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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밤의 울음, 흙 속의 씨앗

하늘별의 속삭임

by 한자루




울타리가 산산이 부서졌다.
노란 눈들이 숲 속에서 한꺼번에 떠올랐다. 늑대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그들의 몸짓은 본능 같으면서도 계산된 듯, 거의 훈련된 군대처럼 정연한 협공이었다.

개들이 앞에서 맞섰지만, 용감하게 나선 개들은 곧 목덜미를 물린 채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아이들은 울부짖으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람들이 불씨와 돌도끼를 들었으나, 늑대들은 불을 비켜 돌며 사방에서 파고들었다.

그때 뒷걸음치던 작은 소녀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맨 팔이 흙 위에 닿는 순간, 늑대 한 마리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날아들었다.

번뜩이는 발톱이 그녀의 팔뚝을 할퀴었다.
피가 튀고, 소녀의 입에서 찢어진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곧이어 누런 송곳니를 드러내고 소녀를 노려봤다.

울타리 밖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글록의 시야가 흔들렸다.

떨고 있는 그 작은 몸, 눈물이 번진 눈동자. 이미 본 적이 있는 소녀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에서 신호를 보냈던 낡은 포터블의 깜박이는 화면 속, 토끼 인형을 꼭 쥐고 있던 소녀.
“아무도 안 와요. 제발… 도와주세요.”
그 목소리가 글록의 뇌 안에서 되살아났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소녀와, 그때 영상 속의 소녀가 같은 소녀일리 없었다.
하지만 눈가에 맺힌 눈물의 떨림, 손끝의 간절함이 겹쳐지며 하나로 이어졌다.

글록의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글록.” 알파-3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지금 개입하는 순간, 우리는 단순 조사관이 아니라 사건의 일부가 됩니다. 데이터는 오염되고, 원인은 뒤틀리며, 기록은 무의미해져요. 제발... 손을 떼세요.”

그러나 글록은 알파-3의 목소리를 듣고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알파.” 글록이 낮게 속삭였다.
“이번만큼은... 관찰자가 아니라 증인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알파-3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포기하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주 좋군요. 이제 우리 보고서에는 규정 위반이라는 항목이 추가되겠네요.”

글록의 귀에는 알파-3의 비아냥 대신 버뮤다 삼각지대 심해 지하연구소 들었던 음성,

만약 이걸 보고 있다면… 당신은 실패한 거야. 당신이 그 소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라는 소리가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심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늑대 두 마리가 동시에 소녀를 목덜미를 향해 달려들었다.
글록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허리춤에서 생존키트의 봉인을 풀어 손목에 착용하며 소녀를 향해 바람처럼 달려들었다.

순간, 그의 손목 장치에서 얇은 원형 필드가 짧은 빛을 뿜으며 공간을 비트는 막처럼 펼쳐졌다.
빛이 꺾이고, 공기가 울렁이며 왜곡이 생겼다.
달려들던 늑대 하나는 궤도가 비틀려 옆으로 튕겨나갔고, 다른 하나는 갑자기 생긴 압력 차에 휘말려 바닥에 처박혔다.

그럼에도 늑대들은 쉽사리 사냥을 포기할 기색이 없었다.

달려오는 글록을 발견한 늑대 한 마리가 그를 향해 뛰어올랐다.
날카로운 이빨이 그의 어깨를 향해 닿으려는 순간, 글록은 팔꿈치의 보조 모듈을 작동시켰다.
순간 압축된 공기층이 폭발하며 늑대가 공중에서 피를 토하며 튕겨나갔다.
그 충격으로 글록 자신도 뒤로 밀려나며, 소녀 곁으로 굴러 떨어졌다.

숨이 가빠왔지만 본능적으로 소녀를 끌어안았다.
팔 안의 소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살려주세요.”


