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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Feb 20. 2023

충분히 좋아, 뤄양

허난성(河南省) 뤄양(낙양 洛阳)을 가다


중국을 처음 방문하는 지인이라면?


시안(西安)으로 데려 싶다. 세계 8대 불가사의 병마용, 중화 문명의 진수를 모아놓은 산시(陕西)역사박물관,  두보, 백거이, 이백 등 시인, 학자들의 도시, 실크로드의 시작, 일대일로(一带一路) 사업교두보, 당나라의 영화와 번성의 재현을 꿈꾸는 중국몽(中国梦)을 체감할 수 있는 곳, 깊고 웅장하고 오래되고 품위 있고 윤택한 도시 시안. 


시안 종루(钟楼)


중국을 처음 방문하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시안 살짝 옆, 3선 도시 뤄양으로 데려가고 싶다. 약간 엉성하면서도 우연히 마주치는 이야거리, 웃음거리 가득한 이 고풍스러운 도시에서 우리는 소박하고도 빛나는 추억을 길 수 있으리라.


코로나 통제가 삼엄하던 2년 전 여름, 혼자 시안 여행을 갔었다. 5일 정도 여유롭게 머물며 병마용, 화청지, 대당불야성 등 웬만한 관광지는 다 둘러보았지만 산시역사박물관만은 표를 구할 수 없었다. 원래는 무료만 워낙 문전성시를 이루다 보니 몇 달간 쭉 매진이었다. 물론 5만 원 도를 내면 여행사 표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래 무료인 표를 그렇게 해서까지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 무료 안박물관과 소안탑으로 갈음하고 돌아왔더랬다.


이 일이 못다 한 숙제처럼 마음에 남아 늘 안에 한번 더 가고 싶었다. 문득, 집에서 빈둥거리다 생각 , 산시역사박물관 표를 구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예매 시스템도 많이 개선되어 어쩌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10시, 11시, 18시, 19시 하루 네 번,  9,000장의 무표가 방출되는데, 1인당 최대 5장, 3일 내의 표만 예매할 수 있었다. 알람을 맞춰 놓고 10분 전부터 대기하고 있다가 정각에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면 표는 바로 매진이었다. 혹 여권정보까지 넣고 '신청'을 누르는 단계까지 가더라도 '이용자가 너무 많아 시스템이 불안정...' 메시지가 뜨면서 바로 매진되었다. 실패를 거듭하다가 마지막 남은 기회, 19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미친 듯이 따다다다  '신청' 버튼을 눌러댔다. 그러다 딱 얻어걸리는 거였다. 오!! 입장일자는 바로 이틀 후, 내일 당장 안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짐을 꾸렸다.


산시역사박물관 표 예매 사이트, 표 구하기는 대체로 불가능


산시역사박물관 소장품들



여름에 오면 쩌 죽고 겨울에 오면 으슬으슬 비만 맞다 떠나게 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멋진 도시. 10번을 와도 여전히 감탄하게 되는 도시 시안. 3일간 머물다 어쩐지 아쉬워 고속철 1시간 거리의 뤄양으로 발길을 돌렸다.

   

1. 뤄양 박물관


제일 먼저 양박물관. 동네 아저씨들이 바글바글한 수타면 전문점에서 든든하게 한 그릇 비우고 마침 비가 그쳐 공유 자전거를 타고 간다.


2천원 남짓한 수타면 한 그릇이 주는 '충분한' 기쁨
다리 난간의 사자상,근육 겁나 빵빵
우람한 외관의 낙양 박물관
박물관 관람 중인 냥냥들

산시박물관과는 대조적으로, 너무도 쉽게 입장 가능했다. 마침 밸런타인데이(情人节)전통 코스튬을 입고 박물관을 찾은 젊은 커플들이 많았다. 


어렵게 들어온 만큼 모든 유물들을 안구 속에 모조리 담아가려 했던 산시박물관에서와는 달리, 뤄양박물관 아이쇼핑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그러다 예쁜 등 받침발견! 언덕을 자유롭게 뛰어노는 동물들, 여유롭게 앉아 노래 부르는 사람들, 용을 타고 하늘을 나는 날개 달린 요정들(?), 역사적 의와는 별개로 생명의 즐거움이 생생하게 담긴  발랄한 등잔 받침을, 나는 '니체 등 받침'이라 부르고 싶다. 원래는 이런 세계이지 않았을까!


<채색 백화등>, 동한(东汉)시대

그리고 뤄양의 상징, 모란. 매년 4,5월이면 뤄양에서 성대한 모란축제가 열린다고한다. 중국인들은 왜 모란을 좋아할까, 바로 현생에서의 부귀영화를 바라는 솔직한 마음이 아닐까. 젊을 때는 백합이나 연꽃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지만 이젠 나도 당당히 밝히고 싶다. 나도 모란을 겁나 좋아한다고요!


모란 특별 전시관 작품들
모란 난간, 모란 가로등, 모란 신호등 등 도시 곳곳의 모란 상징물들


2. 용문석굴


둔황 막고굴, 다퉁의 강석굴 그리고 뤄양의 용문석굴, 중국의 3대 석굴이다. 이튿날은 당연히 용문석굴을 찾아 나섰다. 


