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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Nov 30. 2022

대륙의 여신은 누구인가

<산해정 山海情>의 수화(水花)를 소개합니다

어릴 때는 '대륙의 여신'하면 단연 <홍등>의 공리였다. 중국에 오기 전에는 <와호장룡>의 장쯔이나 <색, 계>의 탕웨이가 '대륙의 여신'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이들은 글로벌 무비스타일뿐, 정작 중국 안방에서 인지도나 선호도 그리 높지 않았다.


중국 골목골목 눈길 닿는 곳마다 볼 수 있는, 중국인들 마음속 진정한 여신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모란꽃 그녀, 판빙빙(范冰冰)이었다. 하지만 판예(范爷 판 어르신)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중국 연예계 최정상의 자리를 누리던 그녀가 탈세 스캔들로 연예계에서 홀연 자취를 감추자, 이 바닥이 원래 그렇듯, 사람들은 금세 그녀를 잊고 새로운 여신을 운운하고 있다.


그럼, 새로운 대륙의 여신은 누굴까? '대륙'하고도, '여신'하고도 별 관계없는 내가, 산더미 같은 내 삶의 문제는 제처 두고, 아무도 요청한 적 없는 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


혹자는 위구르족 글래머 미녀, 디리러바라고도 하고 혹자는 시청률 퀸, 양미라고도 한다.


예쁘기만 하면 여신인가, 디리러바(좌)와 양미(우), 百度

 

생각은 '노'. 그들은 오늘만 화려하게 빛나는 '스타'일뿐, 사람들 마음속에 언제까지나 머무는 '배우'나 '여신'은 아니다. 판빙빙도 예쁜 얼굴만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게 아니었다. 여신 이전에 양귀비나 80대 할머니 측천무후역은 물론이고 시장통 억척 아줌마, 시녀 연기까지 찰지게 해내던 노력파, 연기파 배우였다.


연기폭이 넓던 판빙빙, 百度


이들의 화보 찍는 듯 어색한 몸짓, 들을수록 불편한 목소리 발성, 역할에 맞지 않는 풀 메이크업과 화려한 옷차림, 주눅 든 눈빛, 과한 성형 등은 아무래도 여신의 지위에 걸맞지 않다.


러이자의 수상, 오랜 무명의 끝, 百度


얼마 전, 제33회 중국 비천장 여우주연상을 카자흐족 출신 36살의 배우, 러이자가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가장 인지도가 낮았던 그녀의 수상은 의외였다. 하지만 작년, 그녀가 연기했던 <산해정>의 '수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슬프고도 강렬했던 그 한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그녀의 수상을 납득할 것이다. 중국 드라마 <산해정>이 수출 다른 50개국 시청자들의 생각도 나와 다르지 않으리라.


나는 아직도 '수화'를 생각하며 울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한다. '수화'를 세상에 살려낸 아름답고 총명한 배우, 러이자. 그녀 정도는 되어야, 여신의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


용천촌이 있는 곳

1991년, 중국 서북 고비사막 아래, 닝샤 회족자치구 산오지마을 용천촌(涌泉). 이곳은 중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극심 빈곤지역이다. 마을 이름뿐 아니라, 마을 대부분의 여자 아이들 이름에 수(水) 자가 들어가는데 그만큼 물이 없고 귀하기 때문이었다. 물이 없으니 농사가 잘 될 리 만무하 농사가 안되니 마을 사람들은 끼니조차 때우기가 버겁다. 이런 그들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관민합작 빈곤탈출 분투기가 펼쳐진다.


바지가 한 벌 밖에 없는 집


현지 조사를 위해 촌서기가  집을 방문한다. 어두컴컴한 토방에서 멀쩡한 성인 남자가 대낮에 이불을 덮고 손님을 맞는다. 가난해서 장가도 못 간 늙다리 삼 형제가 사는 이 집에는 바지가 한 벌 밖에 없는데, 그 단벌 바지를 서로 돌려가며 입는단다. 지금은 동생이 외출 중이라 바지 없는 형이 방 안에서 이불을 덮고 있는 것이었다.


새로 발령 난, 이 마을 출신 촌서기 마득복이 자전거를 타고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기찻길을 향해 급 달려간다. 기차선로 수리용 열차를 타고 도시로 도망가려던 마을 아이들을 붙잡기 위해서다. 그들 중에는 마득복의 사고뭉치 동생 마득보와 마득복의 초등 동창 이수화(水花)도 있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고약한 아버지 밑에서, 우등생이었음에도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그만두어야 했던 수화, 그리고 내일, 물통 개, 당나귀 한 마리와 양 두 마리에 팔려가듯 먼 마을로 시집가야 하는 마득복의 첫사랑. 마득복은 동생과 다른 아이들에게 한껏 으름장을 놓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고, 수화에게는 주머니에 있던 돈을 모두 꺼내어 건넨다.



"너, 안영부랑 결혼하라고 나 잡으러 왔니?"

"... 현으로는 가지 말고, 멀리 란저우나 인촨으로 가. 현으로 가면 금방 잡힐 거야. 친구한테 들으니 요즘 그런 큰 도시의 가게들이 사람을 많이 구대. 너, 여자애 혼자 외지에서... 너... 조심해야 해. 꼭 조심해야 해."

"우리...아부지는..."

"걱정 마. 신랑집에서 난리 치긴 하겠지만 괜찮으실 거야. 내가 잘 도와드릴게."


한편 수화의 집에서는, 물건은 필요 없으니 신부를 내놓으라며 신랑 측 사람들이 행패를 부리고 다. 이때 도망간 줄 알았던 수화가, 돌아온다. 그리고 마득복과,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이 장면, 잊히지 않는 눈빛, 저 표정, 여러 번 보아도 매번 눈물 흐르는.



그 후에도 수화 불운 끊이지 않는다. 그렇게 결혼한 남편은 불의의 사고로 다리 불구가 되고, 수화 혼자 생계를 도맡아 어린 딸과 남편까지 책임지게 된다. 하지만 수화는 변함없이 밝고 성실하게 일하며 그녀 특유의 선량함과 존엄을 잃지 않는다. 매번 수화를 도와주는 마득복과의 사이를 의심하는 못난 남편에게 수화가 조용하고 단호하게 한다.


"안영부, 앞으로 그런 말은 하지 마. 나는 우리 딸 엄마고 또 네 아내야. 그런 말은 날 아프게 하고 무엇보다 널 아프게 해. 애초에 네가 그런 멍청이였으면 우린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야. 넌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난 잘 알아. 너도 잘 알 테고. 우리 둘의 운명은 이미 함께 묶여있어."


<대지>의 오란, <붉은 수수밭> 공리 계보를 잇는, 중국 여성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진실하게 구현해 낸 이 배우가 바로, 내가 꼽는 '대륙의 여신'이다.



불구 남편과 어린 딸, 가난한 살림살이 등을 모두 수레에 싣고 황무지를 건너 개척마을로 이주하는 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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