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천우 Oct 11. 2023

한메이린을 만나다

허란산암화(岩画) 유적공원을 가다


여행은 삶의 은유다. 임시로 머물다 시간이 다 하면 떠나야 한다. 짐은 없어너무 무거워도 안된다. 동반자가 있으면 덜 외롭지만 번뇌가 늘어난다. 결국 물질이나 양보다는 감정과 질로 남는다. 그리고 아주 가끔, 예상치 못한 만남을 선물로 받는다. 그 만남 이후 삶이 달라지기도 한다.


여행의 꽃, 느긋하고 풍성 호텔 조식을 포기하고 아침 7시 버스를 타야 하는가, 고민이었다. 기껏해야(?) 종이가 없 고대인들이 바위 위에 그린 단순한 낙서 아닌가. 이미 닝샤박물관에서 충분히 보지 않았. 꼭 실제 현장에 가서 봐야 하나.


허란산암화 전시물, 닝샤 박물관


결국은 빈 속에 잠이 덜 깬 채로 허란산행 버스를 탔다.  먼저 허란산국가산림공원에 도착. 허란산은 수만 년 전 바다가 융기하여 생긴 험준한 바위산맥으로 흉노, 서하, 선비 등 각종 북방 이민족과의 치열한 전투가 끊이지 않던 곳이다.


허란산, 별명이 괴산(鬼山)


驾长车, 踏破贺兰山缺
긴 전차를 몰아
허란산 적들을 짓밟아버리겠네



 정충보국(精忠报国) 영웅 악비(岳飞) 장군만강홍(满江红)에도 허란산이 나온다. 

 

멀리 백마 탄 악비 장군이 보인다. 허란산국가산림공원 입구
중국의 산답게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다
허란산 협곡 위에서 공중 곡예를 펼치는 사람들


리프트는 산 정상까지 왕복 50元(약 9,000원) 이라는데 나는 경치를 즐길 겸(사실은 떨어질까 봐 무서워서) 걸어 올라갔다. 산 정상에서는 놀랍게도 줄타기 공연이 진행 중이었다. 두 협곡 사이에 줄을 걸놓고  위에서 자전거도 타고 오토바이도 탔다. 몸에 안전장치를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몇 안 되는 관람객들의 반응도 시들하다. 핸드폰 속에 짜릿한 게 많기 때문일 것이다. 산 입장료가 60元(약 11,000원)인데 대체 그중 얼마를 받길래 매일 저렇게 목숨을  협곡 공중 곡예를 펼치는 것일까. 슬픈 노동의 현장이었다.


다시 산을 내려와 10분쯤 차를 타고 암화를 보러 갔다. 출구를 입구인 줄 알고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암화를 보고 마지막에 보았더라면 지쳐서 그냥 지나쳤을 이곳을 '만나게' 되었다.

 


위치도 외관도 심상치 않은 '한미림 미술관'. 


저 멀리, 진돗개의 고장 전남 진도에는 국립국악원이 있다. 교통도 불편하고 인구도 몇 안 되는 그곳에 왜 수천억의 국가 예산을 들여 서울 서초에 있는 것과 같은 국립국악원을 세운 것일까. 바로 진도아리랑 때문이다. 진도가 우리나라 국악의 근원지이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이 으슥한 허란산 기슭에 북경, 항저우에 이어 세 번째 한미림 미술관을 세운 이유도 와 같다. 한메이린(韩美林)이라는 중국의 거대예술가 작품의 근원이 허란산 암화에 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작가 한메이린. 하지만 그의 작품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중국 대표 항공사 에어차이나 마크를 디자인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마크와  마스코트 오복와(五福娃)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1936년, 산동성 제남의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2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무학의 어머니 자녀들을 부양하느라 고생이 많으셨다고 한다. 그 어려운 시절을 어머니사랑과 희생으로 건너온 분인지 그에게는 모성을 표현한 품들이 많다. 



이러한 모성에 대한 깊은 경외심은 인간 전체에 대한 연민과 공감, 그리고 훗날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동물을 대하는 따뜻하고 발랄 시각,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 대사랑으로 넓고 깊게 확대된다.


百度 캡쳐


젊은 시절, 고대인들이 그린 허란산 암화를 깊이 연구고 서예, 도예, 수예 등 중국전통민간문화에 심취했던 덕분인지, 이제 그의 작품은 중국 전통예술과 세련된 현대예술, 다양한 예술 장르를 종횡으로 가로지며 가장 독특하고도 가장 중국적 세계를 펼쳐 보인다.


특히 나는 호랑이를 좋아해서, 한메이린의 호랑이 작품 계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허란산 암화 중 호랑이, 허란산세계암화박물관
한메이린의 호랑이 암화 드로잉, 한미림 미술관
한메이린의 호랑이 작품들, 百度 캡처

그리고 놀라운 예술적 폭발력으로, 이런 작품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호랑이뿐만이 아니다. 사자, 용, 코끼리, 봉황도 나름의 긴 계보를 가지고 이렇게 탄생다.  



그리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보살상, 부처상도 있다.


인촨 한미림미술관
항저우 한미림미술관


암화는 '바위 위에 그린 단순한 낙서'가 아니었다. 생존을 넘어, 끊임없이 의미를 추구는 우리 인류의 시공을 초월한 소통창구였던 거다. 암화에서 시작해 당대 최고의 예술로 자리매김한 한메이린의 작품들을 보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또 예술이 얼마나 큰 위안이며 우리 삶의 정수인지를 깨닫는다. 


200m의 계곡 양쪽, 3천년 전부터 1만년 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6천여점의 그림들. 가축, 사냥, 제사, 춤, 인면, 일상생활, 계약(손도장)등 다양한 내용이 그려져 있다.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내가 이 생을 들여 추구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허란산 암화와 한메이린의 작품들을 만나고 나니 나는 더 이상 예전의 가 아닌 듯하다.




* 참고 자료

-YOUKU, <一个韩美林>, 2022

이전 12화 여행, 갈까 말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