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ADHD인데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성인ADHD 검사 결과 후기
ADHD 검사 후 일주일 뒤 다시 병원을 찾았다.
진료실에 들어가
모니터를 보며 결과를 듣기 시작했다.
먼저, 뇌파 검사 결과였다.
기억력을 담당하는 뇌파의 정보 처리 속도가 떨어졌다.
뇌 그림 속 기억력을 담당하는 부분이 빨갛게 표시되어 있었다.
두 번째는 설문 검사였다.
우울은 낮으나 불안도가 높았다.
실제로 나는 걱정이 많고, 쉽게 불안해한다.
특히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기를 아주 불안해하는데, 대학생 시절 발표와 취업 면접에서는 거의 울먹거리면서 다녔다.
세 번째는 CAT로 불리는 게임 검사였다.
가장 충격적인 결과들이었는데 집중력이 아주 매우 크게 낮았다.
게임을 진행하며 초반, 중반, 후반 점수를 비교해 집중력을 체크하고
ADHD의 경우 보통 단계별로 10점씩 떨어진다고 한다.
나는 초반 점수가 80점 수준으로 지능은 우수한 편에 속한다고 하였으나,
중반은 7점 그리고 후반은 4점이 나왔다.
아니, ADHD여도 10점씩 떨어진다고 했는데 이 점수는 뭐지? 선생님도 당황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 세 번째 검사에서는 청각 정보 처리 능력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왔다.
이야기를 들어도 머릿속에 내용이 남지 않고 휘발되어 버린다는 거다.
소리는 들리는데 정보가 남지 않는..
이 결과를 듣고 내가 물었다.
"선생님 그럼 저는 ADHD가 맞는 건가요?
"아니요, 그건 이 검사만으론 단정하기 어려워요"
경계와 저하가 수두룩 빽빽한 검사 결과지를 보고도 아니라니 의문에 들었다.
선생님은 나를 두 번째 보는 것이고,
아무래도 성인이다 보니 소아나 청소년보다 다른 영향이 많아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결과들이 ADHD가 아니라 다른 우울증 또는 불안 장애 등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검사 결과지를 보다 칠각형 그래프를 발견했다.
평균 점수와 내 그래프가 아주 유사하게 일치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시 물었다.
"선생님, 이 그래프를 보면 평균에 가까운데 그럼 저는 일반적인 사람인가요?"
"아니요"
응? 이것도 아니라니?? 또다시 의문에 빠졌다.
"성인 ADHD 검사는 다른 질환으로 병원에 다니다가 의사가 권유하거나,
환자분처럼 직접 찾아오는 경우 검사하기 때문에 사실 전형적인 ADHD 증상을 가졌다는 결과예요"
아... 검사 모집단 자체가 특이하기 때문이라는 거구나
일단 내 마음속으로 '나는 ADHD가 맞구나' 하는 진단을 내렸다.
선생님은 약물 치료도 가능하지만
현재 이 증상들로 일상생활에 큰 문제가 없다면 굳이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 기한을 놓쳐 큰 문제가 된 적이 있는지, 회사에 일부러 안 간 적이 있는지 등을 물으셨는데,
그건 아니었다.
모범생이었거나 우수사원은 아니지만 평범한 4년제 대학을 나와 멀쩡한 회사를 다니고 있는 중이기는 했다.
그리고 약물 치료를 하려면 술을 끊어야 한다고 했다.
술을 먹으면서 약을 먹을 수는 없다고.. 사실 어느 병원에서나 하는 당연한 말이기는 했다.
과장 하나 없이 한 달에 거의 이틀을 빼놓고 내리 술을 먹는 나에게
오히려 이쪽이 힘든 일이었다.
친구 또는 가족과 술을 먹거나 약속이 없다면 집이나 술집(이자카야나 위스키바)에서 혼술을 한다.
누가 취미가 무어냐고 물으면 혼술이라고 할 정도로 난 이 시간을 굉장히 즐거워하는 편이다.
알콜 중독 치료를 먼저 하고 술을 끊은 뒤 ADHD 치료를 하자는 말씀에
병원을 찾아올 때 보다 더 많은 고민이 들었다.
'내가 술을 끊을 수 있을까?'
일단 알콜 중독 치료약을 받았다.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을 줄여주고, 술을 마시면 조금 더 빨리 취할 수 있다고 했다.
몇 장의 요약된 검사 결과지와 알콜 중독 치료약을 들고 병원을 나서며 생각했다.
'27만 원의 검사비가 아깝지 않군'
나를 한 단계 더 알아간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나는 알콜 중독 치료약을 단 한 번도 먹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