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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Jul 23. 2023

못 생긴 배우

중드 환안<欢颜>을 보다


도박장 로비. 잃어버린 금괴 3개를 필사적으로 되찾아야 하는 한 남자가 앉아있다. 더러운 붕대로 칭칭 감아놓은 왼손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남자는 지치고 초조해 보인다. 남자가 품 안에서 지갑을 꺼내 흑백 사진 한 장을 오래도록 바라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약혼의 사진이다. 그녀는 지금 상해에서 남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를 지켜보던 한 도박꾼이 다가온다. 자신의 말을 누군가에게 대신 전해주면 금괴를 주겠다고 한다. 남자는 처음에는 도박꾼을 경계하다가 이내 그 일을 수락한다. 전해줄 말은 다음과 같다.


유주 씨(도박꾼)는 좋은 사람입니다. 한 번만 만나주세요. 잠깐이라도 괜찮습니다.

당신을 3년 동안 못 보았더니 매일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당신 모습뿐이군요. 생각하면 할수록 당신의 모습이 희미해져만 가니 다시 한번 만나 당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길게 방해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래도 정말 저를 만나지 않겠다면 제 전화라도 받아주세요. 수화기에 대고 한 마디라도 해주세요.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함께 내기를 즐기며 사랑을 키워왔던 두 남녀. 돈을 건 도박에서는 언제나 이겼지만 그녀와의 사랑을 건 내기에서는 지고 만 남자. 이제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고 도박꾼은 한   단  번, 그녀에게 전화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것은 언제나 침묵이다.


우여곡절 끝에 젊은 남자는 이 낭만 도박꾼의 말을 전하지만, 그 말을 들어야 할 여인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다. 그 여인은 자신이 죽은 걸 알면 이 사람도 살아갈 수 없을 테니 절대 도박꾼이 자신의 죽음을 모르게 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도박꾼의 말을 전할 수도 전하지 않을 수도 없는 젊은 남자는 고민에 빠진다.


다음날, 여인의 대답을 듣기 위해 기어이 여인의 집으로 들이닥친 도박꾼. 그녀의 이름을 큰소리로 외쳐보지만 그를 맞이하는 건 젊은 남자다. 마당에는 사람들이 한가로이 테니스를 치고 있다.


"여기서 그녀를 만났소?"


"그녀는 당신을 만나지 않을 거요. 당신이 둥베이로 돌아가게 권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소... 나와 내기합시다.  테니스공이 세 번 오가는 동안 저 나무의 꽃이 떨어지면 당신은 그녀를 깨끗이 잊고 둥베이로 돌아가는 겁니다."


"가만히 있는 꽃이 떨어질 리가... 꽃이 떨어지면 도박을 끊고 둥베이로 돌아가겠소."


한 번, 두 번... 세 번째 공이 오가던 순간, 빗나간 테니스공이 안전망에 걸렸다가 나무 기둥에 부딪힌다. 그때,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더니 거짓말처럼, 나무의 하얀 꽃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다.



풍경을 홀연히 바라보던 도박꾼이 뭔가를 깨달은 듯 얼굴로 남자에게 묻는다.


"그녀가 아직 살아있소?"


"그동안 당신의 도박운이 좋았던 것도 그녀 덕분이고 오늘 나와의 내기에서 진 것도 그녀 덕분이오. 당신이 말해보시오. 그녀가 아직 살아있소?"


"... 고맙소."



이렇게 낭만적인 도박꾼 역을 맡은 배우, (吴晓亮)(). 그 도박꾼을 도와주는 선량한 남자 역 동자건(董子)(아래). 이런 말랑한 역을 맡기엔, 둘 다 참 못 생겼다. 평균적인 일반보다 못한 외모에 몸집마저 왜소하다. 게다가 량은 살인자, 사이코패스 등 '악역' 전문 배우고, 동자건은 늘 매 맞고 설움 당하는 '가난한 풋내기역' 전문 배우다. 하지만 들이 연기하는 매력적인 캐릭터, 그 절절한 대사와 어쩌지 못하는 감정들은 내게 오롯이 전달되어 나는 이 환상적인 에피소드를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보았다. 내 마음에도 환한 꽃이 쏟아져 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방영한 다른 드라마에서는 천상의 외모를 가졌으나 뻣뻣하고 성의 없는 연기, 더빙한 성우 목소리와 따로 노는 '따로국밥' 연기 드라마 전체를 망친 몇몇 주연 배우들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대부분이 일 년에 수 버는 특급스타들이다.  


연기는 안하고 멋진 척만, 양양, <아적인간연화 我的人间烟火>
극 몰입 방해 연기, 공준, 디리러바 <안락전 安乐传>

물론, 잘생겼다고 다 연기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못생겼다고 다 연기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중의 선망을 먹고 사는 연예계 특성상 일단 외모가 뛰어나면 단기간에 주목받고 쉽게 성공가도 르게 된다. 반면 외모 평범하면 재능을 펼칠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 특출한 외모 쉽게 성공한 배우들이 귀영화에 둘러싸여 연기력이나 예술성과 점점 멀어지는 사이, 이들 못생긴 배우들은 온갖 시와 생활고, 자기 회의 불안 속에서, 배우로 살아남겠다는 희망을 끝까지 붙들고 연기력을 연마했을 것이다.  


중국 드라마 덕후라서 좋은 점은, 이런 못생 얼굴로 '잘생긴 연기'를 펼치는 랍고 존경스러운 배우들을 끝도 없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력 '이란 그런 것이다. 자신이 해내야 할 것을 끝내주게 잘 해내는 것, 세상을 대하는 진실한 태도,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과 정직함이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가 닿는 것, 깊이를 갖춘 진짜가 되는 것. 


드라마의 다음 에피소드에는 '누 깔고 앉은 듯한 얼굴'(예전 여자 친구의 어머니가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며 그의 외모를 그렇게 폄하했다고 한다)의 배, 역이 나온다. '연기의 '이라 불리는 이 배우가 이번에는 또 어떤 어마무시하게  '잘생긴' 연기를 펼칠지 무척 기대된.


오빠 너무 잘생겼어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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