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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악산 시지프 Sep 05. 2022

약사의 스킬트리 (1)

약사에게 중요한 능력들

약을 다루는 약사가 약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 아무리 말을 잘하고 손이 빠른 약사라 하더라도 약을 모르면 그건 약사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런걸 '약팔이'라고 하지 '약사'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약사가 약에 대한 지식만 가지고 있고 그걸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하다면 약사 본인을 포함해 같이 일하는 동료, 그리고 약을 받으러 온 환자까지 참 답답해지는 상황에 놓인다. 거기에 업무 능력이 부족한 당사자가 본인의 지식과 위치만을 앞세워 자존심을 세우고 주변인들을 무시하려 든다면, 우리는 이런걸 '꼰대'라고 하지 '약사'라고 하지 않는다.



조금 더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면 약에 대한 지식은 '하드 스킬'으로, 기타 업무 능력은 '소프트 스킬'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 하드 스킬에 속한다면 소프트 스킬이 뜻하는 바는 조금 모호한데,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소프스 스킬(soft skill)이란 '타인과 협력하는 능력, 문제 해결력, 감정을 조절하는 자기 제어력, 의사소통 능력, 리더십, 회복 탄력성 등 (한경 경제용어사전)'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소프트 스킬은 어떤 환경에 근무하는지에 따라 요구되는 능력의 종류가 달라질 수 있다. 여러 사람들과 협력해야 하는 직책이라면 '팀 워킹'이 중요한 소프트 스킬이 되고, 장기 프로젝트를 단계에 맞게 이끌어 가야 하는 직책이라면 '계획 능력'이 중요한 능력이 되는 식이다.



출처 : https://medium.com/urechanger/프로그래머스-스킬트리-b35d3495b11f


게임에는 흔히 '스킬트리'라고 부르는 것이 있는데 내가 택한 캐릭터에 따라서 획득해야  스킬의 종류가 달라진다. 게임을 하면서 포인트를 획득하면 특정 스킬을 배울  있고 어떤 스킬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음 단계에 배울  있는 심화 스킬의 종류가 달라지기 때문에 마치 나무가 가지를 치는 것과 모양이 비슷해져 스킬'트리'라고 부른다.

나도 약사로서, 혹은 연구자로서 나에게 어울리는 나무를 그리기 위해 가지를 뻗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약사도 어떤 환경에 근무하는지에 따라 필요한 능력치가 달라진다. 병원에서 일하는 약사, 동네 약국에서 일하는 약사, 또는 회사에서 일하는 약사들은 모두 각각이 요구받는 능력의 범위가 다르다. 이번 글은 일반인들이 흔히 '약사' 하면 생각하는 동네 약국의 약사를 중심으로 이들에게 중요한 능력에 대해 서술했다. 그것도 뭇사람들이 예상하기엔 생소하지만, 약국 약사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능력들을 위주로 정리해 봤다. 분량상 두 번에 나누어 주제를 다룰 예정이다.



1)



첫 번째 능력은 '멀티태스킹'이다. 약국 근무를 시작하기 전부터 약국이 바쁘다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정신이 없을 줄은 몰랐다. 환자 한 명이 들고 온 처방전을 전산에 입력하기 시작하면 뒤에 환자가 "파스는 어딨어요?" 하고 묻는다. 더 먼저 들어온 환자는 반창고, 모기약 같은 것을 집어 와 카운터에 두고 계산을 기다리고 있다. 간신히 처방을 자동 조제기에 넘긴 다음 급하게 카운터에 있던 의약외품들의 계산을 마치고 조제기에서 나온 약을 검수하기 위해 조제실에 들어가려고 하면 아까 파스를 찾던 손님이 와서 아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파스에는 어떤 게 있는지 묻는다. 그렇게 파스에 대해 안내를 하고 조제된 약의 검수를 마친 다음 들고나오면 카운터에는 뒤에 손님이 가져온 처방전이 하나 더 놓여 있고, 파스를 다 고른 손님은 미리 꺼낸 카드로 카운터를 두들기고 있고, 먼저 처방전을 가져온 손님은 미어캣처럼 목을 쭈욱 빼고 내 약은 언제 나오는지 눈을 뒤룩뒤룩 굴리며 서 있다.



출처 : 영화 '몬스터 대학교(2013)'


디즈니‧픽사가 제작한 영화 '몬스터 대학교' 중 스시집에서 일하는 문어 몬스터다. 어렸을 때는 개의치 않은 장면이지만 지금 보니 조금 안쓰럽다. 심지어 이 문어 몬스터는 1분 뒤 풍비박산 난 자신의 가게를 마주하게 된다.

사진에 보이는 문어는 한 손으로는 재료를 손질하고, 한 손으로는 초밥을 나르고, ... 한 손으로는 전화를 받고 있다. 약국에 한창 손님이 몰려있을 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면 그 소리가 참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처음 약국 근무를 시작해 아직 일이 아직 손에 익지 않았을 때는 원하는 만큼 멀티태스킹을 하지 못하는 나 자신과 기다릴 줄 모르고 재촉만 하는 손님들이 원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잠깐 생각할 시간을 주면 환자의 증상에 더 좋은 약을 추천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환자와 말하면서 동시에 약을 주자니 생각을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환자들 중에는 약사가 상담 도중 약의 성분표를 보거나 고민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약사가 약을 잘 모른다고 의심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약국의 특성상 간혹 손님이 몰려 여러 업무를 동시에 처리할 필요가 생길 때가 있고,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환자에게 건강상의 위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약사의 '멀티태스킹' 능력이 중요해진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환자가 먹으면 안 될 약을 먹거나, 잘못해서 다른 사람의 약을 먹는 사고는 발생하면 안 되고, 더불어 약이 최선의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약사의 책임이므로 약사의 손과 뇌는 바쁘지만 정확하게 움직여야 한다.



(다음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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