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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연금술사 May 03. 2024

#4. 평등 위에 세워진 집

베트남 집 '냐옹'

평등 위에 세워진 집

             나에게 집은 나의 근거이고 유일무이한 피난처이고 중심이다.  

                                                                                       - 소설 '은교' 중에서




신성한 학습의 현장이었던 카페에 도착하니 그녀는 이미 한참을 기다린 듯 보였다.

커피 잔에 담겼던 얼음이 모두 녹아서 커피는 보리차 마냥 힘없이 풀려있었다.


"오빠, 왜 이렇게 늦었어요?" 

그녀는 오빠라는 말이 이제 입에 붙은 듯했다.

앉으라는 말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오토바이가 주차된 곳으로 총총 걸어갔다.

소풍 가는 소녀처럼 빨리 따라오라고 나를 독촉하고 있었다.

그녀의 하얀 종아리에서 통통통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베트남에서 오빠라는 말에 의미가 한국의 그것과는 조금은 다른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입술에서 나오는 오빠라는 단어는 5월의 라일락 향기처럼 들뜨게 했다.

얼마나 대단한 곳이기에 저렇게 서두르나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학생처럼 고분고분 그녀의 뒤를 쫓고 있었다.


15분 정도 오토바이를 달려 멈춘 곳은 고속도로 진입로가 보이는 로터리 근처 한 길가였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공터가 눈에 들어왔다. 로터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거리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왼쪽 길의 한편은 고속도로로 이어져 있었고 한편은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오는 도로였다.

사거리의 도로는 생각보다 넓었다. 베트남에서 보기 드문 왕복 사 차선 도로였다.


"오빠 여기에요. 여기에 우리 카페숍을 만들면 잘될 것 같지 않아요? 저기 골목길로 100m쯤 가면 제법 큰 공장도 있어요. 거기 직원이 꽤 되거든요."


그녀는 내가 제안을 수락이라도 한 듯 '우리 카페숍'이라는 단어로 나를 무장해제시키고 있었다.

제법 시장 조사를 많이 한 모양이었다.

보물 상자라도 발견한 것처럼 상기된 얼굴로 나에게 조목조목 설명을 이어갔다.

입지 조건을 따져본다면 그리 나쁜 위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의 제안을 덥석 물만큼 철없는 나이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겐 투자할 만큼의 넉넉한 자금이 없었다.


"그런데 말이죠. 카페숍을 만드는 데 얼마 정도의 돈이 필요할까요?" 

나는 생각에도 없는 말을 불쑥 던져놓고 후회했다.


"대충 계산해 보니 5억 동 정도면 건물을 짓고 필요한 가구와 집기들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는 벌써 다 계산해 두었는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런데 도대체 5억 동이 얼마야?'

워낙 화폐 단위가 큰 나라다 보니 5억 동이라는 돈이 한화로 얼마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

대략 계산해 보니 2천5백만 원 정도 되는 것 같았다.

한국이었다면 2천5백만 원으로 커피숍 건물을 짓고 설비들을 구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내 수중에 그만한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땅을 사고 내가 건축비와 설비를 투자하면 수익의 50%를 나누겠다고 투자 설명회를 하는 발표자처럼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했다.

 

'그럼 도대체 한 달에 얼마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거지?'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에도 불구하고 나의 머리는 침착하고 빠르게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달 예상 수익은 얼마 정도 될 것 같아요?"

"이것저것 지출을 다 제하고 나면 1,600만 동 정도 될 것 같은데요."

1,600만 동이면 한화로 80만 원 정도다.

반으로 나누면 한 달에 40만 원 정도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 말은 원금 회수까지 최소 5년이 넘게 걸린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에겐 그렇게 큰돈이 없어요."

나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모은 돈이 없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해서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우선 건축에 필요한 자재비만 주고 매월 인건비를 조금씩 나눠서 줘도 돼요."

그녀는 다단계 홍보 직원이나, 사이비 교주처럼 달콤하게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떤 미혹에도 흔들림이 없다는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 있지 않은가.  


"땅 살 돈은 있어요?" 

나는 그녀에게 나의 상처 입은 자존감에 대해 반격이라도 하듯 말했다.


"그 동안 조금 모아둔 돈이 있어요. 여기서는 장사가 잘되면 건물 주인이 계약을 종료시키고 그 자리에 그대로 같은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반드시 땅과 건물은 우리 소유로 해야 해요. 그래야 임대료도 아낄 수 있고요."

어려 보이는 그녀는 세상 이치를 잘 아는 현자처럼 말했다.

무엇보다 나보다는 많은 돈을 모은 듯해서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여기 급여를 생각하면 결코 작지 않은 돈이었을 텐데 말이다.

조금은 나의 자유분방했던 젊은 시절의 낭비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건물을 짓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요?" 

나는 자꾸 생각에도 없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공연히 그녀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한 5개월 정도면 될 것 같아요."


...... 잠시 후 나는


"그렇군요. 그럼 돈을 좀 마련해 볼게요. 정말 잘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슈렉'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커다랗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소시오패스처럼 거절을 거절하는 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후 시작된 건축기간인 5개월은 나의 모든 월급을 차압당하는 시기였다.

