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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자루 Sep 16. 2024

#10. 우주가 말했다. "싸우자."

니체의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할 뿐이다.'

강함이란 고난과 좌절을 견디는 힘이 아니라,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용기이다.




어릴 때는 누구나 한 번쯤 영웅이 되고 싶어 한다.

나의 어린시절 영웅은 10대에는 슈퍼맨, 20대에는 홍콩 누아르 영화를 주름잡던 주윤발 같이 멋진 영웅들이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이르면, 우주 최강의 영웅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았던 적도 있었다.

어린 시절, 군인이 되면 그 시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군인이야 말로 무서울 것 하나 없는 최강의 어른이 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철딱서니 없는 생각이었다.

군에 입대해서 매일 삽질하면서 '아, 삽질하는 최강의 영웅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어.' 라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30대, 40대를 넘긴 후에도 인생은 전혀 호락호락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나는 영웅 비스무리한 것도 되지 못했다.

인생의 중반에 접어든 중년이 되어서는 그 따위 유치한 희망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게 되었다.

강함이라는 영웅적 로망은 작별의 인사도 없이 내 사고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마 우주최강의 영웅이 되는 날은 나같은 소심한 사람에겐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다.

예상은 항상 빗나가고 계획은 틀어지며, 인생은 자꾸 꼬이는 법이니까.

이렇게 꼬이고 꼬이다 보면 매일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두들겨 맞는 악당의 무명 부하로 전락한 기분이다.


자고로 영웅이란 험난하고 어려운 모험의 길에서 만나는 악당과 싸우며, 정의를 지키는 그런 멋진 모습이어야 한다. 하지만 일상 생활의 작은 문제에도 좌절과 실망으로 무릎을 꿇게 된는 그런 날이 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머피의 법칙 같은 것 말이다.

뭔가 잘될 것 같은 기분으로 자신만만하게 하루를 시작했는데, 우주가 나를 향해 조용히 "그건 니 생각이고."라고 속삭이는 것 같은 날.

바로 오늘의 나처럼 말이다.


좋은 아침이었다. 회사를 향해 가는 통근 차량은 지옥행 급행버스 같다.

러시아워를 피한다는 이유로 업무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회사에 나를 내려놓는다.

다행히도 아침형 인간에겐 그리 가혹한 처사는 아니다.  

출근한 사무실에서의 마시는 느긋한 커피 한 잔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성화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신성하다.

그것도 무려 우아한 아메리카노 커피다.

하루가 어떻게 풀릴지는 모르겠지만, 커피 한 잔은 아침에 나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각성제다.

부드러운 향과 씁쓸한 맛이 아직 달아나지 않은 잠의 조각들을 말끔히 씻어 내린다.

한잔의 커피만 제대로 마실 수 있다면, 그 하루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서랍에서 커피를 찾는데 '없다.'

"아. 어제 다 마셔서 새로 산다는 걸 깜빡했네..."

살짝 불안감이 찾아든다. 하루의 첫 단추가 꼬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커피 중독자에겐 아침의 커피 루틴이 깨진다는 것은 아주 아주 불길한 징조이다.

이렇게 작은 일 하나가 아침부터 기분을 망치기 시작한다.

세상사 달관할 줄 아는 중년이라면 “이 정도 가벼운 일은 덤덤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여전히 커피 한 잔이 없다는 사실은 배신감마저 들게 한다.

일단 동료에게 설탕과 프림으로 가득 찬 믹스 커피를 빌려본다.

달달하다. 그런데 너무 달달하다.

텁텁한 프림과 설탕의 끝맛이 뒤끝 작렬하는 상사의 성난 고함소리 같다.

믹스 커피가 말한다. "신경 쓰지 마. 나 뒤끝 없는 사람(?)이야."

그런데 자꾸만 신경 쓰인다.

 

'나는 용감하고 강하다. 이 정도 텁텁함 쯤이야. 훗' 썩소를 날리며, 우주의 도전에 멋지게 응전하며

업무를 시작해 본다.

