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은 랩을 좋아한다. 벌스(가사)를 적어서 혼자서 중얼중얼거린다.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고 랩을 뱉으면서 래퍼 특유의 채스쳐도 흉내 낸다. 저녁 식사시간에도 아이폰을 식탁 위 스피커에 연결하여 요즘 유행하는 랩을 틀어놓고 따라 한다. 그 덕분에 엄마, 아빠도 최신 유행 랩과 인기 있는 래퍼 몇 명의 이름을 알고 있다. 우리는 ‘고등 래퍼’와 ‘쇼미 더 머니’ 본방을 사수하고, 지난 시즌 영상은 따로 구매해서 챙겨봤다.
이미 랩은 대중문화가 되었다. 의류매장이나 신발가게, 화장품 판매점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최신 한국랩이 흘러나온다. 1980년대 팝송, 1990-2000년대 가요에 이어서 트렌드가 되었다. 유명 래퍼와 비트 프로듀서, 레이블(각자가 컨셉이 확실하고 뚜렷한 색을 가진 음반 회사/엔터테인먼트)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사무실이 초등학교 바로 앞에 있어서, 아이들이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면서 랩을 따라 하면서 하교하는 모습도 종종 본다. 요즘 아이들에게 랩은 정말 인기가 많다.
“랩이 그렇게 좋냐?” 저녁 식사 준비하면서 아들에게 물어봤다.
“응. 랩 문화는 한마디로 쿨해..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잘났으면 잘났다고 당당히 얘기해” “디스 하다가도 화해하고 상대방을 존중해”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말해, 인맥보다 비즈니스가 먼저야.. 음… 항상 그런 거 아냐” “타고난 재능이 없어도 돼, 시작할 때 특별한 스펙이 필요하지 않아” “누구나 즐기고 따라 할 수 있어. 재밌어. 실수해도 괜찮아. 노래방에서 발라드, 가요는 못 부르면 분위기 썰렁해지잖아!” “자기 개성을 뽐낼 수 있어” “유행이 빨리 변해” “꼰대 문화랑 달라…”
나는 가볍게 질문했으나 아들의 대답은 구체적이고 길었다.
‘허… 좋은 거 다 있네. 우리가 바라던 이상적인 사회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랩 경연대회에 나와서 자신 있고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래퍼들을 볼 때마다,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밝을 거라 생각해”
아들은 미국과 한국의 유명 힙합신을 꿰차고 있다. 힙합에 대하여 물어보면 이 녀석은 신이 나서 얘기한다. 가끔 평론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 녀석이 저렇게 말을 잘했나?’ 아들과 대화를 길게 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아들이 좋아하는 어떤 주제에 대하여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한다면 수다쟁이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들이 좋아하는 것이 있어서 다행이다.
아들이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랩을 따라 부르고, 가사를 적고 랩을 연습하고, 친구들 앞에서 랩을 뱉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문구를 적어보고, 내 생각을 메모해 보는 것, 그리고 이렇게 일상 글을 쓰는 것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 하는 거다. 이렇게 우리 부자는 닮은 구석이 있다. 아들도 이런 점에서 아빠와 닮았다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눈치이다.
오늘 아침식사를 하면서 슬쩍 아들에게 제안해 본다. “윤호야, 저녁에 윤호 랩 녹음한 거 들려줄래? 아빠는 글 쓴 거 읽어 줄게?” 아들이 좋다고 한다. 아내도 좋은 생각이라고 한다. 밤늦게서야 각자 일과를 마치고 세명이 침대에 모였다. 아들 녀석은 부부 침대에 와서 끼어 눕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아들과 아들 친구 둘이서 녹음한 음원을 처음으로 들었다. “아… 라이브로 랩을 따라 하는 것을 듣는 거랑, 본인들의 가사를 비트에 맞추어서 녹음한 거랑은 느낌이 확 다른데?” “박자감이 좋네” “목소리가 좋네” 아내와 나는 진솔한 평을 피드백해준다. 아들은 신이 나서 학원 녹음실에서 작업을 어떻게 했는지 자세히 설명해 준다.
인간은 모두 자신을 표현하는 싶은 욕구가 있는 모양이다. 일단 마음에 들면 따라 하고 싶고, 주변에 퍼뜨리고, 같이 하는 동료가 생기고 그래서 문화가 되는 것이다. 가끔 내식대로 바꾸어 보고 너는 또 너대로 다르고, 그래서 문화가 융합되고 진화되어 밈이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 밈이 될 수 있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한창 마이클 잭슨이 인기가 있었다. 같은 반 친구 두 명이 운동장에서 브레이크 댄스 연습을 하다가 학생주임 선생님께 걸려서 몽둥이 세례를 당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혀를 차면서, 어찌 저런 괴상한 것을 따라 하다가 혼났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기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벗어나면 큰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자습시간에 선생님께서 무작위로 노래를 시켰다. 그날 재수 없게 내가 걸렸다. 나는 노래도 못 부르는 데. 가사를 기억하는 가요가 딱 하나 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긴장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그 모든 것을… 못 본 척 눈감으며 외면하고… 지나간 날들을 가난이라 여기며, 행복을 그리며 오늘도 보낸다” 이수만 선생님(SM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의 “행복”이었다. 갑자기 교실 분위기가 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