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째 이불 킥! 파트 1

퇴사를 통해 다시 태어나다

by 중년의글쓰기


지금도 가끔 그 일이 떠오르면 속이 울컥한다. 3년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가끔 자다가 벌떡 이불 킥을 한다.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나는 갑자기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두 번째 직장으로 이직 후, 수석연구원까지 승진하면서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인정도 받고 있었다. 아직 한창 일할 나이였고 아는 사람도 많았다. 탄탄한 실무경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항상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내 속에 잠재되어 있던 불만이 터져버렸다.


그 해, 우리 팀에 좋은 일이 생겼다. 팀장이 새로운 프로젝트로 이동했고 그룹의 리더가 팀장으로 승진했다. 이제 그룹 리더의 자리가 생겼다. 이미 윗선에서는 후보가 결정되어 있었던 눈치였다. 유독 우리 팀에는 나이가 꽉 찬 586세대 선배가 많았다. 그래도 팀장이 나의 의사를 묻는 자리가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속내를 드러냈다. “제가 하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엔지니어 리더로서 충분히 기여를 했고, 이제 경력을 전환하고 싶다고 말했다.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다. 말하고 나니 정말 진심이었다.


며칠이 지난 후, 재상담하는 자리에서 팀장이 “결정이 되었다. 위에서 적임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이해해 주라” 했다. 내 성향이 매니저 역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해보면서 배우는 것 아니야? ‘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보이려고 애썼다. 속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내가 아닌가?’ 라고 달랬다. 그렇게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한동안 이때의 일이 두고두고 마음속에 남아 있었나 보다.

‘나는 계속 성장하고 싶지만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구나!’

‘내가 지금처럼 지내야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구나!’

현타! 그제야 깨달았다. ‘내 쓸모에 비해 나는 제대로 대접받고 있지 않았구나’ 이제부터는 내 시간이 아까웠다. 그토록 일에 매달려 왔던 지난 20여 년이 허무해졌다.


이런 깨달음 이후의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었다. 상실감이 너무 컸다. 그동안의 조직의 행태가 더욱 불만스러웠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람들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하지만, 나의 현재 상황을 주변에 알리고 상담이나 협상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사표를 준비했다. 나는 폭탄을 가슴에 품고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팀장과 담당 이사에게 내밀었다. 부서에서 난리가 났다. “몇 년 있으면 명예퇴직 시기가 올 텐데 그때까지 기다리면 안 되겠나?” 하지만 몇 번의 상담 과정에서도 나의 굳은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그래, 이 수석이 얼마나 고민하고 결정했을지 알겠네”

“다른 좋은 곳으로 가게 되었으니 잘 되었네”

“자네가 쉽게 결정할 사람이 아니니 인수인계 잘 부탁하네”



‘이제 내가 진짜 나가는 건가?’ 내가 결정한 대로 일이 흘러가는 것이 순간 무서웠다. 내가 속으로 크게 갈등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당시 회사 내에서 헛소문이 돌고 있었다. 내가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한다고…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웃었다. 회사를 떠나기 며칠 전 어느 날, 이사님이 나를 불러내서 함께 산책을 같이했다. 내가 무슨 로또라도 맞았나… 슬쩍 물어본다. 그런 거 아니라고 했다. 다른 이사님은 ‘어느 곳에 가든지 본인의 기술을 잘 포장해서 팔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분은 실무를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한심했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결정 이후에 오히려 다시 바빠졌다. 나는 고생할 동료, 후배들 생각에 열심히 문서를 만들었다. 자료와 이메일을 정성스럽게 정리했다. 회사를 떠나는 날, 인수인계 진행 상황을 외국 주재원에게 보고까지 마쳤다. 그리고 같이 고생했던 사내 동료, 협력업체 담당자 그리고 세계 각지의 외국 동료에게 마지막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회사에서 짐을 빼고 한낮에 집으로 돌아왔다. 날씨는 맑고 아파트 거실에서 본 공원에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달래주었다.


“오랫동안 고생했으니 그냥 편히 쉬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몇 개월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푹 쉬었다. 아내와 주변 산을 가볍게 산책도 하고 지냈다. 무료해지기도 하고 가끔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들었다.




어느 날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수석, 거기서도 잘 지내냐?”

“예. 잘 지내고 있어요”

“돌아와서 후배들 도와줄 수 없냐?”

“모두 고생을 많이 하는 군요…. 제 연봉을 OO 주시면 고려해 볼게요..”

“어. 그래? 알았어…” 전화를 끊었다.

안 봐도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보였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다. 그럴 순 없다. 과거에 퇴사했다가 다시 들어온 후배 사례가 있었다. 우리 회사가 얼마나 좋은지 저절로 홍보되었다. 하지만 나같이 연봉을 올리는 사례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역시, 다시는 전화가 오질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정을 떼어 냈다.




벌써 3년이 흘렀다. ‘만약 그때 회사에 그대로 있기로 선택했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컥하고 무언가가 쑥 올라온다. ‘억울하다…’ 더 싫었던 건 ‘후회가 된다’라는 생각이었다.

무언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안정적이지 못한 수입에 불안감이 들 때, 그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후회하는 내 마음이 미웠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나는 그렇게 몇 번인가 이불킥을 했다.


자진해서 회사를 떠났기에 위로금을 받지 못했고, 실업수당도 받을 자격이 안 되었다. 계산기 두드려보면 많이 밑지는 장사였다. 누가 봐도 이해하기 힘든 선택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후에야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부모님께서는 꽤 충격을 받으셨다. 사실 제일 큰 타격을 받은 곳은 나의 통장이었다. 수개월 만에 퇴직금을 다 써버렸다. ‘통장잔고가 녹는다’라는 뜻을 뼛속까지 새기게 되었다. 직장이 없어진 나는 신용대출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는 거 아닌지, 공포가 밀려왔다… 결국 창업자금이 부족하여 18년 동안 부었던 개인연금도 해지했다. 세금만 2천만 원 이상 내야 했다. 좋은 상품이었기에 아직도 아깝다. 내 미래 월급까지 털어야 했다.


직장인에서 자영업자가 되었다. 아내는 솔선해서 창업준비를 도왔고, 아들은 갑작스러운 두 번의 이사에도 불평하지 않았다. 아내는 동업자이며 나의 직원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준비해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결국 써먹는다. 아내는 부동산 실장으로 경력이 있었고, 실적도 좋았다. 나는 아내에 의지하여 중개사무소를 개설했다. 아내에게 생계의 짐을 같이 지게 하는 것이 무척 미안했다. 그날 밤에도 이불킥을 했다.


이어서 파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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