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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자루 Apr 26. 2024

#3. 주문하신 커피가 나왔습니다.

베트남의 커피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아름답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 타테랑의 '커피예찬'




누군가는 외국어를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이 그 나라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이다.

상대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이 커질수록 말은 많아지고 의사소통은 필수적인 것이 된다. 

그 필수적인 절박함이 외국어 구사에 강력한 기폭제가 된다.


첫인상에 호감을 느꼈던 나는 수업이 계속 될수록 그녀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이 늘어갔다.

석 달 정도 지났을까.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선생님을 불러 세우고는 물었다.


"선생님 배 안 고프세요? 점심 같이 먹을래요?"

수업을 하는 동안 나는 성실하게 수업에 집중했고 개인적인 질문은 철저하게 삼갔다.

하지만 수업이 반복될수록 그녀에 대해 궁금증은 빅뱅이 되어 마음 속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결국 점심식사를 핑계로 사적인 만남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그녀의 나이도, 고향도,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단지 아는 것은 이름과 한국어를 제법 할 줄 아는 과외 선생님이라는 것뿐이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당황하는 표정을 보이더니 이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종선생님 배고프세요? 이 근처에 맛있는 해산물 식당을 아는데..."


그녀는 자신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나를 태우고 근처에 있는 사거리 모퉁이 식당으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동그란 드럼통으로 만들어진 식탁 6-7개가 전부인 식당은 점심시간이 지난 탓인지 한가했다. 

길거리 쪽으로는 벽도 없이 뚫려 있어서 시야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노천식 식당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먹고 싶은 음식이 있냐고 물었지만 베트남 음식이라고는 쌀국수와 반미 밖에 모르는 나는 무엇을 시켜야 할지 난감했다.

그녀는 베트남어로 된 메뉴 위로 인쇄 상태가 흐릿한 음식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오징어 양념구이가 맛있어요."

"전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선생님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골라주세요."


마침 우기가 한참이던 때라 열대성 스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무더위를 한 방에 날리는 청량한 빗소리는 금세 찰랑찰랑 물결치며 작은 도랑을 만들었다. 

비가 쏟아지자 오토바이를 내 달리던 사람들은 한쪽에 오토바이를 세우고는 비옷을 입느라 한바탕 난리였다. 그런 풍경이 낯설면서도 정겹고 재미있었다.

그녀는 볶음밥과 오징어 양념 구이를 주문했고, 나는 오징어가 구워지는 동안 맥주를 주문했다.

쏟아지는 비로 잠시 시원해진 공기와 그 시원함을 각별하게 만드는 맥주의 궁합은 환상적이었다.


오징어 양념구이는 철판 위에 식용유를 살짝 두른 후 양념으로 범벅이 된 두툼한 오징어를 올려 구웠다.

베트남엔 해산물이 풍부하다. 동지나해의 뜨거운 바다에서 건져 오린 해산물들은 하나 같이 맛이 좋았다. 

소나기 냄새와 철판 위에 지글지글 구워지며 피어오르는 오징어의 냄새가 잘 버무려져 맥주 맛을 한껏 돋아주고 있었다.


어느 정도 기분 좋게 취해가고 있을 무렵, 그녀가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빠, 돈 얼마나 있어요?"

"뭐 100만 동(한화 5만 원 정도) 정도 있는 것 같아요. 더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시켜도 괜찮아요."


함께 한 점심 식사 비용이 부담스러워서였을까? 아니면 더 주문하고 싶은 음식이 있어서일까? 

음식값을 치를 정도의 넉넉한 돈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질문은 다시 이어졌다.


"아니요, 돈 얼마나 모으셨냐고요? 지금까지"

"별로 모으진 못했어요. 내가 워낙 노는 걸 좋아해서요."


나는 머쓱해진 기분으로 대충 얼버무렸다. 

당시 나는 40대를 코 앞에 두고 있던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여행과 사진 장비 구입, 출사 활동 등의 취미생활로 돈을 거의 모으지 못했다.

이곳 회사도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전재산이라고 해봐야 고작 천만 원 남짓이 전부였다.


"오빠, 나랑 사업 같이 해보지 않으실래요?"

사업이라는 말에 술기운이 확 달아났다.

갑자기 사업이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지?


"저랑 커피숍을 같이 해보시지 않겠어요? 수익은 50:50으로 나누고요. 제가 인근에 좋은 땅을 봐두었어요. 제가 땅을 사고 오빠가 건물을 지으면 임대료도 안 나가고 운영도 저와 동생이 하면 인건비도 줄일 수 있고요."


그녀는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생각과 계획을 줄줄이 털어놓고 있었다.

이게 무슨 얼토당토않은 상황인가? 

나는 그녀의 아는 것이 거의 없었고 그녀 역시 나에 대해 마찬가지 상황이 아닌가?

게다가 돈과 관련해서 현지인들을 조심하라는 한국 지인들의 경고를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라 이런 제안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나는 *커피를 좋아했지만 커피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사업에 대해 관심은 있었지만 사실 아무것도 준비가 안된 상태였다.

내가 머뭇거리자 그녀가 말했다.


