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은 약사에게 위기일까 기회일까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제목에 쓸까 말까 계속 고민했다. 왠지 딱딱해 보여서 어려운 내용이 담겨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개인적인 이유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 까닭도 있다. 정부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캐치프레이즈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행사, 강연, 사업, 책과 같은 온갖 것들에 이 단어가 붙기 시작했다.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반드시 기획서에 포함돼야 했고 그래서 전체 주제에 맞지 않는데 억지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많다. 그럼에도 앞으로 이야기할 주제를 드러내기엔 4차 산업혁명이 가장 적절한 단어인 것 같아서 제목으로 사용하게 됐다.
과학이 발전한 덕분에 우리는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실내에서 편하게 뒹굴거릴 수 있고, 또 세상 어디든 비행기로 하루 안에 닿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과학자들이 기울인 노력으로 정말 많은 것들이 편리해졌지만 그렇다고 과학의 발전이 항상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술이 발전한 만큼 강한 무기가 만들어져서 들판에서 팬티만 입고 뛰어다니며 고작 돌이나 던지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과는 다르게 이제는 한 번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폭탄과 총알에 더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다. 비행기와 같은 이동 수단의 발전도 마찬가지다. 비행기는 사람과 함께 바이러스와 같은 질병들의 이동도 쉽게 만들었고 여기에 대응할 힘이 없는 가난한 지역에 사는 사람일수록 전 세계에 전염병이 유행할 때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항상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지닌다. 올더스 헉슬리의 말처럼 과학은 항상 잠재적인 유해성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올더스 헉슬리가 저술한 고전 SF ‘멋진 신세계’는 과학만능주의를 신랄하게 깎아내린다.
이야기에 나오는 신세계는 과학기술로 하층계급 복제인간을 대량 생산하는데 다음은 우연히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야만인”(어느 쪽이 진짜 야만인인지 모르겠으므로 이 단어조차 역설적이다.)이 이 광경을 목격하는 장면이다.
... 다리가 짧고 왼손잡이인 34명의 델타 마이너스 남자들이 그것을 상자에 넣었고 새파란 눈과 주근깨투성이의 63명의 엡실론 저능아들이 대기 중인 트럭과 전차에 그것을 적재했다.
“오, 멋진 신세계…….” 야만인은 어떤 악의에 찬 장난으로 미란다의 말을 기억해내어 반복했다. “이러한 인간들이 사는 멋진 신세계여.”
그들이 공장을 떠날 때 인사부장이 결론적으로 말했다. “확실히 말씀드리지만 이곳 노동자들 사이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난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야만인은 그들로부터 갑자기 이탈하여 월계수나무 뒤로 달려가며 격렬하게 구역질을 시작했다. 굳건한 이 대지가 마치 에어 포켓에 들어간 헬리콥터라도 탄 것처럼 멀미 증세를 느꼈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인공지능의 발달도 이 같은 양면성을 가진다. 그동안 사람이 하던 일을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되면서 귀찮고 위험한 일은 기계가 할 테니 사람은 이제 안전하고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장밋빛 전망도 있지만, 기계에 직업을 빼앗긴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고 결국에는 빈부격차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현실적인 위기의식도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약사도 이런 위기의식의 대상에 포함돼 4차 산업혁명 이후 사라질 직업에 속하지 않겠냐는 질문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한 병원에서는 이미 로봇이 약사를 대신해 약을 짓고 있다고 한다. 관련된 영상을 보면 팔만 보이는 로봇이 약이 진열된 선반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의사가 입력한 처방에 맞게 약을 가져와 포장까지 마친다. 로봇은 지치지 않으므로 따로 잠잘 시간이나 휴식 시간이 필요하지 않고 사람이 하는 것보다 오류 확률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면 약사는 이대로 로봇에 밀려 사라져 버리는 걸까?
이번에도 고전 SF인데,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인공지능과 사람이 대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커다란 우주선에 타고 있는 쪽이 ‘HAL 9000’이라는 인공지능이다.
“격납고 문을 열어, HAL”
“미안합니다, 데이브. 유감이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뭐가 문제이지?”
“제가 알고 있는 것처럼 당신도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것 같은데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HAL?”
“이 임무는 너무 중요해서 당신이 이끌도록 할 수 없습니다.”
나도 약사이기 때문에 약사가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면 솔직히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에는 기사에 약 자판기가 설치된 약국의 사진이 올라왔다. 물론 약사가 화상통화로 환자와 이야기를 나눈 다음 자판기에서 약을 떨어뜨리는 방식이었지만 기계가 환자에게 약을 준다는 점에서 기술의 발전이 어디까지 다가왔는가를 실감하게 한 사진이었다.
약사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라질 수도 있는 직업으로 언급되는 것은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약국에서 일하는 약사를 그저 선반에서 약을 꺼내 포장해주는 사람 정도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사의 미래는 현재 약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미래에 약사로 일할 사람들이 약사의 전문성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에 달려있다. 약사가 단순히 약을 짓는 데만 집중한다면 언젠간 약국에 약사 대신 인공지능 로봇이 서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약사가 사람 대 사람으로 환자와 소통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로봇으로 대체될 수 없는 서비스를 계속 발전시킨다면 미래에도 약국에는 약사들이 있을 것이다.
앞선 비관적인 전망과 반대되는 긍정적인 예측도 존재한다. 만약 기계와 인공지능이 비교적 단순하고 시간만 오래 걸리는 일을 약사 대신 해줄 수 있다면 약사는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환자가 받는 약물 치료의 질을 더 높일 수 있다. 사람과 기계가 공존하는 최상의 시나리오이다. 흔히 과학 발전의 어두운 면은 과학의 본질에 있지 않으며 사람이 과학을 어떻게 이용하는 가에 달려있다고 이야기한다. 결국에 미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다음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