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해외파견근무를 했다. 요즘 해외 근무하는 일이 많아졌지만 그 당시에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기회가 생겼던 것 같다. 하지만 <단신부임> 조건이었다. 반면 외국 동료들은 1년 정도의 파견이라도 보통 가족과 동행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파견근무는 1~2주간의 해외출장과는 전혀 다르다. 가족과 평범한 일상을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첫 번째, 파견근무는 2004년 10월에서 2006년 6월까지 일본이었다. 훨씬 큰 조직에서 경험이 많은 일본 동료들 사이에서 일을 하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일 못한다는 뒷말을 듣지 않으려고 참 무단히 노력했었다. 힘들었던 만큼, 연휴는 마음껏 놀았다. 부모님과 누나 가족을 일본에 초대하여 함께 여행을 즐겼다. 달콤했던 휴식 시간이었다.
외국생활의 어려움은 금세 잊혔고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이 금세 일상이 되었다.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고 한국에서 가져온 재료로 음식을 하니 어느덧 고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부모님과 누나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다가왔다. 다시 혼자 남아서 타지 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다.
공항에서 가족을 배웅하고 차를 몰고 집으로 오는 와중에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다. 마음속에 커다란 구멍이 난 기분이 들었다. (군대 신병 교육대 수료식 때도 그랬다. 부모님과 누나가 와서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가족이 돌아간 뒤, 혼자 내무반으로 복귀하는 길에 울 뻔했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 가까운 해변으로 차를 돌렸다. 바람을 쐬고 싶었다. ‘에노시마’ 해안가를 지나가는 전철 소리, 파도소리가 기러기 소리가 처량하게 들렸다. 벌써부터 해변에는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들에게는 주말의 평범한 모습이었다. 동네에서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일상이 부러웠다.
에노시마 해변을 찾은 이유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겨울 어머니께서 일본에 오셨을 때, ‘에노시마’에 놀러 왔었다. 어머니는 바다를 좋아하신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음료수를 사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겨울이지만 햇볕이 좋아서 따뜻했다. 우리는 해변가로 가서 깨끗한 모래사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나는 삼각김밥을 한입 먹고 오른손에 쥔 채로 음료수를 먹기 위해 몸을 왼쪽으로 기울였다. 그때 뒤에서 무언가가 날아와서 삼각김밥을 채어 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삼각김밥은 몇 미터 앞, 모래사장에 떨어져 버렸다. 날개가 1m가 넘는 거대한 몸집의 까마귀 한 마리가 저쪽에서 떨어진 삼각김밥을 바라보고는 ‘까악~까악’했다. 나와 까마귀 사이에 떨어진 <삼각김밥>은 모래가 잔뜩 묻어 있었다. 우리는 너무 황당해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직도 이때 일을 기억하고 계신다. 나 역시 삼각김밥을 먹을 때마다 ‘에노시마 까마귀 습격 사건’이 떠오른다.
두 번째 파견은 10년이 지난 후 2014년에서 2015년까지 프랑스였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파견팀이 꾸려졌다. 이때도 단신 부임 조건이었다. 일하는 것이야 이력이 나서 헤쳐나갈 수 있었지만, 역시 혼자서 생활하는 거 자체가 힘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 몇 주간, 아내 그리고 아들이 프랑스에 머물면서 함께 지내서 참 행복했다. 집에 돌아오면 반겨주는 아이와 아내가 있어서 좋았다. 함께 새로운 곳에 가보는 것도 즐거웠다. 주말에는 동네 빵집에서 갓 구운 바게트를 사서 점심 도시락을 준비했다. 바구니에 도시락과 과일을 담아 근처 공원에 나들이 나갔다. 우리는 마치 프랑스의 평범한 가족이 된 듯했다.
하지만 가족들이 귀국해야 할 날짜는 정해져 있다. 행복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또다시 혼자가 돼야 하는구나…이런 경험을 또다시 하게 되다니’. 결혼해서 혼자서 해외에 나오니 더 힘들었다.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매일 저녁 와인을 마셨다.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낸 후유증이다. 옆집 1층 알제리 아저씨 식료품점에서 3~4유로 정도의 보르도 산 와인을 고르면 적당했다. 마트에서 사 온 통통한 새우를 삶고 치즈를 프라이팬에 살짝 구워놓으면 준비 끝. 창가에 앉아 바깥 풍경을 보면서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다. 프랑스 여름의 해는 아주 길다. 10시가 되어도 밖이 환하다. 혼자서 두 병 다 마시기는 짧고, 한국으로 돌아간 가족을 그리워하기는 긴 시간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실험실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친해진 프랑스 아저씨가 묻는다. “어제도 와인 마셨나요?” 하면서 손으로 와인을 마시는 시늉을 한다. “네, 저는 매일 저녁에 <와인>을 마십니다(Je bois du vin tous les soirs)”라고 프랑스어로 답을 한다 (동료들과 친해지기 위해 외워둔 ‘사교용 프랑스 한마디’이다) 아저씨는 내 엉성한 발음을 고쳐주면서 재밌어한다. 마치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가 “나는 매일 저녁에 소주를 마셔요”하고 말하는 상황과 비슷할 거 같다. 하지만, 내 진짜 속마음 ‘가족이 그리워서 매일 와인을 마셔야 견딜 수 있어요’라는 프랑스 말을 배우지는 못했다.
가족과 함께한 즐거움의 크기를 더해서 혼자 남은 상실감은 항상 두배가 된다.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간 뒤 한참을 <그리움>으로 고생을 한 뒤에야 다시 혼자 사는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인가 보다. 주변에 가족 모두 함께 해외근무를 가는 사례를 자주 보게 된다. 외국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을 마음껏 즐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