"걱정되세요? 그럼 다음에 저와 함께 커피숍을 할만한 땅을 함께 보러 가지 않을래요? 그 땅 근처에 작은 공장들이 몇 군데 있어서 직원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거든요. 거기서 장사를 하면 잘될 것 같은데 제가 돈이 많지 않아서 오빠랑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그녀의 갑작스러운 사업계획에 불안을 느끼는 것을 눈치 챘는지 함께 가서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는 의미로 말을 했다.

그런데 이 당돌한 선생님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왠지 설득력 있어 보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사기당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래요? 오늘은 좀 그렇고 다음에 한번 같이 가볼까요?" 


'다음에 식사 한번 하자.'라는 의례적 인삿말처럼 대충 둘러 댄 말이었는데 이게 한국에서만 통하는 문화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헤어지고 며칠 후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빠, 오늘 시간 되세요? 저와 같이 전에 말한 곳에 가보지 않을래요?"

그녀가 원래 이렇게 적극적인 사람이었나? 수줍음이 많고 얌전한 선생님이 아니었던가?

나는 무슨 핑계를 대고 이 상황을 모면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그녀는 벌써 공부하던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나오라고 했다.

무언가 불행한 사고가 터질 것 같은 불안감을 안은채 나는 주섬주섬 옷을 갈아 입고 있었다.

내 속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소.'



*커피


베트남은 브라질에 이은 세계 2위의 커피 생산국이다.

프랑스의 식민 시절이었던 1857년,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처음 커피가 들어왔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 후 동독과의 커피 조달 협약을 통해 본격적으로 커피의 산업화가 시작되었다.

그 뒤 1986년 베트남 정부가 주도한 도이 머이(Đổi mới:혁신) 정책을 거치며 커피 산업은 부흥기를 맞는다.

현재 베트남은 전 세계 커피 생산의 20% 가까이 차지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로브스터(Robusta)종 생산지로 성장했다. 

무덥고 습기가 많은 기후로 인해 베트남은 로브스터를 재배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 


베트남 커피 하면 떠올리는 것이 바로 족제비 커피다. 

위즐(weasle:족제비) 커피라고 불리는 족제비 커피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명성과 달리 커피 농부들의 빈곤에서 시작되었다. 

1800년대 베트남에 처음 커피나무가 들어왔을 당시, 커피는 프랑스인들과 베트남의 왕조였던 응웬 가문(Nhà Nguyễn)의 사람들밖에 맛볼 수 없는 귀한 음료였다. 일반 서민은 물론 커피를 생산하는 농가에서조차 커피는 맛보기 어려웠다. 

이들이 커피를 맛보기 위해서는 족제비의 배설물에 남겨진 커피 원두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족제비의 배설물에서 찾아낸 커피는 맛과 향이 감미롭고 부드럽기까지 했다. 

게다가 족제비들이 좋은 원두를 고르는 능력까지 갖추었음이 알려진 뒤 족제비가 선별해 섭취하고 배설한 커피 원두는 최상급의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철창에 갇혀 커피 원두만을 섭취하는 족제비에 대한 동물학대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료처럼 커피 원두를 먹고 배설된 원두가 족제비의 원두 선별 능력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위즐 커피는 여전히 베트남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꼭 구매해야 하는 필수 기념품으로 꼽힐 만큼 인기가 있다.

베트남 달랏에서 유명한 위즐커피 농장 'Mê Linh Coffee Garden'


베트남 로컬 커피숍에서는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야외에 자리한 테이블은 일행과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인도를 향하도록 배치된 곳이 많다.

베트남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호기심이 많고 친해지고 싶어 하는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한다.

때로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것처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알고 보면 일면식이 없는 처음 만난 사이일 경우가 많다. 

젊은이들은 간섭을 좋아하는 나이 든 세대를 야이 더이(Dạy đời:‘훈계하다’라는 의미로 최근에는 ‘꼰대’라는 어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라고 부르며, 거부감을 표현하지만 윗세대들에게는 이것이 타인에 대한 관심 혹은 애정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베트남 사람들은 커피가 건강과 미용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하루의 시작과 끝, 혹은 사이사이의 피로와 무료함을 달래주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브랜드, 장소, 가격이 다르고 경제와 문화가 변함에 따라 인기 있는 브랜드 역시 달라지지만 베트남 사람들에게 커피 한 잔이 갖는 의미는 깊고 소중하다. 베트남의 경제 발전을 이끌어 가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의 지친 하루를 책임지는 베트남의 커피 속에는 고단하고 치열했던 그들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1980년대 우리네 아버지들 그랬던 것과 같은 희생과 땀방울에 대한 위로가 담겨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커피 생산국답게 베트남은 토종 커피 브랜드들이 인기다. 하이랜드(Highlands Coffee), 쯩웬(Trung Nguyên Coffee), 푹롱(Phúc Long Coffee & Tea), 그리고 콩 카페(Cộng Càphê)등의 로컬 브랜드는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23년 상반기 기준으로 YouNet Media에서 SNS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커피 브랜드를 측정한 통계 발표에 따르면 순위는 다음과 같다.


1위 하이랜드 커피

2위 커피 하우스

3위 푹 롱 커피

4위 카티낫 사이공 카페

5위 쭝우웬

6위 스타벅스

7위 킹 커피

8위 꽁 카페


베트남에서 스타벅스는 맥을 못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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