그때 컴퓨터 화면에 메일 알림이 뜬다. “긴급회의, 오전 8시.”

순간 머릿속에서 “뭐? 또?”라는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이런 류의 알람은 늘 어깨를 짓누르는 법이다.

회의실로 향하면서 속으로 “오늘은 또 무슨 긴급한 사항일까.”궁금해진다.

카페인 부족으로 텅 빈 뇌를 흔들어 깨워본다.

긴급회의란 건 언제나 예상치 못한 문제를 의미한다.

상사가 무슨 문제를 제기할지 알 수 없으니, 회의실로 가는 길이 편안할리 없다.

회의가 시작되면 상사는 딱히 중요한 말도 없이 시간을 잡아먹는다.

"우리 회사가..."로 시작하는 늘어지는 이야기들.

단군이래 한 번도, 그렇다. 단 한 번도 위기가 아니었던 때가 없었던 회사의 비상 상황에 대한 상사의 절절한 애사심 넘치는 훈계는 어린 시절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처럼 길고 지루하다.

내 머릿속으로 해야 할 업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내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사의 입에서 쏟아지는 말들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 비상 상황에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상사의 목소리가 멍한 머리를 더욱 힘차게 흔들고 있다.

'맡은 바 업무를 충실히 해내고 기강을 세워 어려움을 극복하자!'가 주제였다는 것은 두 시간 가까운 회의가 끝날 무렵 간신히 알아듣게 되었다.


이대로 오늘 하루가 다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장장 2시간 가까운 정신교육인지, 장황한 연설인지 모를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오자 예상대로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아, 오늘도 망했군”이라는 생각과 함께 커피 생각이 다시 떠오른다.

"차라리 커피라도 있었으면 버틸 만했을 텐데..."

커피 한잔에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멘털로 우주의 도전에 응전하겠다는 나의 무모함이 자괴감만저 든다.


오전의 아수라를 간신히 넘기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시간만큼은 나만의 시간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잠시 홀가분한 기분으로 식당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때, 아내에게서 카톡 알림이 울린다. 불길하다. 아내의 카톡 알림은 언제나 그렇다.

“오늘 저녁에 여동생이 온다고 하니, 일찍 들어와서 도와줘.”

이 한 마디에 머릿속이 다시 혼란의 빅뱅으로 치닫는다.

오늘 저녁엔 좀 쉬고 싶은데...

이제부터 저녁 스케줄을 다시 짜야한다.

오늘 저녁에는 산책도 포기해야 하고, 글을 정리할 계획도 수정해야 한다.  

모든 계획은 순식간에 날아가고, 청소, 저녁 준비, 손님맞이를 고민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쯤 되면 우주가 나를 향해 도전해 오는 것 같다.

"오케이, 우주가 또 나랑 싸우자고 덤비는구나. 그래 어디 한번 덤벼봐라."


손님을 보내고 나서, 조용해진 부엌을 보니 설거지거리가 산더미다.

몰래 잔디를 데리고 산책이라도 나가야 이 설거지 산사태를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 모든 생각을 간파하고 있는 매서운 아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가려면 설거지하고 나가!"


결국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해치우고 나서야 조용한 밤거리를 향해 터벅터벅 산책길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나의 운명을 뒤흔드는 우주는 아내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나에게 계속 펀치를 날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마저 하게 된다.

노래진 머릿속에 '어차피 내일도 별반 다르지 않은 재난 영화 같은 하루가 반복되겠지.'라는 자조 섞인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

우주가 나를 가지고 노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래, 우주야. 네가 이겼다. 이제 그만하자."

나는 선처를 바라는 교통법규 위반자처럼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백기를 든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니체의 말이 계시처럼 들려온다.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그것이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아니, 어떻게 매일같이 반복되는 이 불운의 연속을 사랑하란 말인가?

