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도 그렇다.연휴에 집에 있으면 여행지가 그립고 막상 여행지에서는 우리 집 냉장고, 소파, 옷장의 예쁜 옷들... 집이 그립다. 백두산을 다녀오고도 7일 남은 연휴.
아, 여행을 갈까 말까?
한국에서라면 당연히'도피성'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선, 벗어나고픈 집안일도 돌봐야 할 가족도 없다. 가나 안 가나 어차피 나 혼자고 모든 결정은 내가 내리며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는 온전히 내 것이다. 여행을 안 가도 거실 소파에 홀랑 벗고 드러누워 재밌는 것을 보며 맛있는 것만 먹는다. 여행을 가도 재밌는 것을 보고 맛있는 것만 먹은 후 호텔 침대에 홀랑 벗고 드러누워 있을 것이다.집도 충분히 좋은데백만 원 가까운 돈을 들여 굳이 멀리 가야 할까. 딸한테 용돈 줄 때는 그렇게 까탈스럽게 굴면서 나를 위해서는 이렇게 팍팍 써도 되는 걸까. 더구나 연휴기간, 어마어마한 이동 인구와 바가지요금, 쭈그려 앉는 불쾌한 화장실에 시달리며. 여행지에서 다치거나 범죄에 희생되거나 여권이나 핸드폰을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여행 온 것을 또 얼마나후회할 것인가. 집안에 틀어박혀 조신하게 명상이나 독서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는 보봐리 부인인가. 돈을 써야만 영혼이 충만해졌다고 믿는 자본주의 노예인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탈진하고 말았다. 탈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일 새벽, 비행기표를 끊고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떠나온이곳은닝샤회족자치구, 인촨(银川). 허란산 아래 닝샤평원을 흐르는 강물이 은빛으로 빛나서 붙여진 이름, '은빛 하천'.중국 서북, 내몽골과 간수성 사이의 내륙지역으로건한한사막기후임에도이 도시에는 물이 풍부하다. 바로 도시를 감싸흐르는 황하 덕분이다.
사막 속 녹주(绿州), 인촨
호수 앞에 지은 란산공원 축구장
도시의 정원을 가꾸기 위해 하루종일 스프링쿨러로 물을 뿌린다
이곳은 농경문화와 유목문화, 서역문화와 중화문화가 교차하던 유명한실크로드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남송, 금나라 등과 힘을 겨루다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고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어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서하국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불교 유물과 서하문자, 닝샤 박물관
독특한 헤어스타일의 서하국 사람들, 불교를 깊이 숭상했고 자신들만의 문자도 있었다.
현재 이곳은 회족 이슬람문화, 구기자와 양고기, 포도주 생산지로 유명하다.
시내 곳곳의 이슬람교당 청진사, 닝샤이슬람교대학
회위엔야시장(怀远观光夜市)
닝샤박물관
어젯밤, 허란산국가산림공원과 선사시대 암각화를 보려 가려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었는데 눈 떠보니벌써11시. 하루에 두 번 밖에 없는버스는 이미 떠났고 비가 드문 이곳에비까지 내린다.양내장면이나 먹어볼까 하고 시내를 걷다가 현지인들이 길게 줄 서 있는 빵가게가 있어나도무작정줄을 섰다. 빗 속에서 30분쯤기다린 끝에 녹두소가 들어간 따끈따끈한 빵 한 상자를 사들고 지나가는데 줄 끝에 선아저씨가 부러운 듯 묻는다.
-한 상자에 얼마예요?
-18元이요.
-이집이 그렇게나맛있어요?
-(호옷,나의 현지인 코디가 먹힌건가) 저도 오늘 처음이라...
오후 3시, 비가 그치지 않아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그 새 방은 말끔히 정리되어 있다. 흐린 하늘, 10층 아래로 펼쳐진 낮고 낡은 시가지 풍경이눈에 편하다.
젖은 옷을 벗어던지고 침대위에 홀라당 드러누웠다. 널따란 침대를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어제 다녀온 서하릉 4부작 다큐를 본다. 허란산 아래 황량한 벌판, 주인을알 수 없는 삼백 여개의 텅 빈 무덤들, 산산 조각난 비석들... 서하릉에 관한 의문이 그제야 좀 풀린다. 겉바속촉 녹두빵이 달지 않고 참 맛있다. 집에서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지만 어쨌든 여행 오길 참 잘했다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