그때, 또 다른 늑대가 비틀거리며 글록을 향해 뛰어 올랐다.
글록의 손목 장치가 다시 반응하며 필드가 번쩍 하고 튀어나왔다.
늑대의 몸이 궤적에 휘말려 나가 떨어졌다. 글록이 다시 한번 쓰러진 늑대를 향해 손목의 장치를 겨누는 순간, 그림자처럼 뛰어든 형체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늑대 무리의 리더였다.
순간적인 압력파가 리더 늑대의 옆구리를 찢고 지나갔다.

피가 터져 나왔으나, 그는 낮게 으르렁이며 쓰러진 동료를 감쌌다.
그 위협적인 몸짓에 다른 늑대들이 잠시 멈칫했다.

글록은 순간 멈칫했다.
‘지금 저건… 단순한 사냥이 아니다.’

리더 늑대는 상처 입은 채 동료 앞에 서서 글록과 눈을 마주했다.
그 눈빛은 단순한 야수의 본능이 아니라, 무리를 위해 몸을 던지는 존재의 의지였다.

한순간, 인간과 짐승의 숨결이 공터에서 격돌했다.

리더의 낮은 울음이 울려 퍼지자, 무리의 몸짓이 하나로 맞춰졌다.

그 울음은 마치 질서를 붙들려는 마지막 신호 같았다.

그러나 그 울음 틈새로, 날카롭고 잔혹한 포효가 섞여 들었다.
공기를 갈라버릴 듯한 그 소리에 무리의 긴장이 흔들렸다.
발톱이 땅을 긁고, 눈빛은 더욱 번뜩였다.

리더 늑대는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낮고 묵직한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천천히 뒷걸음 치며 몸을 돌려 숲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단순한 움직임만으로도 무리에게는 복귀의 신호가 되었다.

늑대들 대부분은 고개를 낮추고 그를 따라 움직였지만, 그중 젊고 포악한 늑대 한 마리가 땅에 버티고 서서 이빨을 드러냈다.

순간, 리더가 흥분한 젊은 늑대를 향해 낮고 깊게 으르렁거렸다.
부상당한 몸에서 뿜어져 나온 울음은 무게와 권위를 실어 늑대들의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젊은 늑대는 잠시 이를 갈듯 버텼다. 그러나 끝내 머리를 숙이며 천천히 몸을 물렸다.
그 눈빛만은 여전히 이글거렸고, 억눌린 욕망이 꺼지지 않은 불씨처럼 남아 있었다.

리더를 따라 수십 개의 눈이 흔들리며 사라졌다.

숲 가장자리, 노란 눈들이 여전히 어둠 속에서 번쩍였다.

여전히 분노를 삭이지 못한 늑대 한 마리가 길게 울부짖었다.

그것은 단순한 패배의 신호가 아니라, 다시 돌아오겠다는 맹세 같은 소리였다.

순식간에 숲 전체가 그 울음으로 메아리쳤다.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품에 파고들었고, 간신히 살아남은 개들은 꼬리를 말고 낮게 신음했다.

글록은 이 혼란스러운 소음 속에서 자신이 지금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의 일부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때, 상공에서는 아주 미세한 점 하나가 빛을 깜빡였다.
알파-3였다. 알파-3는 광학 위장을 가동해 표면을 흙빛과 별빛의 중간 정도로 바꾸고, 소음을 억제해 하늘에 고정된 먼지 입자처럼 떠 있었다.

그러다 아이 하나가 울음을 멈추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벌레다!”

아이들의 눈빛이 금세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어른들은 불길한 표정을 지었지만, 두려움에 눌려 쉽게 말하지 못했다.

그 순간 글록의 품에 안겨있던 소녀가 글록에게 속삭였다.
“저거... 하늘별이에요. 저한테만 보이는 줄 알았는데.”

알파-3는 글록에게만 들리는 파장을 보냈다.
“글록, 난 지금 벌레 혹은 별로 인식된 모양입니다. 다행히 악마보단 낫죠. 하지만 오래 머물면 의심이 커질 겁니다.”

글록은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가에 스친 소녀의 웃음을 놓치지 않았다.


늑대들의 습격이 끝나고 부족 사람들은 점차 정신을 차렸다.

