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주 중요한 손님 3명이 우리 집에 잔디를 보러 오기로 한 날이다. 그 주인공들은 바로 아내의 친구와 나의 친구, 그리고 이들의 다섯 살짜리 예쁜 딸이다. 잔디를 하루빨리 만나고 싶어 하던 이들 가족의 방문을 우리 가족 역시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아내의 중학교 친구와 나의 군대 친구가 우리의 소개로 만났다. 둘은 결혼을 했고신혼집도 우리 부부와 같은 동네에 자리 잡아 그야말로친한 친구인 동시에 가까운 이웃사촌이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4년 전에여자 아기를 낳은 후부터는 출산 전도사의 역할을 자청하고 항상 옆에서 우리의 출산을 장려하면서 응원해 주었다.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육아였겠지만 친구 부부가 아기와 알콩달콩 사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우리도 아이를 키울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이들 부부는 딸에게 입혔던 옷가지들과 사용하던 장난감들을 아직 언제 태어날지도 모르는 우리의 아기에게 물려주기 위해 하나도 버리지 않은 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특히 친구 부부가 정들었던 우리 동네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기 하루 전날에는 마치 출산을 기원하는 부적을 건네주는 것인 양 아기 체육관 하나를 우리 집에 던져두고 가기도 했었으니 그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리라.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아내의 중학교 친구, 먼저 아빠가 되어 경험한 육아에 대해 항상 차분하게 조언을 해주던 나의 군대 친구, 그리고 아내의 불룩 나온 배를 만지면서 "잔디야 어서 나와서 같이 놀자"며 방긋 웃던 예쁜 아기. 이들 가족과의 오늘의 만남은 우리에게 더욱 특별한의미로 다가왔다.
작년에 아내가 임신을 하자마자 우리는 마침내 친구 부부가 정성스럽게 모셔둔 옷가지들과 장난감들을 물려받게 되었다. 너무나도 소중한 이 물건들은 잔디가 태어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7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24시간을 함께 해왔다. 마침 같은 여자 아기였기에 물려받은 옷들이 예쁘고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빠르게 자라는 어린 시기의 여름을 보내는 동안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12개월까지는 웬만한 옷은 하나도 안 사도 될 정도로 아직도 많은 옷이 남아 있다. 그리고 장난감들도 아직 잔디가 직접 가지고 놀지는 못하지만 터미타임을 시키거나 기저귀를 갈아줄 때 잔디의 관심과 호응을 유도하는데 아주 유용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와 아내가 태어나고 자라던 80년대 중반에는 집집마다 두 명이나 세 명의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옷 물려 입기가 주로 집안의 형제자매들끼리 이루어졌던 것 같다. 대체로 옷의 품질도 지금보다 많이 떨어졌을 터이니 집안의 형제자매들끼리 이미 한 두 번 물려 입고 나면 너무 낡아서 다시 다른 집의 아이한테 가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세월을 더 거슬러 올라가서 우리 부모님 세대는 지금과는 달리 먹고살기 어려운 시대였기에 옷이 아무리 낡고 해졌더라도 형제자매는 물론 이웃끼리도 옷 물려 입기는 필수였던 집이 많았을 테지만.
집안에서 둘째였던 친구들이 옷 물려 입기가 지겹도록 싫었다는 경험담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아마도 단순히 옷이 낡아서 물려 입기 싫었다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억울함과 이미 매일 보아왔던 첫째가 입던 옷을 그대로 입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반항감이 강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지금은 첫째의 옷을 물려 입을 둘째의 존재 자체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인 저출산시대이다. 친구 부부 아기의 옷을 물려받아서 아주 잘 입고 있는 잔디를 바라보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옷 물려 입기가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본다.
사람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꼽는다면 아마도 경제적 부담일 것이다. 부동산, 사교육비 등을 필두로 하여 아이를 키우는데 드는 각종 비용을 생각하면 차라리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계산과 판단을 충분히 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개인의 가치관과 삶에서 차지하는 우선순위에 따라 출산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아기가 주는 행복과 기쁨을 기대하고 출산을 원하기는 하지만 아이를 낳음으로써 경제적으로 불리해진다는 계산과 판단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출산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방법의하나로옷 물려 입기가그 출발선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들은 하루가 다르게 빨리 자라기 때문에 어차피 한 계절이 지나면 더 이상 같은 옷을 입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외출도 적기 때문에 실내복 위주로 많이 입게 된다.또한 아기가 옷을 물려 입는 것에 대한 인지가 없는 시기인 것까지 감안하면 새 옷을 입히는 효용성이 조금은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안 그래도 출산 후 육아 초기에는 부부 중 한 명이 육아 휴직을 하거나 아예 전업으로 육아를 하는 경우가 많아 가구당 급여가 줄어드는 데다가 이것저것 사야 할 용품들은 많아서 경제적으로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옷 물려 입기를 통해 육아에 드는 비용을 조금이나마 절약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주변의 친구, 선후배 등의 출산이 오래돼서 옷을 물려 입을 수 없다면 요즘 많이 활성화되어 있는 당근마켓과 같은 중고거래를 통해서 새 옷에 비해 저렴하게 구매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물려받기와중고 거래는 비단옷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육아와 관련된 모든 용품들로 확장하여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우선 친구 부부가 물려준 아기옷과 장난감, 그리고 또다른 친구가 나중에 둘째가 생기면 다시 돌려달라며 빌려준 유모차를아주 잘 쓰고 있다. 또한 아기침대와 의자, 책장 등은 중고거래로 구매해서 잘 사용하고 있다.물론 현실적으로 모든 육아 용품들을 다 물려받거나 중고거래로 사서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도 아기의 안전과 직결된 카시트와 위생을 위한 젖병 소독기는 새 제품으로 구매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물려받기와 중고거래의 활성화를 통해서 각자 가능한 부분에서부터 조금씩 비용을 절감하고 여기에 알뜰한 소비 생활을 병행해 나간다면 출산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자원의 재사용을 통해서 폐기물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소시켜 환경 보호에도 공헌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친구 부부 SNS 계정의 오래된 사진첩 속에서 지금 잔디가 입고 있는 옷들을 찾아보곤 한다. 가장 오래된 사진부터 훍어보다가 바로 그 옷을 발견하는 순간의 찰나, 그리고 당시 아기가 생후 몇 개월 정도였을지 생각해 보는 시간들이 소소한 재미로 느껴지는 요즘이다.
* ENFP인 저(남편)와 ESTJ인 아내가 남과 여, 각각의 시선에서 육아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아내의 시선 : 1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