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글록 제타-9.
은하연합 문명 감시국 소속 조사관으로, 멸종한 인간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문 종말 감별사'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지구에 존재했던 유품 정리사 정도라면 더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번 나의 임무는 단순하다.
하나, 지구의 인류라는 지적 생명체가 멸망한 원인을 분석한다.
둘, 그들이 남긴 의미 있는 잔재물을 수집한다.
셋, 그 종말이 다른 문명에게 주는 교훈을 정리하여 보고한다.
요컨대, ‘종말’을 보고서의 형식으로 정리하는 일이다.
당연하겠지만 보고서 작성이란 임무에는 사라진 문명들의 잔해 위에서, 종말의 흔적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보고자의 감정이입과 개입은 철저히 금지된다.
내가 속한 은하연합 문명 감시국은 이 우주의 수많은 지적 생명체들의 멸망을 목격해 왔다.
지구도 그중 하나였고, 처음엔 그저 또 하나의 보고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곧 알게 되었다.
지구는 달랐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지구의 ‘인간’이라는 존재가 달랐다.
나는 지금 지구인 멸종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나의 보조 파트너 알파-3와 함께 지구로 향하고 있다.
탐사선 ZK-32673호는 지구 궤도 위를 천천히 선회하고 있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행성은 푸른 바다와 초록 숲, 끝없이 뻗은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아름다웠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그 아름다움은 거짓처럼 사라졌다.
대양은 부유성 쓰레기로 검게 찌들어 있었고, 극지방의 얼음은 녹아 해안을 삼킨 지 오래였다.
열대 우림은 잿더미로 변했고, 하늘엔 인공위성 조각들이 길을 잃은 채 떠돌고 있었다.
약 100년 전 지구인들의 생명 활동 신호가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사라진 것은 매우 이상했다. 혜성이나 핵폭발과 같은 물리적 충돌의 신호는 전혀없었다.
단지 어느 날 부터 인류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더니 어느 순간 그들의 활동 신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었다.
이제 지구는 더 이상 인간들의 생명의 터전이 아니었다.
욕망이 남긴 상처들만이, 마치 오래된 기록처럼 그 위에 각인돼 있었다.
글록은 작은 기록 장치를 열며 중얼거리듯 글자들을 입력했다.
“지구의 아름다움은 멀리서만 존재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인간의 욕망과, 그 대가가 선명해졌다.”
탐사 드론 알파-3가 그의 곁을 맴돌았다.
알파-3는 정확하고 신중한 AI 분석 보조 동료이다.
그러나 가끔 엉뚱하고 유쾌한 화법으로 글록을 웃게 만들었다. 글록은 그런 알파-3의 쾌활함을 좋아했다.
알파-3가 침묵을 깨뜨렸다.
“글록, 인간이 모두 사라진 이유는 아직 명확하지 않죠? 정확한 감정 반응 기록도 혼재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겠지. 인간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었거든. 어쩌면 이번 임무는 생각보다 어려울지도 몰라.”
글록은 알파-3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많은 생명체들이 조화롭게 살던 이 지구에서 단 하나, 인간만이 조화를 거부했지.”
알파-3는 의문을 품은 듯 되물었다.
“왜 인간은 조화를 거부했을까요?”
글록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아마, 너무 똑똑했기 때문이 아닐까? 상상하고, 만들고, 정복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상상은 자주, 자기를 해치는 방식으로 사용됐지.”
“그럼 인간의 멸망은 불가피했던 건가요?”
글록은 이번에도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질문에 아직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탐사선 ZK-32673호는 지구의 대지 위를 낮게 날고 있었다.
그때 알파-3가 조용히 말했다.
“글록, 저 지점에서 미세한 신호가 감지되고 있어요. 오래 전 전자 장치로 추정되는데 원본 신호는 약 100년 전 영상으로 보이는데요?”
“군사 장비인가?”
“아니요. 교육용 파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위치는 인근 주거 단지입니다. ‘유치원 시설’로 표시된 장소에요. 이상하죠? 아직까지 작동되는 포터블이 있다는 것이 말이에요.”
글록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유 없는 끌림이 있었다.
“그래 좋아. 한번 확인해 보자.”
한때 ‘유치원’이었던 이곳은 잿빛 안개로 덮여 있었고, 벽에는 미끄럼을 타며 웃고 있는 동물들의 그림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탐사선 ZK-32673호는 아무런 저항 없이 그 대기를 뚫고 착륙했다.
문이 열리자, 먼지 냄새와 함께 메마른 바람이 공기를 흔들었다.
글록과 알파-3는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인류가 사라진 후 이 낯선 폐허 위에 처음으로 인간이 아닌 발자국이 찍히는 순간이었다.
지구의 대지는 바스락 거리는 오래된 낙엽처럼 푸석거렸다.
여러 가지 잔해가 쌓인 틈에서 오래된 포터블을 찾아 꺼내 들었다.
“배터리는 완전히 방전됐는데... 미세한 신호가 감지되다니 이건 이해가 되지 않는걸요.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 걸까요?”
글록도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잠시만요. 글록. 지금부터 통합 언어 모듈을 뇌신경망에 업로드할게요."
