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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숲풀 Mar 27. 2022

인생 클레임 처리 매뉴얼(3)

근본적인 원인 분석

마음의 면역력 체크

나는 번아웃 후 우울증까지 앓게 된 케이스이므로 번아웃을 먼저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발생하기 쉬운 성격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곧 그럼 나는 어떤 성격이었기에 번아웃과 우울증을 앓은 것인지 궁금해졌다.    

  

물론 번아웃, 우울증일 때는 자책하기 쉽기 때문에 '나에게서 원인을 찾는다는 것은 곧 내 탓이다'가 되어버릴 수 있다. 게다가 피해자에게서 원인을 찾는다는 것은 가해자를 옹호하며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는 행동이라 옳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이미 자책이 심각하던 시기를 어느 정도는 벗어났으므로 필요한 단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면역력이 강하면 아플 확률이 낮다는 관점에서 '나'라는 사람 자체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해보기로 했다.


의존적 성향

어릴 적 나의 남동생은 크게 아팠던 적이 있어서 엄마의 사랑은 거의 남동생을 향해있었다. 물론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린 내가 충분하다고 느낄 정도로 표현되지는 못했다. 아버지도 물론 나와 동생을 사랑하셨지만 워낙 표현을 하지 않는 분이셨기에 그 사랑은 어느 정도 크고 나서야 알았다. 또한 그 시절 우리 집은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했지만 서로가 원하는 방식이 전혀 아니었다. 게다가 대화를 통한 온화한 해결법을 두 분 다 모르셨으니 당연히 서로에게 불만이 쌓였고 불화는 잦은 편이었다. 그래서 자주 불안해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어린 시절의 나는 두 분의 불화를 잠재우고 사랑받는 것을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어린 내가 돈을 벌어올 수는 없으니 말을 잘 듣고 기분 상할만한 일을 최대한 만들지 않는 것이 방법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또한 다툼이 생기더라도 중재하려고 노력했다. 청소년기를 지나자 두 분은 '우리 집에 네가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렇게 겉보기에는 의젓한 아이였지만 의존적 욕구가 결핍된 채 자라 어른이 되어서는 다른 인간관계에서 의존적 성향을 보이고야 말았다.



눈치 보는 삶

부모님의 불화를 중재하면 행복한 우리 집이 되었고 사랑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힘든 것보다 그 행복이 더 좋았기에 초등학생 때까지는 여전히 밝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중학교 시절 두 번의 전학을 겪으며 성격이 점차 변했다. 처음 전학 간 학교의 아이들은 전학생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았고 그렇게 한동안 혼자 지냈다. 그래도 첫 학교에서는 본래의 밝은 성격이 남아있어서 몇 안 되는 친구를 만들어 다시 잘 지내는 듯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전학을 가야 했고 그 학교에서 배정받은 반은 소위 '일진'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마도 그렇게 점점 눈치 보는 삶을 살기 시작한 것 같다. 다시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싫어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밝은 나로 사는 게 아니라 밝아 보이는 나를 친구들이 좋아하니까 스스로 감추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부모님의 불화는 더 심해졌다. 최대한 숨기고 참으려고 하셨지만 이미 내가 느끼기에는 너무도 잦았다. 역시나 나는 평화를 찾고 싶었고 두 분이 또 안 좋은 기류를 형성할 것 같으면 애교도 부려보고 대화도 나눠보곤 했다. 그렇게 부모님이 어떤 기분일지 파악하느라 또 눈치를 보는 성격이 더 굳어지기도 한 것 같다.        


문제나 갈등의 회피, 자책하는 삶
   

학창 시절 몇 번의 부정적인 경험을 겪어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문제나 갈등이 발생하면 그 자체에서 큰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걸 해결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빼앗겨 지치곤 해서 점차 회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회피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문제가 터져버렸고 그럴 때면 원인을 나에게서 찾고 있었다. 상대에게서 원인을 찾으면 또 갈등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책하는 삶도 살게 되었다.        


착한 아이 컴플렉스

문제,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내가 택한 방법은 결국 가능한 상대에게 맞추는 것이었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갈등보다 편했다. 또한 결핍된 의존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친구, 동료에게 사랑받고자 과하게 잘해주려고도 했다.


그렇게 좋아서가 아니라 싫은 걸 피하려고, 그리고 결핍을 채우려고 살던 삶은 어느새 착한 나를 만들었다. 정확히는 착해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당시에는 역시 몰랐기에 혹시라도 내 의견을 피력했을 때 비판, 비난을 받으면 견디지 못하고 이내 언행을 바꿔 착하다는 소리를 듣고야 안심했던 것 같다.                  





이렇게 근본적인 원인이 파악되자 이전의 사건들이 설명되기 시작했다.


착한 아이 컴플렉스는 비난받지 않기 위한 강한 책임감으로 잘못 연결되어 일을 과하게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회사 동료, 선후배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게 만들었다. 결국 그 행동들은 스스로 타들어가게 만드는 번아웃의 시초가 되었다. 또한 말 그대로 애를 썼기에 회사 후배들과 친구로부터의 좌절의 상황에서 '그럴 수도 있지.'가 아니라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다 필요 없어.'가 되어 버렸다.     


의존, 회피, 자책, 착한 아이 컴플렉스의 집합체가 제주도 사건과 감정 쓰레기통 사건의 친구와의 관계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내 말이라면 늘 편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친구에게 고마워하며 의지하기 시작하면서 편안함을 느꼈고, 당연히 좋은 관계가 계속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상처받는 말을 들어도 관계 단절이 두려워 나도 모르게 외면하며 쌓아둔 것이다. 결국  나에게서 사람을 빼앗아가고, (그 친구는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내 자존감을 밟는 언행을 해도 '내가 못나서 그런가?' 하며 자책하거나 불편한 감정이 싫어 외면하는 단계까지 이르며 상처를 곪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국 감정 쓰레기통 사건으로 곪았던 상처가 터져버린 것이었다. 상처 주는 말실수에 제대로 상처를 드러내고 대화했다면, 뒤늦게 위로 비수로 받아버리는 엉뚱한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가스 라이팅 한 상사는 애초에 그 자가 나쁜자이지만 그걸 초반에 바로잡지 못하고 끌려간 이유를 찾아보았다. 초반에 쥐 잡듯이 나를 잡을 때 반박이 통하지 않자 '그럼 비위를 맞추면 덜 할까?' 하며 맞춰 주었는데 그게 오산이었다. 내 배터리에서 에너지를 빼앗아가도 된다고 허락한 셈이었다. 또한 어차피 뭘 해도 트집 잡을 인간이었는데 몰랐던 시절에는 '열심히 해서 잘하면 안 괴롭힐까?' 하며 또다시 애써 과하게 일을 하면서 스스로도 방전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는 심리적 문제를 모두 가지고 있었지만 역시나 이전까지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 완벽주의
* 의존적 성격
* 낮은 자존감

Gseek 유은정 박사님의 '혼자 상처받는 영혼들을 위한 심리 테라피' 강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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