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뮤다 삼각지대의 미스터리
탐사선으로 돌아온 글록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조금 전 바위 지대에서 마주한 장면은 단순한 데이터의 잔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감정이었다. 낯설고도 선명한 감정.
글록이 본 것은 단지 원시 인류의 불을 사용하던 현장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것은 선택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인간이 처음으로 자연에 손을 뻗고, 그 손을 뗄 수 없게 된 순간말이다.
"글록?"
알파-3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사색을 방해해서 미안한데요, 혹시 아까... 그 현상은, 인간의 흔적이 우리를 통과한 걸까요? 아니면 우리가 그 흔적 안으로 들어간 걸까요?"
글록은 대답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그 질문에 답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알파-3가 곧이어 말했다.
“확실한 건, 지구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거죠. 적어도 기억은 살아 있어요. 그 기억이 우리를 스캔하는 중이라면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약간 섬찟한걸요.”
글록은 짧게 웃었다.
“자.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해 보자고. 불이 인류 멸망의 첫 번째 씨앗이었다면,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간 두 번째 씨앗은 무엇이었는지 알아봐야겠어.”
탐사선 ZK-32673호는 진동도 소음도 없이 황폐한 지구의 대기를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알파-3, 다음 탐사 목적지는 어디지?”
글록이 조종석에 앉아 알파-3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알파-3는 평소보다 더 상기된 목소리로 응답했다.
“드디어 바다 위로 갑니다, 선장님. 구 북대서양 해양복합거점, 코드명 HZ-27. 한때 인간들이 바다 위에 지은 해상 도시였죠. 기후 붕괴 이후 빙하가 녹아 육지의 많은 부분을 덮자 바다가 더 안전하다는 믿음이 퍼지면서 잠시나마 번성했던 곳입니다.”
글록이 한쪽 눈썹을 올렸다.
“잠시나마?”
“예, 잠깐 반짝이고… 가라앉았어요. 기록에 따르면, 구조적 붕괴와 에너지 고갈, 그리고 내부 충돌. 인간답죠.”
“탐사 목적은?”
“기술 기반 인류 생존 실험의 흔적 분석. 그리고...”
알파-3가 긴장한 듯 목소리를 낮췄다.
"글록, 우산 안전벨트가 있다면, 단단히 매시는 게 좋겠네요. 지금 우리는 지구 자전 속도와 공명 주파수 간섭으로 인한 이상 기류가 발생하는 구역을 지나고 있습니다. 고주파 잔재와 시공간의 불안정 신호가 반복적으로 잡히고 있습니다."
기체의 표면엔 미세한 전기 입자가 맺히고 있었고, 창밖엔 맑지도 흐리지도 않은 불투명한 안개가 수평선을 덮고 있었다.
알파-3가 탐색 패널 위에서 감지 데이터를 빠르게 훑었다.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삼각지역입니다. 버뮤다, 마이애미, 푸에르토리코를 잇는 지점. 21세기 지구인들이 실종과 미스터리의 상징으로 여기던 버뮤다 삼각 지역이죠. 솔직히 말해 감정이 없는 저도 으스스한 게 기분이 썩 좋진 않네요.”
글록은 조용히 창밖을 바라봤다.
짙은 구름 아래로 펼쳐진 바다는 침묵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미해결 된 이야기들이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지구가 스스로 뭔가를 숨기고 있었던 곳… 인간들은 이곳을 그렇게 불렀지.”
그때였다.
알파-3가 갑자기 긴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글록, 구조 요청 신호입니다. 아주 오래된 포맷이지만 아직 반복 송출 중이에요.”
“뭐? 구조 요청이라고? 좌표는?”
“해수면 아래 600미터, 대서양 해저 단층 경계선 근처입니다. 신호 주기는 9초. 정확하게 일정합니다. 기계가 자동으로 반복하는 구조예요.”
"설마, 인류의 생존자가 존재할 수도 있단 말인가?"
"그건 불가능합니다. 하긴... 지금의 구조 신호도 말이 안 되긴 마찬가지지만..."
“알파3, 신호를 따라가 보자.”
잠시 후, 탐사선 ZK-32673호 는 수면 아래로 잠수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개처럼 흩날리는 침전물 사이로 강철 구조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글록이 중얼거렸다.
구조물은 마치 지하 연구소처럼 보였다. 부식되어 대부분 무너져 있었지만, 중심부의 원형 홀은 아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탐사선 ZK-32673호가 중심부 원형에 접근한 후 투명한 도킹 루프를 문쪽으로 연결했다.
외벽의 문이 열리자 짙은 소금기와 녹슨 금속 냄새가 공기 속에 섞여 코를 찔렀다.
글록은 어깨너머로 바다의 그림자를 흘끗 바라보고선 조용히 말했다.
“바다는… 이미 이 도시를 버린 것 같군.”
그들은 곧장 메인 격납구 쪽으로 향했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지만, 알파-3가 펄스 해제기를 꺼내 벽면의 자물쇠 코드를 따냈다.
