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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모닥불 Oct 22. 2023

13주 차 : 백일잔치를 꼭 해야 하는가, 의견 대립

'어? 팔과 다리도 모자라서 배와 등까지...'

- 2023년 7월 6일 -


난생처음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거울을 보니 보통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다. 게다가 얄밉게도 잠을 잘 시간이 되면 잔뜩 나타나서 가려움증을 유발하다가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쏙 들어가기를 며칠 동안 반복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웬만한 음식에서는 전혀 알레르기 반응이 없었던 나는 두드러기의 원인이 과연 무엇인지 파고들기 시작했다. 음식이나 약물의 영향이 아니라고 한다면 면역력 약화나 스트레스 탓이겠다 싶었다. 마침 이렇게 두드러기가 올라오기 며칠 전부터 감기 기운도 있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내 몸의  면역력이 약화되어 있는 상태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여기에 스트레스를 받을만한 요인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떠오르는 게 한 가지 있었다. 잔디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되는 시점이 슬슬 다가오면서 백일잔치를 두고 아내와의 의견 대립으로 요 며칠새 갈등과 고민을 겪으면서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던 것 같다. 결국 그로 인해 감기 기운과 동시에 두드러기 증세까지 이어진 게 아닌가 싶었다.


일잔치라는 단어의 유래를 살펴보왜 백일을 거창하게 잔치라고 표현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첨단 의술이 발달한 지금과는 달리 예전에는 아기가 태어나면 백일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 백일만 넘겨도 잔치를 할 정도로 집안과 동네의 경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영아 사망률이 획기적으로 낮아져 거의 대부분의 아기가 별 탈 없이 백일을 맞이하고 있다. 덕분에 이제 백일은 더 이상 떠들썩하게 잔치를 할 정도의 경사는 아닌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요즘은 백일잔치를 아예 생략하거나 소품 업체에서 셀프백일상 세트를 대여해서 집에서 사진만 간단히 찍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달랐다.


우선 잔디는 나와 아내의 양 쪽 집안 모두 처음으로 맞이하는 귀한 손주였다. 마침 우리가 결혼한 지 8년이 지나는 동안 양가가 한자리에 모인 적이 없기도 했다. 때문에 이번 기회에 최대한 많은 가족들이 우리 집에 모여서 잔디의 백일을 축하해 주는 것이 매우 특별한 의미가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주변의 친구들 중 아기의 백일을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보낸 경우가 많았던 것도 내 생각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러나 아내의 반대 의사는 생각보다 단호하고 명확했다. 우선 우리 세 식구에 양가 부모님과 형제자매 식구들지 모두 모이면 성인 11명, 아기 1명이다. 그에 반해 우리 집은 이 모든 인원이 한자리에 모여 앉을 정도로 공간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또한 태어난 지 백일밖에 안 된 잔디에게 온 신경을 써야 하는 에서 모든 가족들을 우리 집에 초대해서 제대로 맞이하고 식사를 대접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아내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 맞는 얘기라 반박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이란 항상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게 되는 법. 나는 나대로 이라는 그 숫자 자체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백일잔치를 꼭 했으면 좋겠다는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결론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채 잔디의 백일이 가까워 오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부모님께서 다가오는 토요일에 우리 집에 오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부모님은 잔디가 태어난 지 약 30일이었을 무렵에 우리 집에 오셨다 가신 이래로 계속 손주를 또 만나보고 싶어 하셨다. 그러나 서로 일정을 맞추기 어려운 관계로 그로부터 거의 두 달이 다 되도록 잔디를 못 보고 있던 참이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시간이 잘 맞았고 부모님은 잔디의 백일을 딱 12일 앞둔 토요일에 우리 집으로 오셨다.


모님이 처음 봤었던 잔디는 생후 1개월로 거의 누워 있기만 하고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했었다. 그와 달리 이번에 보게 된 생후 88일의 잔디는 보여줄 것훨씬 더 많아졌다. 우선 엎드려서 허리에 힘을 주고 양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면서 고개를 빳빳하게 든 채로 부모님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부모님은 오랜만에 만난 잔디가 신생아 시절을 벗어나서 어엿하게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면서 연신 흐뭇해하셨다.  잔디가 잠깐이나마 아기 의자에 제법 의젓하게 앉아 있을 수 어서 부모님과 함께 정면을 바라보는 사진을 찍는 것도 가능했다. 마침 모님이 백일 금반지를 선물로 사 오셔서 잔디의 손가락에 끼우고 함께 사진을 찍으니 더욱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가신 후 남겨진 사진들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바로 오늘 우리 집에서 내가 그토록 원하던 디의 백일잔치를 치른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88일과 100일은 단순히 숫자상으로 불과 12일 차이 날 뿐이다. 결국 잔디의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의 축하와 백일 금반지 선물로 마치 풍성한 백일잔치 같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적은 인원이 모였기 때문에 비교적 차분하고 안정적인 분위기 속서 다 같이 여유롭게 식사를 즐길 수도 있었다.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하루였다. 


이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 돌이켜보니 나는 왜 그렇게 백일잔치에 지나치게 매달렸었던 걸까? 결과적으로 따지고 보면 아내의 의견대로 백일에 양가 집안 식구들이 모두 모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멋진 하루를 보내지 않았는가. 잔디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가까운 곳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꼭 백일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따로 오셔서 축하해 주실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육아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의견만을 강하게 고집하고 그대로 행동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기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 주양육자로서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아내의 의견을 더욱 존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비단 육아와 관련된 문제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살면서 다양한 문제 상황에 직면할 때 의견 대립이나 갈등은 언제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내 의견의 명분만을 먼저 생각하고 설득하려고 하기보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아내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여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마치 백일잔치나 다름없었던, 너무나도 행복하고 즐거웠던 잔디의 88일을 보내고 그다음 주가 되자 두드러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항상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해야만 하는 이유를 이렇게 다시 한번 깨닫고 있다.



* ENFP인 저(남편)와 ESTJ인 아내가 남과 여, 각각의 시선에서 육아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아내의 시선 : 1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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