용문석굴 가는 길에 본 '뤄양용문 제1일 소학교' 등교하는 초등학생들을 교문 앞의 용이 맞이한다. 그래서 용문(龙门)인가
용문석굴


석굴 내 사진촬영 불가, 가이드가 있어야만 관람 가능 등 삼엄하게 관리하는 데다 입장료도 5만 원이 넘는 둔황막고굴과는 달리 느슨하게 관리하는 용문석굴, 입장료는 90元(1만 6천 원),  강 건너편 향산사와 백거이 묘까지 포함된 착한 가격이다. 이렇게나 많은 소망과 염원들, 인간이 소망하는 한 종교는 번창할 수밖에 없다. 석굴이 너무 많아 나중엔 아래서만 올려다보고 지나쳤다.


이허 강을 건너 올라간 향산사(香仙寺). 멀리서 은은한 불종 소리가 자꾸 들리길래 스님들 불 시간인가 했더니,



스님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고 누구나 20元을 내면 소원종을 3번 칠 수 있는 체험코너다. 계산은 간단한 알리페이(支付宝) 바코드로. 햐! 기막힌 장사다.


장한가(长恨歌)를 지은 백거이(白居易) 시인의 묘도 둘러본다.

사회 비판적인 시를 쓰다가 말년에는 불교에 귀의한 시인 본인은 원하지 않았을 것 같은 거대한 묘
용문석굴 내의 모란석


검은 돌에 모란모양으로 옥이 박힌 희귀 자연석 '모란석'. 그 기묘함에 넋을 잃고 살펴보았는데 용문석굴 출구에 가니 공장에서 찍어낸  모란석 기념품 천지였다. 희귀 자연석이라더니!



3. 관림(关林)


다시 자전거를 굴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삼국지 관우의 머리로 조조가 장사 지내주었다는 관우의 묘, 관림이 보인다. 잠깐 보고 갈까? 관우가 인기 많은 영웅재물신이라 그런관림 광장 앞은 취미생활을 즐기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재물신에게 제사 지내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한글 희롱, 관림 광장 중앙 공연 무대를 '베드신층' 이라고 한글로 써 놓았다
관림 광장 앞 풍경, 팽이 때리는 아저씨, 내가 저 팽이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적지 않은 돈 40元(7,500원)을 내고 들어간다. 역시나  향과 부적을 파는 사람, 재물을 비는 사람, 재물과 부의 상징, 글귀들로 가득하다. 돈을 빌기 위해서는 돈을 써야 하는 왠지 의심스러운 시스템. 벤치에 가만히 앉아 관우의 묘를 오랜 세월 지키고 섰는 측백나무들 한참 바라보다 왔다.


관림 입구
나무가 자란 이 언덕이 관우의 묘

4. 수당대운하 문화 박물관, 수당낙양성국가유적공원


다음날 아침은 중국 최초의 불교 사찰, 백마사를 향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 현지인들이 버글거리는 식당이 있길래 나도 들어가 본다. 소고기탕에 면처럼 얇게 자른 삥을 담가 먹는 우육탕. 2천 원이 안 되는 가격, 10元이다. 하루를 살아갈 힘이 불끈 솟는 든든한 맛이다.


자전거 도로를 막고 있는 과용적한 전기차, 그 동안 중국에서 과용적한 차들을 많이 보았지만 이 차가 단연 1등인 듯


강변 자전거 도로를 한참 달리다가 눈이 확 뜨이는 멋진 건물 발견했다. ! 당장 들어가 봐야겠어!


수당대운하문화박물관


바로 수당대운하문화박물관. 수당시대 낙양성이 있던 이 자리에 대운하 유적공원과 대운하 물관을 세운 거였다. 대운하의 영화(荣华)와 자부심, 황금물결 모양의 건물 자체가 바로 박물관이 전하는 메시지였다. 빽빽한 아파트 사이로 복원한 낙양성 건물들이 도시의 운치를 더한다.


수당시대 국가번영의 상징, 대운하
수당낙양성국가유적공원, 밤에는 조명을 밝혀 더욱 멋질 듯


5. 백마사(白马寺)


이리저리 삼천포로 빠져가오후에야 드디어 도착한 백마사. 과연 입구에 불경을 중국으로 랐다는 흰 말 석상이  있다. 역사나 불교 연구자가 아닌 바에야, 내게 중국의 절은 평온함이나 경건함 없는 그냥 절일 뿐, 나는 그저 시내에서 21km 떨어진 백마사까지 자전거 타고 오는 그 과정을 즐겼다는 걸 깨닫는다.


백마사
현대에 덧붙여 지은 인도, 태국, 미얀마 등 국제사찰들
인도사찰 정원의 부처상, 역시 부처님도 가로 생활을 즐기셨어!


이렇게 백마사를 끝으로 아쉬운 뤄양 여행을 마무리한다.



충분히 좋음은 자기 앞에 나타난 모든 것에 깊이 감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완벽함도 좋음의 적이지만, 좋음도 충분히 좋음의 적이다.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충분히 좋음의 신념을 따르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 ' 충분히'가 떨어져 나가고, 그저 좋음만이 남는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213쪽


뤄양, 시안처럼 관광객을 압도하는 완벽한 최고의 도시는 아니지만 중국을 느끼고, 의외의 기쁨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충분히' 좋은 도시. 훗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쩐지 시안보다 더 좋아지는 도시, 뤄양.


다음은 고속철 1시간 거리의 4선 도시, 카이펑(개봉 开封)으로 떠난다.


관림 앞 시장, 화덕에서 갓 구워져 나온 밀가루 빵(烧饼), 한 끼 식사로 '충분히 좋다'. 한 개 가격은 1元(18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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