글록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지구인이 모두 멸종된 상황에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물론이죠. 이 최신형 언어팩 하나면 지구 역사상 기록된 6천여 개 언어와 방언, 그리고 비공식 구어체까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구사하실 수 있습니다. 아마 탐사 과정에서 이해해야 할 문서도 적지 않을테니까요."
알파-3가 특유의 재치를 덧붙였다.
"게다가, 억양과 속어까지 자동 최적화됩니다. 이제 전설적인 외계인 발음 같은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자, 곧 머릿속 깊은 곳에서 미세한 진동이 퍼지기 시작했다.
차가운 빛줄기가 시야를 스치고, 낯선 문자와 음성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수만 수억개의 단어, 억양, 문법 체계가 의식 깊은 곳에 덧씌워지는 감각.
잠시 머리가 멍해지며,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들이 귓가를 맴돌았다.
“… 후.”
그는 이질감을 떨쳐내며 알파-3을 바라보며 물었다.
“됐나?”
알파-3가 만족스러운 듯 응답했다.
"업로드 완료. 이제 지구인처럼 말할 준비가 됐군요."
글록은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이 행성의 언어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볼 시간이군.”
글록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지구인이 사용하던 모든 언어가 설정되어 있었다.
이번엔 알파-3가 포터블의 전원 버튼을 누르자 낡은 화면이 켜졌다.
잡음, 휘청이는 영상. 그리고 화면 속에서, 7살쯤 되어 보이는 귀여운 한 소녀가 나왔다.
소녀의 눈은 약간 충혈되어 있었고, 손엔 오래된 토끼 인형을 쥐고 있었다.
“지지직… 아빠가 말했어요. 사람들이 모두 아프게 되었대요.
그래서 아빠가 사람들을 고치러 가야 한다고 했어요. 좀 멀어서 시간이 걸린다고 했어요.
아빠는 안 보이는 근데… 아빠 목소리가 계속 들려요.
나보고 오라고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나는… 그냥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데 아무도 안 와요. 너무 조용해요.
혹시… 누가 듣고 있다면, 제발 사람들을 고쳐주세요.
사람들이 안 아프게 되면 아빠가 돌아온다고 했거든요. 제발… 도와주세요. 지지직—”
포터블은 짧은 메시지를 남기고 화면이 어둡게 꺼졌다. 영상은 짧았고 단순했다.
글록은 영상이 끝났지만 여전히 포터블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소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던 것도 같다.
기다림은 때로는 가장 정교한 메시지가 된다.
글록은 다시 재생하려 했지만, 포터블은 생명을 다한 듯 끝내 아무 반응도 없었다.
마치 이제는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다는 듯.
그러나 소녀의 목소리 속에 담긴 감정은, 무언가 글록의 안쪽 어딘가를 두드리는 것 같았다.
알파-3가 낮게 말했다.
“글록. 이건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감정적 유산이에요. 전달자가 미래를 예감하고, 남긴 메시지가 아닐까요? 하지만 여전히 완전 방전 된 포터블이 어떻게 작동한건지는 분석이 되지 않네요. 지구인들의 기술력이 이렇게까지 발전했던 걸까요?”
글록은 말없이 그 장비를 들고 천천히 일어섰다.
머리 안에서 무언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껏 한 번도 없었던 감정 알고리즘의 구조에 금이 가는 느깜마저 들었다.
“꼭... 고쳐주세요.” 그는 조용히 소리 내어 읊조렸다.
단 한 마디였지만, 명령도, 부탁도 아닌... 간청이었다.
알파-3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글록, 괜찮아요? 당신의 감정 시그널이 매우 불안정하게 흔들립니다. 이건 오래된 영상 데이터일 뿐입니다. 불필요한 감정적 개입은 보고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아시죠? 글록?”
글록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영상 속 아이의 눈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기록 장치를 열고, 손으로 직접 문장을 남겼다.
보고 항목: 감정 유산 기록 / 분류 코드 1-A-08
인간은 멸종 이전, 감정적 유산을 영상 형태로 저장함.
해당 기록은 감정 알고리즘에 일시적 간섭을 유발함.
메모: 정서적 파장, 기준치를 초과함. 후속 분석 필요.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다.
“기억될 수 있을까… 지구에 생존 했던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들이?”
그들은 유치원을 뒤로하고 다시 탐사선 ZK-32673호에 올랐다.
글록은 그 소녀의 영상이 왠지 ‘기억’이라는 단어 하나로, 응축되는 것을 느꼈다.
그 소녀가 아니, 이 상황이 언젠가 경험했던 기억이며 다시 그 아이를 만나게 될 것 같은 이상한 기분마저 들었다.
고개를 흔들어 흩어진 감정을 정리했다.
그는 인간이 남긴 잔재 속에서 그들이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 왜 그렇게 사라졌는지, 그리고, 그 끝에 무엇을 남기려 했는지를 찾아서 기록할 책임감을 다시 상기시켰다.
다른 문명에게 멸종의 경고가 될지도 모르는 보고서지만 언제나처럼 아무도 읽지 않을거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은하계의 어떤 행성도 교훈을 학습하려는 데는 인색한 편이니까.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그저 영상 속 아이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랬다.
“제발 사람들을 고쳐주세요...”
글록은 멸망 위에서 인간이 남긴 그 마지막 소망이 어떤 운명을 맞이했을지 궁금해하며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 매주 수요일 연재되며 5회부터 멤버십으로 전환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