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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Feb 23. 2023

황하(黄河) 보러 가는 길

허난성(河南省) 카이펑(开封)을 가다

저녁 7시쯤 카이펑북역에 도착했다. 웬일인지 역 주변이 깜깜하다. 호객하는 택시기사 아저씨들을 뚫고 시내까지 가는 버스를 타러 갔더니 이미 막차가 끊겼단다. 저녁 7시에? 지하철이 없는 소도시라, 앱으로 차를 호출했으나 응하는 차가 없다. 그 사이 역에서 같이 내렸던 사람들은 대부분 흩어지고 혼자 초조하게 두리번거리고 섰는데 한 키 작은 아저씨가 다가와 30元(5,500원)에 시내까지 태워주겠단다. 방금 전 시내까지 50元(9,000원)이라는 말을 들은 탓에 얼른 아저씨를 따라갔다. 아저씨는 내 캐리어를 끌어주겠다며 가져가서는 시동 꺼진 택시 트렁크에 냉큼 집어넣더니  "시내까지 갈 사람 한 명만 더 구해올 테니 차에서 쫌만 기다려." 하고 사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쫌만 기다리라던 아저씨는 30분이 지나도 돌아오지를 않는다. 왠지 무섭기도 하고 춥기도 하고 또 도저히 못 기다리겠어서 캐리어를 꺼내가려는데 남의 차 트렁크 여는 법을 도무지 모르겠다. 한참을 주인 없는 택시의 운전석을 더듬거리 포기하고 길가에 나와 섰는데 지친 표정의 아저씨가 돌아왔다. "암만 찾아도 시내 갈 사람이 없네. 그냥 출발하자." 라며 시동을 다. 그러다 눈에  맞은편 도로 남학생, 20元(3,500원)을 부르자 그 남학생이 우물쭈물 올라탄다. 좀 더 가다가 10元(1,800원)을 부르자 아줌마 한 명이 더 탔다. 이렇게 택시는 드디어 시내로 출발했다. 그래도 아저씨가 나를 속인 건 아니어서, 아줌마가 제일 먼저 내리고 그다음 남학생, 그리고 가장 먼 거리를 가는 내가  나중에 내렸다. 아저씨가 얄밉기도 했지만 역사 도시 카이펑의 곤궁함이 짐작되어 안쓰럽기도 했다.


다음날 찾은 카이펑 박물관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황하
카이펑의 혈맥
흥(兴)함도 황하로 인함이요
쇠(衰)함도 황하로 인함이라



황하 남쪽 대평원에 위치, 중국 7대 고도 중 하나로 주나라, 한나라, 북송 등의 수도였던 카이펑. 어린 시절 즐겨 보던 포청천의 활동 무대가 바로, 북송의 수도로 가장 번성했던 시절의 카이펑이었던 것이다.  


 카이펑의 영웅, 포청천, 목판화, 카이펑 박물관
번성했던 시절 카이펑의 모습이 길이  5m가 넘는 이 놀라운 그림 속에 생생하게 담겨있다. 청명상하도( 清明上河图), 원본은 베이징고궁박물관 소장
청명상하도 체험실, 카이펑박물관


그 후 거듭된 이민족의 과 유린, 황화의 잦은 범람, 대운하의 수로 변경 등으로 카이펑은 쇠락의 길을 걷는다.


전국시대 대량, 당대 변주성,북송 동경성, 청대 개봉성, 4개의 고성이 황하의 퇴적층 속에 겹쳐 있는 도시 카이펑, 카이펑 박물관


시내 곳곳에 야시장다양하고 소소한 먹거리들이 많았는데, 큰 공장이나 특별한 지역산업이 없는 이곳 특성상, 사람들이 저마다 리어카를 끌고 나와 길거리 간식을 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 곳곳에서 매일 열리는 야시장

다음날은 카이펑의 대표 관광지, <청명상화도>를 재현했다는 테마공원 <청명상하원>을 가는 대신, 카이펑 시내에서 20km 정도 떨어진 황하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란주에서도 칭하이에서도 본 황하지만, 카이펑을 흥하게도 쇠락하게도 만들었다는 애증의 황하는 대체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었다.

 

가는 길에 철탑공원이 보여 들어가 본다. 마침 공사 중이라 출입금지라는데, 어수선한 틈을 타 현지인들 틈에 섞여 입장료 없이 들어간다.



그 공원 바로 옆에 지역 명문, 허난대학(河南大学)이 붙어있다. 역시나 공사 중 어수선한 틈을 타, 학생증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허난대학에도 살짝 들어가 본다. 아아, 여기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을 맞닥리게 될 줄이야!


바로 문 없는 화장실, 명문 대학인데 말이 되냐고!

그래도 이곳에서 멀쩡히 일을 본 후 학생 식당에서 밥도 먹었다.


다양한 메뉴 중, 내가 좋아하는 반찬만 골라 먹을 수 있는 뷔페식을 골랐는데, 무게로 가격을 책정한다. 나의 점심, 저 한 접시가 6元(약 1,000원)


이제 밥도 든든히 먹었으니 황하를 찾아 출발해 볼까. 바이두 지도에는 자전거로 1시간 거리라고 나온다. 직선 포장도로를 쭉 달리기만 하면 금방 도착하겠구나 쉽게 생각하고 출발한 길. 성문을 나가서 잘 포장된 아스팔트를 20분쯤 달리다가, 도로 공사 중인 구간을 맞닥뜨린다. 길은 갑자기 굽이굽이 비포장도로로 바뀌고 덤프트럭이며 승용차, 전기오토이 등 온갖 차들이 먼지 풀풀 날리며 좌우 없이 다닌다.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길이라 그 흙먼지 속에서 또 몇 번이고 길을 헤맨다. 입고 있던 검정 패딩, 검정 모자에 하얀 먼지가 덮였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기어이, 게 된 황하.



둥둥둥둥

황룡이 온다!
 黄龙来了!


광폭한 범람, 공포에 찬 울부짖음, 사람들의 삶을 한순간 송두리째 앗아가던 드라마 속 무시무시한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평온한 모습이다.


아......

그렇게 카이펑의 얌전한 겨울 황하를 오래오래 바라보다 돌아왔다.


저녁밥은 중국식 미트볼, 사자머리( 狮子头), 카이펑 박물관에서 본 전쟁무기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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