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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Feb 02. 2023

사랑과 예술이 있다네

창사(长沙) 이자건미술관(李自建美术馆)을 가다

3년 만에 다녀온 한국에서 화려하고 특별한 뭔가를 한 건 아니었다.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고 폭설이 온 날 밤에는 눈을 밟으 집 앞 공원을 걸었 남편과 드라마 <카지노>를 재미있게 보았다. 다만, 떠날 날이 정해져 있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가족들과의 일상 감사하고 소중히 여겼다. 특히 남편과는 그 어느 때보다 애틋했다.


후난성 창사, 이자건 미술관에 들어서니 이 미술관의 창립자이자 화가인 이자건 선생의 사진이 큼지막히 걸려있었다.


아니,
필리핀에 있어야 할 차무식이 여기에!


최민식인가 이자건인가


2016년 10월 개관, 건축면적 2만 5천 평방미터, 2017년 이자건 부부 명의로 창사시에 증여, 2022년 기준, 총 600 여점의 작품 소장, 세계에서 가장 규모 큰 개인 화가 미술관. 


이자건, 유화 작품

누구에게나 무료 영구 개방된 멋진 전시 작품들과 그 자체가 예술작품인 미술관 건물과 내부, 흑백조가 사는 아름다운 호수 정원 외에도, 이 미술관이 오래도록 감동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이자건, 조소, <임신한 아내>
이자건, 유화, 좌 <시인 단혜>, 우<단혜>
아내 단혜와 자녀들을 그린 이자건의 유화 작품들, 그의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은 점점 헐벗은 아이들, 노인, 노숙자, 전쟁 피해자들을 그리는데로 퍼져나간다.


바로 이 미술관 자체 화가 이자건과 시인 ()단혜의 일생에 걸친 사랑과 예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미술관 자체가 바로 그들의 사랑이 만들어낸 기적이기 때문이다. 붓으로 부르는 세레나데라고나 할까.


남편이 일개 미술학도에서 세계적인 화가로 성장하는데 절대적인 영감과 헌신적인 조력을 준 아내, 단혜. 이 미술관은 부부의 오랜 꿈이었고 두 사람은 그 꿈을 함께 설계하고 결국, 함께 이루어냈다. 미술관 벽에는 미술을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단혜의 그림과 시를 모티브로 한 동관(铜管) 벽화가 설치되어 있다. 자유로우면서도 풍부한 선만 보아도 그녀가 얼마나 영적으로 만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손바닥을 꽉 움켜지면
당신 자신만을 소유할 뿐이지만
손바닥을 활짝 펼치면
세계를 향유할 수 있다네

-단혜, <깨달음>

미술관 벽면에 동관(铜管)으로 설치 <혜세계 慧世界>


얼마 전 2022년 8월, 향년 59세로 병사한 아내 단혜 시인의 추모회가 미술관에서 열렸고 지금은 미술관 정원 건립비 앞에 '이자건 미술관 공동 창건인'인 그녀의 추모비가 함께 세워져 있다. 그 믿음과 사랑을 지켜내는데 얼마나 많은 위기와 어려움이 있었을. 가슴 먹먹해지는, 참으로 단단하고도 따뜻한 사랑이야기다.


중국 후난성에서 나고 자란 후 LA로 이민 갔다가 예술적 성공을 거둔 후 다시 모국으로 돌아와 고향에 미술관을 세운 이자건 단혜 부부


인생은 고난과 실패의 연속이다. 너무도 쉽게 염증과 바이러스, 암세포, 불운의 공격도 받는다. 우리는 넘어지고 통곡하며 울분에 젖는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랑과 예술이 있다. 낙원에 갈 수는 없지만 서로 사랑하고 예술에서 위안과 희망을 얻을 수 있다.


언젠가 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평생을 함께 의지하며 분투해 나갈 사람을 찾았다면, 두 사람이 꼭 이곳에 와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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