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꿈같은 휴가 20일이모래알처럼내 손을 모두 빠져나가버리고 다시, 혼자, 중국으로 돌아왔다.
줄을 안 설수록 더 오래 걸려요! 越乱越慢!
이유를 납득할 수 없는 긴 대기줄, 새치기, 방금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을 향해 무례하게 소리 지르는 공항 직원들, 코로나 검사가 없어졌음에도 한국보다 몇 배는 더 오래 걸리는 공항수속, 화장지 없는 화장실, 신분증을 보여주어야 살 수 있는 버스표... 중국에 돌아온 것이 급격히 체감된다. 앞으로 또 1년을 혼자 어떻게 버티나, 울고만 싶다. 한국에 갈 수 없었던 지난 3년 동안씩씩하게 잘 버텼는데, 한국에 잠깐 다녀와서는 '남편의 응석받이, 찌질이 엄마'라는 나약한 본캐가 드러나고 만 것이다.
예상외로 길어진 입국수속 때문에 결국, 선양에서 연길로 가는 마지막 기차를 놓치고야 만다. 원래는 연길 집으로 직행, 화분에 물을 준 다음 침대에 머리를 처박고 며칠을 펑펑 울 예정이었으나 어쩔 수 없이 선양에 숙소를 구한다. 안 그래도 얼어붙은 마음으로, 영하 20도를 오가는 선양에서 자야 한다니, 더욱 울고 싶다.
싼 가격에 혹해 급히 예약한 IBIS호텔. 무너질 것 같은 상태로 방에 들어갔더니 햐, 창문이 없다! 상자에 담겨진듯, 숨이 막힌다. 부랴부랴 숙소를 취소하고 다시 어둡고 추운 거리로 나왔다.드륵드륵캐리어를끌며힘없이걷는다. 좀 비싸더라도 믿음직한 글로벌체인호텔에 다시들어갔다. 남편과 영상통화 하며 참았던 눈물을 기어이 터트리고 만다. 이제는 온몸이 아프다. 왜 살아갈수록 살아갈 용기가 점점 더 쪼그라드는 것인지.
다음날 아침. 지난밤의 추위와 어둠, 처참함은 오간데없이무척이나 따뜻하고 밝은 날씨다. 그래도 선양에 왔는데하며 1박을 더 연장했다. 하필월요일이라가보고 싶었던 랴오닝성 박물관과 고궁은휴관이다. 대신청나라 태종 홍타이지 부부의 능원이 있다는 북릉공원으로향한다. 모처럼자전거를 타고 가볼까.
공원 입장료는 5元(900원), 공원 한가운데 있는 청소릉(清昭陵)까지 보려면 40元(7,000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공원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뽕짝뽕짝 음악소리에 맞춰 댄스 삼매경에 빠진 평일 대낮의 중년들을 만난다. 희끗한 머리칼이나 나무통 몸매, 남녀의 체면 따위는 깡그리 잊고 온갖 교태를 부리며 구애하듯 어울려춤추는 사람들을, 이곳 으리으리한 무덤의 주인 홍타이지 동상이 약 오르는 듯 험악하게지켜보고 있다.당신은 권력을 누렸지만 우리는 이렇게 살아있음을 누린다.
공원 안에는 겨울의 고장, 둥베이 답게 온갖 겨울 스포츠가 성업(?) 중이다.얼음 썰매와 눈썰매, 스케이트, 얼음 바나나보트 그리고 얼음물수영.
그리고멀리, 개썰매 같아 보이는, 저건?
가까이 가서 보고는 폭소를 터트렸다. 과연 (짝퉁)아이디어 천국, 중국이다.코끼리 썰매, 루돌프 썰매, 개썰매 등 각자의 판타지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동물들이 박제품처럼 제법 정교하다.
추가 요금을 내고 유네스코지정 문화유산소릉에 들어가는 대신, 소릉을 둘러싼 붉고 높다란 담장 둘레의 숲길을 천천히 걷는다. 명징한공기, 겨울 한낮의 느긋한 햇살을 깊이 음미한다. 바닥을 쳤던 감정들이 서서히 차오른다.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쓰라린 걱정과 염려, 올 한 해 짊어지게 될 버거운 책임들, 되돌릴 수 없는 선택들, 원치 않는 변화,무시와 오해, 억울함, 수단 혹은 물건 취급, 독선적인 상관 등에 대면해 나갈 용기를 얻는다.
너무 슬프고 아프고 두려워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잠시 그 일에서 빠져나와다른 것에 눈을 돌려보자. 생뚱맞고 유치하고 하찮을수록 더 효과적이다. 핵불닭 떡볶이를 사 먹거나 넷플의 <365일>을 침 흘리며 들여다봐도좋다.아줌마 아저씨들이 신 내린 듯 뒤엉켜춤추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따뜻한 햇살 아래 천천히 걷기만 해도 된다.어차피 어려움 그 자체는 사라지지도해결되지 않는다. 단지 그 어려움에 대한 나 자신의 생각과 태도만 해결할 수 있을 뿐이다.때로는 그 어려움들이 내 머릿속에서 수차례 굴려지며 실제보다 더 부풀려지기도 한다.
그렇게, 햇살 좋은 겨울 한낮 북릉공원에서, 겨울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다가올 중국에서의 1년을대수롭지 않게, 유쾌하게, 용감하게, 맞이하기로 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