기계 장치가 낑낑거리며 돌아가고, 거대한 내부 도어가 천천히 열렸다.
낡은 경첩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그 틈 사이로 부유먼지가 흩날리고, 오래된 구조물의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쪽은 어둡고 넓었다.
바닥엔 오래전 물에 젖었다가 마른 자국이 불규칙하게 남아 있었고, 천장에는 끊어진 배관들이 뱀처럼 매달려 있었다.
곳곳에 부식된 모니터와 전선이 엉켜 있었고, 일부 구역은 이미 무너져 내린 흔적이 보였다.
글록은 발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여기… 마지막까지 사람이 있었던 것 같아.”
알파-3가 앞장서 조명을 높였다. 빛이 벽을 따라 번져나가며 공간을 더 깊이 드러냈다.
그때였다.
빛줄기 끝, 긴 복도의 정중앙에 굳게 닫힌 문이 보였다.
“글록, 저 안에서 아직도 살아 있는, ‘기록되지 않은 무엇’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신호가 일정하지 않지만… 기억과 공명의 형태로 감지돼요.”
글록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또 시공간의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인가?”
“왜곡이든 진실이든… 일단 들어가 보시죠. 이번에도 누군가가 ‘고쳐달라’고 말할지도 모르잖아요.”
알파-3는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복도는 마치 폐허 위에 세워진 시간의 터널 같았다.
이따금 떨어지는 천장 파편 소리, 스멀스멀 피어나는 짙은 녹냄새, 벽을 따라 퍼진 균열…
모든 것이 멈춰 있었고, 동시에 무언가를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조심해요, 글록. 이곳은 구조적으로 매우 불안정합니다. 내장 센서에 따르면 천장 위쪽 잔해가 언제든지…”
철컥!
알파-3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글록은 눈앞의 손잡이를 돌려 미닫이문을 열었다.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지르듯 울었다.
그 너머로, 어둠이 부서진 형광등 아래에 얼룩져 있었다.
글록과 알파-3는 잠시 말없이 그 안을 응시했다.
빛이 거의 닿지 않는 방 안, 바닥 한가운데 무언가가 있었다.
“저건…”
알파-3가 조심스레 앞으로 나섰다.
낮게 깔린 조명에 실루엣이 드러났다.
그것은 앉은 자세로 정지해 있었고, 한 손엔 금속 케이블이 감겨 있었다.
처음엔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움직임을 멈춘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그 형체의 정체가 드러났다.
“AI 구조체네요. 슈트형 모델입니다. M1-R 시리즈. 고대 도시 방어용 모델로 분류되어 있죠. 마지막 사용 연도는… 2073년.”
글록은 눈앞의 슈트형 AI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다가갔다.
알파-3도 한 걸음 뒤에서 주시하고 있었다.
AI는 거의 기능을 멈춘 듯 보였지만, 유리 패널의 중앙엔
희미한 문장이 반복적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전송 대기 중…
기록을 열람하시겠습니까?
글록이 고개를 끄덕이자, AI의 가슴부에서 조그만 포터블 장치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 순간, AI의 내부에서 짧은 음성이 나왔다. 전기장 간섭으로 노이즈가 뒤섞였지만, 확실히 인간의 목소리였다.
만약 이걸 보고 있다면… 당신은 실패한 거야.
당신이 그 소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어. 그러니 이제라도 기억해.
유일한 길은… 그 소녀를 따라가는 거야... 인류가 사라진 이유가 궁금하다면, 잊지마...
소녀를 구하는 것만이 유일한…지지직…길이 열리면 그 길을 따라가서 소녀를 구해.
…하지만 조심해. 소녀 곁에는 수많은 목소리들을.
그 목소리들은 얼굴을 바꾸고, 시대를 바꾸며, 끝내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 넣을것이다.
그 목소리를… 절대 믿지 마...지지지직
그 말을 마지막으로 AI는 움직임을 멈췄다.
바로 그 순간,
탐사선과 연결된 모든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마비되었고, 구조물 중심에 있는 원형 홀 바닥이 강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글록! 공간 왜곡 반응! 루프 유사 패턴 감지!”
알파-3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시공간 흐름이… 벡터를 스스로 조정하고 있어요! 물러나세요!”
그러나 이미 늦었다.
슉---
진동이 아니라, 흡입이었다.
바닥 중심이 움푹 꺼지며 공간 자체가 뒤틀렸다.
중력은 아래로 향하지 않았다.
몸이 뒤로, 옆으로, 안쪽으로, 위로 동시에 끌려갔다.
“알파!”
글록이 소리쳤다. 동시에 그의 발밑이 사라졌다.
“중력 기준점 붕괴! 끌려들어갑니다...아...아아...악!”
알파-3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시야가 부서졌다. 앞, 뒤, 위, 아래가 사라졌다.
의미를 가진 모든 방향이 녹아내렸다.
글록의 시야가 뒤엉키며 눈앞이 하야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