불렀다.

17번은 그녀의 고유 번호였다.

중년의 남성은 그녀가 들어오자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고 있었다.


                                                                         ........


여기까지 듣자, 내가 알고 있는 명문대를 졸업한 정이 많고 순박한 그녀는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대신 가난하고 억척스럽게 삶을 채워가는 불쌍하고 초라한 한 여자가 그녀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머릿 속에 그녀의 거짓말이 확증편향으로 자리하자 그녀의 모든 말과 행동들이 사기 행태에 지나지 않았다는 확신으로 모든 논리를 채워나갔다.

나와의 사업 관계도 투자금을 강탈하기 위한 고도의 사기 수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말로만 듣던, 그렇게 조심하라던 주위 사람들의 충고가 귓가에 반복해서 들리는 것 같앗다.

그리고 언젠가 그녀가 나에게 가라오케 여자들을 믿지 말라고,

베트남 여자들을 조심하라고 말했던 그 모든 이야기가 나에게 암시를 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희대의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신뢰란 작은 의심에도 깨지기 쉬운 것이었다.




*희대의 사기꾼


지난 4월 11일 호찌민시에 위치한 법원에선 법정 드라마와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그리고 그 중심엔 쯔엉 미 란(67)이라는 여성이 있었다.

란 회장은 호찌민시의 어느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중국계 베트남 가정에서 태어난 란 회장은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서 노점상을 운영했다.

그녀는 ‘도이 모이’로 베트남의 경제 개혁 시기에 부동산 산업에 뛰어들었다.

1990년대 중반, 각종 호텔과 레스토랑 등 화려한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축적하며 사업적 감각을 뽐냈다.

그러나 란 회장을 법정으로 몰아간 건 사이공상업은행(SCB)과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부터다.

현지 검찰은 란 회장이 각종 유령회사 및 대리인 명의 등을 동원해 SCB(은행)의 지분 약 90%를 소유하면서, 개인 소유 지분을 5%로 제한하는 법을 어겼다고 밝혔다.

그리고 란 회장은 이러한 자신의 은행 제국에서 사기 행각을 벌였다.

호찌민 법원은 란 회장이 11년간 사이공상업은행(SCB)에서 허위 대출 신청으로 440억 달러(약 60조 원)를 빼돌렸다는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쯔엉 미 란
부동산 기업 ‘반틴팻홀딩스(VTP)’의 회장인 란은 세계 최대 규모의 은행 사기를 조직한 혐의로 이 날 사형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이중 270억 달러(약 37조 원)는 영원히 회수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2023년 기준 베트남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6%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현지 언론도 “전에 없던 횡령액”이라고 표현했다. 그녀가 횡령한 금액은 베트남의 삼성이라 불리는 ‘빈 그룹’을 이끄는 팜 녓 브엉 빈 그룹 회장이 보유한 순자산의 3배에 달한다고 한다.

란 회장은 베트남 역사에서 가장 큰 금액의 사기 행각을 저지른 사기꾼으로 기록되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쯔엉 미 란 (사진 출처, GETTY IMAGES)




우리나라에 상주하는 외국인만 143만명(2023년 기준)

한국에 거주 외국인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그중 베트남의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베트남 사람들이 많아진 만큼 양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기도 했지만 여기서 파생되는

사회 문제들도 늘고 있다. 우리나라와 베트남 양쪽 모두에서 말이다.


코로나 이후 중국 국적의 외국인들은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되돌아갔다.

그 자리를 베트남 사람들이 빠르게 대체했다.

중국보다 베트남이 상대적으로 코로나 발발이 늦었고, 무비자 빗장을 빨리 푼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4월 1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이민자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에 거주 중인 외국인 143만명으로, 이 중 14.1%가 베트남 국적이라고 한다. 특히 유학생 중에서는 베트남(34.6%)이 중국(29.9%)보다 비중이 높고, 결혼 이민에서는 10명 중 3명이 베트남 국적이다.


베트남에서 한국은 ‘아르바이트만 해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나라’로 여겨지고 있다.

이태원, 명동 같은 곳에서는 홀 서빙만 해도 최저임금 이상의 금액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이태원의 한 베트남 식당에서는 베트남 종업원의 시급으로 1만2000~1만3000원가량을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 보내주겠다”며 불법 이민을 주선하는 브로커들이 늘고 있다.


베트남에서 취업 사기를 친 여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VN익스프레스


얼마 전 베트남 남부 하우장성 경찰은 베트남 사람 18명을 한국에 밀입국시키려던 30대 부부를 체포했다.

한국에서 결혼한 베트남 사람이 가족이나 친척을 초청한 경우 한국에서 최대 5개월 취업할 수 있는 비자를 만들어 주겠다며 한 사람당 7000만~1억동(370만~540만원)을 받아 챙겼다고 한다.

작년 7~10월 사이에만 18명을 모아, 올해 1~2월에 네 그룹으로 나눠 한국에 보냈지만 모두 입국을 거부당했다. 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올해 1월에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베트남 여성이 취업 사기로 한화 5억6500만원가량을 뜯어낸 혐의로 체포되었다. 베트남 남부 까마우성 출신으로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 국적을 얻은 프엉(43)이란 여성이 지난 2022년부터 111명에게 한국에 일자리를 주겠다며 105억동(5억6500만원)이나 받아냈다.

프엉에게 속아 14억동(7,500만원)이나 보낸 사람도 있었다.

하노이나 호찌민 같은 대도시 최저 월급(468만동)의 300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유혹하는 것이 최근 사기꾼들의 수법이다.

호찌민 의류 공장에서 근무하던 한 여성은 '한국에서는 한 달에 4000만동(215만원) 이상을 벌 수 있다.'

'한국에서 9~10개월 근무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돈을 보냈다고 한다.

500만동(27만원)이라던 비자 처리 비용을 보내자 다음 날 “보험료 1,000만동을 더 보내라”고 했다.

이를 거절하고 환급을 요구하자 브로커는 잠적해버렸다. 사기를 당한 것이다.


취업과 관련해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는 건 베트남 사람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악덕 업주들은 이들의 사정을 악용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도 한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임금 체불액이 2022년 기준, 신고된 것만 1,223억원, 2023년엔 1,300억원가량 될 거란 추정(국가인권위원회)이 나왔다.

신고된 것만 집계한 것이니 실제 체불액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불법 체류자 등의 경우 임금 체불 피해를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임금 체불 등의 사기 피해를 당한 베트남 사람들도 늘고 있다.

베트남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한국에 취직하러 갔다가 돈도 못 받고 돌아왔다”

“같은 일을 해도 임금을 적게 주고, 거주 환경도 열악했다.”는 한국 취업 후기가 자주 올라온다.


제발 사람들의 절박함을 이용하여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자신의 이득을 꾀하는 사기꾼들이 정당하게 처벌받는 정의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사람에 대한 존중이 기본이 되어야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닐까.

당연한게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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