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름없는, 크게 특별할 것 없는 주말이 끝나가고 있던 일요일 저녁 무렵이었다. 잔디를 재우고 나서 함께 소파에 앉아서 뉴스를 시청하던 아내가 말했다. 3월 중순부터 휴직에 돌입했던 아내로서는 4월 출산을 전후로 연차와 출산휴가 소진을 모두 마치고 육아 휴직 기간으로 넘어가는 시점인 7월 중순이 다가온 것이다. 당초 11개월의 육아휴직을 쓰고 내년 7월에 복귀하는 것으로 회사에 휴직 신청을 계획했던 아내였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가 발생했으니 그건 바로 말로만 듣던 '산후우울증'이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 그리고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아기를 가지기로 결정하기 전에는 산후우울증에 대해 잘 몰랐다. 가끔 신문기사나 뉴스, 또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다뤄지는 소재거리로서만 접했을 뿐이었다. 심지어 먼저 출산을 경험한 주변의 친한 친구들은 산후우울증에 대해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건 아마도 지나간 과거는 미화가 된다는 오래된 법칙을 충실히 따른 탓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희망 섞인 미화와는 별개로 호르몬의 힘은 무서웠다. 아내는 잔디가 태어난 지금까지 매일 24시간 내내 함께 부대끼면서 육아에서 주양육자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리고 나는 부족하지만 부양육자로서 함께 보낼 수 있는 한정된 시간 내에서 육아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아내의 입장을 나름 잘 이해하고 이를 잘 보듬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러나 아내의 조기복직 검토 선언에 나는 이내 뒤통수를 세게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아내와 차분히 대화를 이어가던 나는 그녀가 지금껏 수십 년간 살아온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는 현재의 일상 속에서 갖는 이질감과 고충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느꼈다. 지난 십여 년 이상 회사에서 매일, 매달, 매년 새롭게 주어지는 업무들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성과를 내고 인정을 받으면서 성취감을 느끼던 아내였다. 그러나 집안에서의 육아는 반복되고 지루한 업무의 연속이었고 아무리 열심히 수행하더라도 그 성과는 잘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성취감의 부재가 고된 육아로 이미 지친 아내를 한 단계 더 힘들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아내는 '내 인생에서 나 자신의 정체성이 사라진 것 같다'라고 표현했다. 물론 매 순간 아기가 주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지만 그와는 별개로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면 아내 자신을 위한 시간은 전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가 퇴근하고 돌아와서 건네는 고생했다는 단순한 말 한마디는 아내에게 충분한 인정과 위로가 될 수 없었다.
아내가 털어놓은 성취감의 부재에 대해 나도 의견을 말했다. 육아에 있어서 성과라는 것이 회사 업무처럼 정량적으로 수치화하는 것은 힘들지만 우리의 아기가 잘 자라나는 것을 확인하고 지켜보는 것 자체가 정성적인 성과가 아니겠냐고.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모범적인 답안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아내의 표정을 보아하니 당장 크게 와닿지는 않는 것 같아 보였다. 내가 애써 번지르르하게 포장한 이성적 논리는 자연의 법칙인 호르몬의 상대가 될 수 없었던 것일까. 아내도 머리로는 나의 의견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지언정 가슴으로는 잘 안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일요일 밤은 깊어만 갔고 평행선을 달리던 우리의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다.
길었던 밤이 지나가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내의 산후우울증을 유발하는 호르몬의 힘이 약화되는 우연한 계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아파트 온라인 커뮤니티에 누군가가 올린 게시글이었다.
'2023년생 아기 아빠인데요. 아내가 우리 아파트 아기 엄마들과 소통하고 싶어 해서 제가 대신 글 올려봅니다. 소통을 위한단톡방을 하나 개설했는데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게시글에 자연스럽게 이끌린 아내는 바로 단톡방에 들어갔다. 이내 같은 아파트의 2023년생 아기 엄마들이 10명 남짓 모였고 특이하게도 우리와 같은 여자 아기가 9명이나 되었다. 그중에는 우리 잔디와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아기도 있었고 우리 아래층에 사는 아기도 있었다. 역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 좁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참으로 신기한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단톡방은 밝고 활발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그 안에서 서로 많은 대화가 오고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5명의 아기가 한 집에 모이는 진전이 있었다. 5명의 아기가 모여서 찍은 사진을 보니 그저 사랑스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너무 보기 좋았다. 그 후에도 이 사랑스러운 아기들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자주 마주쳤고 틈 나는 대로 삼삼오오 모임이 계속 이어졌다.
사람들을 만나고 온 아내의 후기를 들었다. 대부분이 일을 하다가 출산을 위해 잠시 휴직한 예비 워킹맘들이라 서로 공감하고 통하는 부분이 많다더라. 그동안 출산 후 겪는 어려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단 탓에 우울감이 더 심했던 것 같다는 자기 고백과 함께. 출산과 육아를 먼저 경험한 친구들은 많았지만 그 시기가 달랐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어려움을 온전히 함께 나눌 수는 없었던 것이다. 또한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남편인 나조차도 아내와 동일한 상황을 겪는 게 아니었기에 공감대 형성이 어려웠던 것이었다.
우연한 기회를 통해 아내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참 다행이고 이러한 인연의 끈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내에게 미치는 호르몬의 힘이 조금이나마 꺾인 것은 덤이었다. 아내가 산후우울증을 겪는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부분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고 이성과 논리로만 무장하려고 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기가 태어나고 육아를 하면서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오만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육아를 함에 있어서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거나 잘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혼자서만 고민하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의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길을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거라 상상해 본다.
* ENFP인 저(남편)와 ESTJ인 아내가 남과 여, 각각의 시선에서 육아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아내의 시선 : 1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