근 반년 가까이 월급이 들어오는 순간 모두 수탈당했다.  

때로는 월급으로도 모자라 생애 처음으로 구매했던 금목걸이까지 팔아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커피숍은 완성되었다.


완성된 카페숍은 모양새가 이상했다. 길쭉하게 늘어진 공간에 3/4은 카페 홀이었고 1/4는 한 칸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방은 사다리를 이용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복층 구조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녀는 그 방에서 동생과 함께 거주할 것이라고 했다.


베트남의 집들은 대체로 앞쪽의 폭이 좁고 뒤쪽으로 길게 만들어진 집들이 많았다.

우리의 카페숍도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런 형태의 집을 *냐옹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그녀에게 왜 베트남에서는 집을 이렇게 길게 만드는지 물어봤다.

하지만 놀랍게도 베트남 사람인 그녀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베트남에 먼저 온 직장선배나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잘 아는 이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마치 사실인 양 설명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콩이 좁은 출입구로 나올 때 사살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터무니없는 말도 있었다.

그 이유가 뭐든 난 완공된 카페의 어엿한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흐뭇해하고 있었다.


 


*냐옹


베트남을 여행하다 보면 독특하고 눈에 띄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폭이 아주 좁지만 높이 솟은 오래된 집들이 줄지어 선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냐옹이라고 불리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건축 양식으로 대중적이면서 독특한 주거 형태이다.


냐옹(nhà ống)은 입구 쪽 전면 폭이 3~4미터 정도로 좁지만 3층에서 높게는 7층까지 높게 올라가며, 내부는 20~30미터까지 깊숙이 들어가는 기다란 형태의 건축양식이다.

마치 기다란 통처럼 생겼다고 해서 베트남어로 파이프라인을 뜻하는 '냐옹'이라고 불린다.

베트남의 옛 도심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특히 하노이와 호찌민처럼 역사가 오래된 구시가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형태의 주택 양식은 고온다습한 동남아의 기후 특성상 한국의 가옥 구조처럼 맞통풍이 이루어지지 않아 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건물마다 창을 낸 곳에 최대한 많은 식물을 배치하여 덥고 습한 공기를 식히고 정화시킨다.

최근에는 신도시를 중심으로 쭝끄(chung cư )라는 아파트들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냐옹은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변함없이 품어 오고 있다.


베트남도 우리나라처럼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쳐왔다.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 이어, 내전과 베트남 전쟁을 겪었으며, 사회주의 체제와 도이모이 개혁 개방정책으로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며 지금에 이르렀다.

베트남의 특수한 역사와 사회문화적인 특성이, 냐옹이라는 독특한 건축 양식을 탄생시켰다.


프랑스는 50여 년간의 베트남 식민 통치 시기 동안 집의 입구 너비가 넓을수록 부유하다고 판단했다.

건축물의 폭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했다. 폭이 넓은 집에 높은 세금을, 폭이 좁은 집에 낮은 세금을 부과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베트남 사람들은 세금을 줄이기 위해 폭을 좁게 유지하고, 깊이와 높이를 늘려 공간을 확보했다. 그 결과, 냐옹이라는 독특한 건축 형태가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후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사회주의 국가로 거듭나면서, 토지분배 방식이 바뀌게 된다.

토지의 개인 소유권을 폐지하고, 국가의 토지 소유를 인정하는 법이 개정된 것이다.

그리고 사회주의의 평등이념에 따라 토지분배 방식을 모든 사람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형태로 변경했다.

그 과정에서 보다 많은 토지가 도로에 맞닿을 수 있도록 땅을 최대한 좁고 길게 분할했다.

그렇게 도시구조는 좁고 긴 형태로 굳어졌고, 여기에 들어서는 건물 역시 폭이 좁은 대신 길이가 긴 형태로 지어지게 된 것이다.


베트남은 여전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렇게 빠른 경제성장과 도시화는 ‘냐옹’의 쓰임새도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다.

오랫동안 대가족이 함께 살아온 주거 공간이었지만, 도시를 중심으로 핵가족이 늘고, 아파트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주택들이 공급되면서 냐옹도 젊은 건축가들 중심으로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재구성되고 있다.

이제 냐옹은 주거 공간 외에도 상점, 카페, 호텔, 레스토랑, 문화공간 등 여러 형태의 상업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의 신선한 시각으로 다시 변화하는 냐옹을 보면 역동적으로 성장 중인 베트남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냐옹이 베트남 대표 건축 양식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독특한 건축물의 형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냐옹이라는 건축 양식 속에는 끊임없이 문화의 본질을 보존하려는 베트남 사람들의 자부심과,

동시에 시대의 변화에 유연하게 발맞춰 새롭게 재해석하려는 유연성 때문일 것이다.


냐옹 속에서는 단지 건축 양식이 아닌 과거의 고난과 아픔을 극복하고 끊임없이 변화 중인 베트남의 현재가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본질을 유지하며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는 냐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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