“저 이방인이 빛으로 늑대를 죽였다.”
“저건 사람의 힘이 아니야.”
“하늘벌레도 따라다니고 있어. 불길한 존재일지도 몰라.”

속삭임은 불씨처럼 이곳저곳에서 피어올랐다.
누군가는 두려움에 돌을 움켜쥐었고, 누군가는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공통된 것은 모두가 글록을 ‘낯선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소녀의 작은 손이 글록의 팔을 꼭 잡고, 낮게 속삭였다.
“괜찮아요. 하늘별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글록은 아이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상공의 알파-3가 작은 깜빡임으로 응답했다.


“리아!” 그때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숨 가쁘게 달려온 소녀의 어머니가 글록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소녀를 안아 가슴에 끌어안더니, 글록과 소녀 사이를 떼어내듯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품을 지켰다.

곧이어 다리를 절뚝이며 소녀의 아버지가 나타났다.
그의 손은 본능적으로 글록을 경계하며 돌을 움켜쥐었다가,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공포와 분노, 의심과 안도, 엇갈린 감정이 뒤엉키며 마을은 혼돈의 소용돌이 같았다.

그때였다.
어수선한 웅성거림을 가르는 지팡이 하나가 대지를 ‘툭, 툭’ 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어둠 속 한 지점을 향했다.

부족의 장로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불빛이 닿자, 장로의 모습이 조용히 드러났다.
흙빛 가죽을 두른 어깨, 풀잎과 껍질로 장식된 머리. 장로라고 믿기지 않는 젊은 여인이었다.

그 모든 원시적 장식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은 이질적으로 아름다웠다.

피부는 어둠 속에서도 매끈하게 빛을 반사했고, 머릿결은 이상할 만큼 고요히 흘러내렸다.
마치 이곳의 시간이 그녀만 비껴간 듯, 젊고 온전한 외형이었다.

그녀는 한 발 한 발 천천히 걸어 나오며, 손짓 하나로 사람들의 동요를 잠재웠다.

사람들은 더 이상 웅성거리지 않았다.


장로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빛을 부리는 이방인이여. 오늘 밤. 당신은 우리에게 빚을 남겼다. 하지만 빚은 은혜일 수도, 재앙일 수도 있다.”

그 목소리는 불길처럼 낮고 단단했다.
그리고 그 순간,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말이 곧 법이자 질서라는 듯이.

알파-3가 낮게 속삭였다.

“글록, 저 장로의 말투 말이죠. 딱 ‘지혜로운 지도자’ 교본을 그대로 읊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게다가 외모도 특이해요. 장로라기에는 너무 젊고, 피부와 머릿결, 손가락의 마디까지.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매끈합니다. 데이터 상으로는 분명 이 시대의 인간인데, 제 센서가 자꾸만 ‘뭔가 이상하다.’고 속삭이네요.

게다가 보통 이 시기 인간은 공포나 분노를 쉽게 드러나는데, 저 여인은 감정을 꼭꼭 눌러 담고 있어요. 목소리에서도, 표정에서도 어떤 감정 패턴도 나타나지 않아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저 장로는 너무 아름답고, 너무 수상합니다. 그게 가장 불길한 부분이죠.”

알파-3가 특유의 건조한 톤으로 다시 정리하듯 덧붙였다.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이들은 바람에 잘 휘어진다. 그러나 잘못된 손에 닿으면 꺾이기도 쉽다.”

이번에는 사람들 사이에 묘한 긴장이 일었다.

장로가 불가에 선 자리에서 땅을 지팡이로 그어 경계선을 만들었다.

“이방인이여, 이 선을 넘지 마라.”
마치 지금 막 글록과 리야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지는 듯했다.

알파-3가 낮게 속삭였다.
“글록, 들었죠? 이 시대 언어치곤 은유가 너무 정교합니다. 아이, 바람, 손이라니. 단순한 경고일 수도 있지만, 전 그게 당신과 저 아이의 관계를 겨냥한 암시로 들리는데요. 지금 장로는 아주 교묘하게 당신을 고립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글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이 오래도록 자신에게 머무른다는 사실만이, 뼛속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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