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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자루 Apr 12. 2024

#1. 베트남은 그녀를 두 번 울렸다.

 월남댁과의 운명 또는 우연

'우연이란 노력하는 사람에게 운명이 놓아주는 다리이다.' - 영화 엽기적인 그녀


프롤로그



"오빠, 모자를 살까? 선글라스를 살까?"

나를 만나기 위해 베트남까지 찾아온 그녀가 3박 4일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 호찌민 떤썬녓 공항에서 티켓팅을 마친 후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한 후 모자를 권했다.

그러나 그녀는 선글라스를 하나 집어 들고 계산을 마친 후 서둘러 선글라스를 썼다.


그녀의 시선이 가려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선글라스 밑으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역시 선글라스 사길  잘했지?" 그녀가 눈물 섞인 촉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애써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지만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선글라스는 눈물로 얼룩진 마스카라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내내 울어서 부은 눈을 가리기 위한 유일한 선택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와 9년간의 연애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종말을 맞이했다.


그녀와 나는 캠퍼스 커플이었다.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사립학교 교사로 그녀는 임용고시 재수생으로의 생활을 시작했다.

결혼을 꿈꾸기도 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셨고, 그녀의 어머니는 극구 반대하셨다.

그 흔한 '내 눈에 흙이..'라는 뼈 아픈 말을 직접 듣게 되는 드라마 같은 경험도 하게 되었다.


나는 5년 간의 교직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NGO 단체를 통해 베트남 하노이로 2년간의 자원봉사를 떠났다.

공항까지 배웅을 나온 그녀는 살짝 눈물을 보이며 내가 군대라도 가는 마냥 잘 마치고 빨리 돌아오라고 했다.


하노이에서 2년을 다 채우지 못한 채 나는 자원봉사 생활을 정리하고 호찌민시로 내려왔다.

부산에서는 제법 알려진 중견 기업의 해외 계열사인 H기업으로부터 오퍼를 받아 교육팀장으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베트남 생활 2년 차에 그녀로부터  갑자기 나를 만나러 오겠다는 통보 비슷한 연락을 받았다.

난 그저 그녀를 오랜만에 만날 수 있다는 설렘에 들떠 있었다.

그녀를 만나서 월급도 괜찮은 직장을 잡았으니

나와 함께 베트남에서 살면 어떻겠느냐고 은근히 결혼에 대한 속 마음을 내비쳤다.


"주재원 아내들이 베트남에 올때 두 번 운데. 그게 언제인지 알아?

첫 번째는 오기 싫어서 울고, 두 번째는 다시 돌아가기 싫어서 운데.

여기 베트남 생활이 처음에 불안하고 걱정되겠지만 알고 보면 제법 살기 좋은 곳이라니까..."


애써 설득해 봤지만, 그녀는 무거운 입술을 힘겹게 여는 듯한 표정으로

한국에서 지인을 통해 다른 남자를 소개받아 만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전화로 전하기 싫어 직접 왔다는 것이었다.

동방예의지국에 걸맞는 말이었지만 나에게 조금은 잔혹한 처사였다.


그녀는 결국 베트남과 관련하여 두 번의 눈물을 흘린 것이다.

한 번은 나를 베트남으로 떠나보내며, 그리고 또 한 번은 나를 베트남에 남겨두고 떠나며.


그녀의 눈물에는 나에 대한 원망과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적당하게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연을 가장한 새로운 운명의 시작은 그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운명은 그 순간 우연을 가장하여 나와 월남댁의 만남을 진행하고 있었다.



* 호찌민 떤썬녓 공항 (Sân bay quốc tế Tân Sơn Nhất)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입국할 수 있는 공항은 하노이 '노이바이(Noi Bai) 국제공항', 호찌민 '떤션녓(Tan Son Nhat) 공항' 다낭에 '다낭(Da Nang ) 국제공항', 푸꾸옥에 '푸꾸옥(Phu Quoc) 국제공항' 정도가 있을 것이다. 


베트남에는 총 22개의 민간공항과(국제공항 14개, 국내공항 10개), 14개의 군공항이 있다. 

그중 떤썬녓 국제공항은 총면적이 850헥타르로 베트남에서 가장 크다. 

떤썬녓 공항은 호찌민시 중심부(1군)에서 7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착륙할 때면 호찌민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성냥갑처럼 작게 내려다 보이는 주택들과 유유히 흐르는 사이공 강줄기, 그리고 길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토바이의 행렬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이 공항 터미널은 연간 2,800만 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2019년에 이미 수용능력이 최대인 4,100만 명의 승객을 초과했다.

그래서 베트남 정부는 호찌민시에서 50km 떨어진 동나이성 롱탄현에 새 공항을 건설 중이다. 

이 공항의 이름은 롱탄 국제공항으로 신공항 마스터플랜은 2006년 4월에 승인되었다. 

2020년 완공 예정이었으나 아직도 건설 중이며 언제 완공될지는 알 수 없다. 


1930년대 초반 프랑스 식민 정부에 의해, 떤썬녓에 이 비행장이 건설되었다.

떤썬녓 국제공항은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여행자들을 유혹하고, 방문하는 이들에게 아련한 느낌을 안겨준다. 

그곳에 내려서는 순간, 베트남의 뜨거운 열기가 환영하듯 당신을 감싸 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공간은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는 곳으로, 새로운 경험과 모험의 시작을 알리는 문턱이자, 베트남의 아름다움을 예고하는 문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공항을 통해 희망을 찾아 떠났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안고 베트남에 들어왔을까? 수많은 이별과 그만큼의 만남이 이루어졌을 이 공간에 나의 아픈 추억도 아로새겨져 있다.

그래서 나에게 떤션녓 공항은 애틋하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호찌민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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