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가 태어난 지 3개월이 지나가면서 슬슬 차를 타고 외출하는 것을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카시트가 필요했다. 잔디가 태어날 무렵부터 이미 집에 배송되어 있던 카시트는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박스 안에 갇혀있었다. 잔디가 태어난 후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카시트 설치를 미뤄 왔었다. 잔디가 낮잠에 들고 잠시 한가한 일요일 오후의 한때를 보내고 있던 와중에 문득 방치해 둔 카시트가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1980년대에는 대부분의 차에서 카시트를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당시에는 카시트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뒷좌석 안전벨트 의무 개념도 없었던, 아직은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수준이 많이 미흡한 시절이었다. 카시트가 정확히 언제부터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한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6세 미만 영유아의 카시트 착용이 의무화되어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기 시작한 것이 2006년부터였으니 그즈음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회사에 막 입사했을 무렵인 2012년에 아기가 있는 선배의 차를 얻어 타고 외근을 함께 가면서 뒷좌석에 설치되어 있던 카시트를 보고 그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이후 아기가 생긴 친구와 선후배들이 차에 카시트를 달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그제야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던 것 같다. 지금은 카시트는 아기를 가진 집이라면 당연히 차에 설치해야 하는 필수 육아용품이 되었다. 또한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카시트 브랜드와 그 종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다른 육아용품들과 마찬가지로 카시트도 그 수많은 제품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 알아보고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아기의 안전과 직결된 제품이기 때문에 구매에 더욱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육아용품들은 아내가 직접 알아보고 선택했었지만 유일하게 카시트의 경우는 달랐다.
나의 친한 친구 한 명이 카시트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다니는 회사의 제품이었기 때문에 아기를 가지기 전부터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었다. 또한 카시트 전문가인 친구의 확신과 열정으로 가득 찬 설명을 들어보니 비상시 아기를 안전하게 보호해 줄 수 있는 제품이라는 믿음을 갖기에 충분했다. 언젠가 아기를 낳는다면 꼭 이 카시트를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올해 잔디가 태어나면서 친구 덕분에 고민 없이 좋은 카시트를 선택할 수 있었다. 드디어 박스를 개봉하고 카시트를 꺼내어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제품 설명서에 나와있는 각 부위의 명칭과 기능을 숙지하고 설치를 시작했건만 직접 차에 장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1시간 정도를 땀을 뻘뻘 흘려가며 씨름한 끝에 설치를 완료하고 집으로 올라가자 아내가 말했다.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곳에서 조금 이따 당근 거래 하기로 했는데 잔디 카시트에 태우고 다 같이 가볼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 않았나. 잔디의 첫 카시트 탑승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마침 첫 탑승인 것 치고는 이동거리도 20분 정도면 무난한 것 같아 보였다. 이번에 첫 카시트 탑승을 무사히 잘 마친다면 다음번 외출은 더 먼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아내가 운전을 맡고 나는 뒷좌석에 앉아서 카시트에 탑승한 잔디를 챙겼다.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면 카시트를 타기 싫어해서 우는 아기들도 많다고 들었었다. 다행히 카시트에 태우고 연결된 벨트를 조이는 과정에서는 잔디는 별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차가 달릴 때에는 괜찮았다가 신호 때문에 차가 멈추는 순간부터는 바로 울기 시작해서 다시 차가 출발할 때부터 괜찮아지기를 무한 반복했다. 아직 백일도 안된 잔디이지만 차가 멈추는 그 순간에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걸 인식하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나 마냥 신기해하고만 있을 틈은 없었다. 차가 멈추어 있는 순간에는 잔디가 지루해하거나 울지 않도록 있는 힘을 다해서 노래를 불러주고 재롱을 떨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해서 중고 거래를 마친 후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이었다. 잔디는 올 때와 같은 패턴으로 괜찮다가 울다가를 몇 번 반복하다가 잠이 들어 버렸다. 카시트에 누운 채로 고요하게 잠든 잔디의 얼굴을 보면서 잠깐 생각에 잠겼다. 영유아를 카시트에 태우는 것은 교통사고와 같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다. 영유아가 카시트를 착용하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교통사고 사망률이 획기적으로 감소한다고 한다. 아직 체구가 작고 목을 제대로 가눌 수 없기 때문에 카시트 착용을 안 하고 교통사고가 날 경우에는 치명적인 위험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잔디는 지금 카시트에 잘 탑승한 채로 곤히 자고 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만약 교통사고가 난다면 옆좌석에 있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방법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잔디가 탑승한 카시트 뒤를 내가 막아서는 것이었다. 카시트의 존재 자체가 교통사고가 날 경우 아기를 최대한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것은 맞다. 카시트가 튕겨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차의 뒷좌석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으며, 아기가 충돌로 인한 충격을 최대한 덜 받도록 여러 겹의 쿠션으로 감싸준다. 그러나 혹시 모를 빈틈이 발생할지도 모르니 그 틈을 아빠인 내가 채워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순간 내가 카시트 뒤를 막아선다면 정확히 얼마나 될지 가늠할 수 없는 충격에 대비해서 잔디에게 내 몸이라는 한 겹의 보호막이라도 더 제공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교통사고와 카시트라는 구체적인 상황을 가정해 보면서 나도 모르게 떠오른 이러한 생각은 도대체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일까.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를 위해 내 목숨을 던질 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해보지 못했었다.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일제강점기 때 나라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많은 분들에 비하면 부끄러울 일이기도 하지만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평범한 한 인간일 뿐인 나로서는 상상조차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어렸을 적, 죽음의 의미를 처음 알게 된 후부터 가끔씩 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잔디가 태어난 후 달라진 점이 있었다. 아주 조금씩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 잔디를 보면서 지금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다른 종류의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고 연약한 존재가 이 세상에 나오게 만든 사람인 내가 앞으로 남은 인생동안 잔디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 싶다고.
부모님 두 분이 내게 주신 사랑, 내가 아내와 만나서 주고받은 사랑, 그리고 올해 새롭게 추가된 내가 앞으로 평생 잔디에게 줄 사랑.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내 인생이 사랑으로 가득 채워진다면 나는 더 이상 언젠가 마주할 죽음의 순간이 두렵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 ENFP인 저(남편)와 ESTJ인 아내가 남과 여, 각각의 시선에서 육아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아내의 시선 : 1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