운명을 사랑하라니, 도대체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어야 사랑하지!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울한 새드 무비로 시작해서 재난영화로 진행되다가 공포영화로 끝이난 오늘 하루를 무슨 재간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니체의 말은 그럴 듯 하지만 문제는 내 운명이 너무 "사랑할 맛"이 안 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가혹한 운명을 ‘사랑’할 정도로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다.

나의 운명은 아무리 자세히 봐도 사랑스럽지 않고, 오래 봐도 사랑스럽지 않다.

그렇다.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다.


그때 니체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 같다.

“너를 죽이지 못하는 것들이 너를 강하게 할 것이다.”

현실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니체가 야속하다.

오늘 아침에도 커피를 마시려다 텀블러를 떨어뜨려 중요한 서류에 커피를 쏟았고, 발표 자료를 날렸으며,

집에 돌아왔더니 아들의 엉망진창 시험 성적표가 부끄럽다는 듯 빨간 볼을 하고 나를 반긴다.

이 모든 불운을 이겨내면 나는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인가?

문득 궁금해진다.

내가 영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건 몇 살 때였을까?


인생은 기본 설정이 '어드벤처 모드'로 설정되어 있는 것 같다.

어느 방향으로도 무사히 갈 수 없는 복잡한 모험으로 이어지는 재난영화처럼 말이다.

결국, 예측 가능한 삶이란 건 사실 환상에 불과하며, 그런 현실을 가볍게 이겨낼 능력이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지만 니체는 강함이란 고난과 좌절을 견디는 힘이 아니라,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용기라고 했다.

한 번 계획이 틀어졌다고 해서 좌절하고 거기서 끝내는 않는 것이 진짜 강함이라는 것이다.


언제나 나를 괴롭히는 두둑한 중년의 뱃살을 예를 들어보자.

나는 매번 7kg의 살을 빼겠다는 대담하고도 용감한 다이어트 계획을 세운다.

당연히 매번 실패로 끝난다.

그럼에도 다시 이 대담무쌍한 다이어트 계획을 세워본다.

그런데 첫날부터 친구가 맥주와 치킨을 들고 찾아온다면?

자, 여기서 니체식 사고를 해보자. 치맥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나의 의지는 더 강해질 것인가, 아니면 맛있게 먹고 내일부터 다시 시작할 용기를 가질 것인가?

니체는 아마도 후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언제든지 틀어졌을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라는 것이다.

삶이 어긋나면? 괜찮다, 다시 돌아가면 된다. 이게 니체가 말하는 진짜 "강함"이다.

그렇게 보면 인생의 고비는 언제든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용기를 배우는 기회인 셈이다.


그렇다. 우주는 내 삶을 계획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매번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고 가고, 어느 때는 내 선택을 웃음거리로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운명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실패를 잊고 다시 도전할 수만 있다면 이 운명이 나를 더 강하게, 더 현명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니체는 우리에게 항상 삶의 혼란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아모르파티", 운명을 사랑하는 법이다.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은 받아들이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해 보자.

100번쯤 포기하고 나면 비겁한 내가 싫어서라도 일어서게 될 것이다.

칠전팔기야 말로 우주라는 운명에 대항해서 이길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하루의 예상이 빗나가고 계획이 어그러졌다고 해도, 다시 일어서 보자.

결국,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언제나 영웅은 우리 마음속에서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속삭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릎을 꿇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던 영웅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우리 마음속에서 되살아 날것이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지옥행 특급버스에 올라타서 하루의 시련을 견뎌내는 우리의 모습이 어쩌면 우주 최강 영웅의 모습은 아닐까.

산책도, 글쓰기도, 매번 '다시'를 외치는 대담한 다이어트 계획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순간을 이겨내서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 안에서 꿈꾸던 영웅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참, 깜박하고 있던 아메리카노 커피를 사러 가야겠다.

어쨌든 오늘도 나는 살아남았고, 내일은 나를 단련시킬 또 다른 내일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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