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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May 05. 2022

응답하라, 삼국시대 007

중드 <풍기농서 风起陇西>를 보다

1. 후궁암투물 다음에는?


풋풋한 첫사랑이야기는 대만이 잘 만든다. 바람피는 남편, 입시지옥, 흙수저 분투기 등 각종 '헬'이야기는 한국이 최고다. 그럼, 중국은? <견환전>을 본 적이 있는가. 역사극, 특히 후궁암투물은 중국이 최고다. 각종 쌍년들의 막장 진흙탕 싸움을 70회 정도, 악몽까지 꾸면서 보다 보면 문득, 현타가 온다. 아, 산다는 게 참 슬픈 거구나, 우리 모두가 다 불쌍하구나,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결국 쌍년 중의 쌍년이 되어 살아남은 견환

아쉽게도 이렇게 '교훈적' 후궁암투물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시대착오적이며 국민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중국 정부가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중국은 무엇을 기똥차게 잘 만들까? 바로 역사 스릴러.  <랑야방><경여년> 등의 성공을 등에 엎고 이제는 역사 첩물로까지 진화한 듯하다.


첩보 조직에서 배신자로 몰려 위기에 처한 주인공, 우리 조직 깊숙이 숨어든 얼굴 없는 적국의 스파이, 미모의 여자 스파이와의 로맨스, 첩보전을 층층이 둘러싸고 있는 배후의 정치세력, 암호해독, 추격전, 배신, 반전. 이런 첩보 스릴러의 전형적인 설정들을 삼국시대로 옮긴다면? 그렇게 만든 이야기가 바로 <풍기농서>이다. <장안 12시진><풍기낙양> 등을 쓴 역사 천재 마보융 작가 원작이다. 새로울 것 없는 007 설정이지만 삼국시대로 옮겨 표현했기 때문에 독특하고 아름답고 더욱 살얼음판 같은 중국 웰메이드 첩보물이 되었다. 총 24부작으로 나는 중국 爱奇艺에서 18부까지 보았고 아직 방영 중이다. 한국에서 판권을 사 갔다고 하니 곧 한국에서도 방영될 듯하다.


2. 제갈량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촉한, 조위, 동오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일촉즉발의 삼국시대. 촉의 개국 군주 유비는 죽었고 유비의 유언대로 북벌, 즉 위나라를 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촉나라 승상 제갈량이 등장한다. 제갈량에 맞서며 북벌을 반대하는 촉나라 내부 세력도 만만치 않다. 촉나라 비밀정보기구인 사문조와 정안사는 제갈량의 북벌을 돕는데, 위나라에 파견했던 촉나라 첩자 백제가 배신했고 위나라 첩자 촉룡이 이미 사문조에 잠했다는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제 누가 누구를 믿을 것인가.


우리가 확실히 아는 건, 제갈량이 촉나라 편이라 것, 그리고 결국 촉나라가 위나라에 질 것이라는 것뿐이다. 그 외, 주인공 진공, 기생 유영, 사문조 책임자 풍응, 사문조 관리들, 심지어 촉나라 장군 이엄과 제갈량의 오른팔 양이도 믿을 수 없다. 누구도 어느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는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가 마지막까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기에 이야기의 긴장감과 흡인력이 더욱 커진다.


긴박하게 엉켜 진행되는 이야기와는 대조적으로, 자연광을 최대로 활용한 어두운 듯 자연스러운 조명, 비 오거나 흐린 날들, 무늬 없는 잿빛 의상과 자연스럽게 묶어 올린 상투, 목조 주택 내부의 나결, 이끼 낀 바위, 인물들이 대나무잔에 따라 마시는 차 향까지 전해지는 듯 세심하게 살려낸 심플하고 정적인 화면참 단아하고 아름답다.


3. 스타에서 배우로, 천쿤


주인공이지만 응원해야 할지, 의심해야 할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진공 역을 천쿤이 맡았다. <탈신>의 쌍둥이 형제 1인 2역,  <천성장가>의 영혁 역에서 그랬듯, 그는 이번에도 진공 빙의된 듯 탁월한 연기를 펼친다. 그는 과도하게 잘 생긴 얼굴 덕분에 젊은 날에는 부잣집 도련님, 바람둥이 킹카, 장군, 왕자 역 등을 전문으로 았었다. 댄스 가수도 했었고 여러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젊은 날의 천쿤, 百度 캡처

이제 사십 대 후반, 아재가 된 천쿤. 세월의 지혜와 자신감이 쌓인 그의 얼굴은 더 그윽해졌고 연기는 농익어 외국인인 나의 가슴까지 파고든다. 그는 셀렙이 예능인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진짜' 배우, 예술가가 되는 길을 의식적으로 선택한 듯하다. 젊은 날의 겉멋 들고 엉성한 연기 속에는 보이지 않던 연기에 대한 간절함이, 이 일을 너무 잘 해내고 싶어 하는 열정과 자존심이 엿보인다. 더불어 그의 연기 속에는 그가 이 일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의 연기를 보다 보면, 나도 일을 멋들어지게 잘 해내고 싶어진다. 나도 나이 들수록 더 아름다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몇 년 전, 대체 어떤 땅과 기후길래 이렇게 잘 생기고 영민한 배우를 배출했 하는 궁금증에 그의 고향 충칭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와 닮은 사람은 한 명도 못 만나고 충칭 사투리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시내가 나오던 드라마틱한 지형과 혀가 터질 듯 얼얼하 훠궈가 생각난다.


드라마 속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세상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는 어려워. 하늘 역시 그래, 인(仁)이라고는 없지.


 정말 그런가, 진실을 연기하는 아름다운 나의 배우 천쿤, 그가 연기하는 진공이 그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주기를 바라며 오늘도 정주행 한다.


사랑하는 이의 어깨를 깨물며 운다, 슬픔을 저렇게 표현한다
내 사랑하는 아내와 내 손가락을 합장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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