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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악산 시지프 Sep 06. 2022

약사의 스킬트리 (2)

약사에게 중요한 능력들

2)



지난번 글에 이어 이야기할 약사에게 중요한 두 번째 능력은 소통 능력이다. 약국에서 일하다 보면 가끔 가족오락관이 생각날 때가 있다.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와 아크릴판이 환자와 약사 사이를 가로막아 연신 '뭐라고요'를 외쳐야 하는 요즘은 더 그렇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환자와 약사 사이에는 항상 가족오락관에 나오는 귀마개처럼 소통을 방해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지금은 사라진 티비 프로그램 '가족오락관' 중 '고요속의 외침'이라는 코너, 오늘날까지 여러 예능에서 리메이킹 되고 있다.


'전문가'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특정 분야에 전문가라는 건 적어도 그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전문가'와 '일반인'의 소통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제 막 덧셈과 뺄셈을 배우는 중인 초등학생에게 미적분을 가르치긴 어려운 것처럼 약의 전문가인 약사가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 모두를 환자에게 완벽하게 전달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약국에는 시간적 제약이 존재한다. 기다리고 있는 다른 환자들을 무시하고 한 명의 환자에게만 시간을 쏟을 수는 없는 데다 갈 길이 바쁜 환자도 약사의 구구절절한 설명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대체로  명의 환자가 약사를 마주하는 시간은   남짓이다. 매일 와서 똑같은 약을 받아 가는 환자의 경우에는 그보다 시간이 적게 걸리기도 하고, 질문이 많은 환자는 그보다 오래 걸리기도 한다.  짧은 시간 동안 약사는 환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선별해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내용을 전달한다. 거기에 엉뚱한 곳에서 잘못된 정보를 듣고  손소독제를 먹겠다는  약사에게 이상한 약을 요구하는 환자를 보면 설득도 해야 하고, 전에 분명    약을 받아 갔는데  달이 지나도 처방전을 다시 가져오지 않으면 넌지시 집에 약이 얼마나 남았는지 물으며 약을 제대로 먹은  맞는지 확인도 한다.



하루에 수십 명의 환자를 마주하는 약사에게 소통 능력이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하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우수한 소통 능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는 거다. 약사가 더 효율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방법을 익히고 환자 사례에 따른 올바른 의사소통 방법을 계속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3)



마지막으로 다룰 세 번째 능력은 '자기 회복 능력'이다. 회복 능력이라니 엑스맨의 울버린처럼 상처 부위를 무한정 재생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상상했다면 이것도 완전히 틀린 추측은 아니다. 다만 회복 부위가 육체가 아닌 정신이라고 보면 되겠다. 자기 회복 능력은 쉽게 말하면 강철 멘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화 '로마의 휴일(1953)'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공주 '앤'은 연일 과도한 스케줄을 소화하다 심각한 불안 증세를 보인다. 결국 수면제까지 맞은 앤은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밖으로 도망쳐 버린다.

약국에서 일하던 어느 날 카운터 앞에 손님들은 잔뜩 줄을 섰는데 약국 전산 시스템은 먹통인데다 중재가 필요한 처방이 있어 의원에 연락 후 변경된 처방전을 팩스로 전달받으며 한참 애를 먹은 일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막막해져서 솔직한 심정으로는 가운을 벗어 던지고 이대로 집으로 탈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결과적으론 여느 때처럼 환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무사히 조제와 판매를 마쳤다.



약사법 5(결격사유) 보면 정신질환자는 약사 면허를 받지 못하게 되어있다. 혹시 모를 질환자가 환자에게 위해를 끼치거나 마약류 등을 불법적으로 유통하는 행위를 막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약국에서 일하다 보면 정신병에 걸릴  같은 상황들이 종종 찾아온다. 짧은 시간에 여러 환자 케이스를 상대하다 보면 압박감에 시달릴 때도 있고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진상손님이 들이닥칠 때도 있다.



그래서 나의 주관적인 견해로 이야기하는 약사에게 중요한 마지막 능력은 '자기 회복 능력', 즉 '강철 멘탈'이다. 환자들의 건강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약사 자신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므로 스스로의 회복을 돕고 가끔 너덜너덜해지는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약사가 되면 좋겠다.



출처 : EBS 자이언트 펭TV


솔직함과 귀여움으로 세상을 구하는 중인 펭수가 서울대 의대 입학을 위해 본 면접에서 면접관과 한 대화의 일부다. 약사가 아닌 의사를 주제로 한 대화이지만 보건의료인으로서 마음이 저릿했던 대목이다.

"펭수가 생각하는 좋은 의사는 어떤 의사라고 생각해요?"

"저는 항상 생각했어요. 의사도 마음 아프겠다. ... 좋은 의사는 자신을 어루만질 수 있는 의사, 자신 먼저 치료해줄 수 있는 건강한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다음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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