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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모닥불 Oct 01. 2023

9주 차 : 처음으로 단둘이 보낸 24시간, 독박 육아

"걱정 말고 즐겁게 놀고 와"

- 2023년 6월 9일 -


아내가 친구들과 파주로 1박 2일 캠핑을 떠난 직후인 금요일 오후 1시였다. 아내에게 잘 놀고 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핸드폰을 내려놓는 순간 마침내 잔디와 처음으로 단둘이 보내는 24시간의 막이 올랐다.


잔디가 태어난 지 2달이 다 되어신생아 중환자실과 산후조리원을 거쳐서 집으로 온 지도 어느덧 40일이 지났다. 그 40일의 기간 동안 아내는 일과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잔디와 함께 보냈다. 그야말로 아침에 잔디가 깨는 순간부터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먹이고 놀아주고 안아주고 재우는 것이 계속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이었다. 물론 형식은 단조롭지만 그 안의 내용은 전혀 단조롭지 않고 매우 스펙터클 하다. 장모님이 낮에 정 시간 옆에서 도와주시긴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내는 하루종일 잔디와 함께 있으면서 온 신경을 집중해야만 했다. 그에 비하면 난 평일에 출근하기 전 30분과 퇴근한 후 1시간 30분을 합쳐 딱 2시간 정도만 잔디와 함께 했다. 물론 나도 주말에는 아내와 같이 24시간을 온전히 잔디와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그건 7일 중 오직 2번일 뿐이었다. 아내가 주양육자로 잔디를 돌보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정신적으로도 예민한 상태인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당장 물리적으로 시간을 더 투입한다거나 무언가를 더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에 좋은 방법이 문득 떠오른 게 있었으니 그것은 아내에게 잠시 육아에서 벗어나서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아내와 나는 결혼 후 잔디가 태어나기 전까지 캠핑을 무척이나 즐겼었다. 답답한 도시의 빌딩 숲을 잠시 벗어나서 탁 트인 자연의 공간 속에서 먹고 마시고 자는 캠핑은 그야말로 힐링 그 자체였다. 틈날 때마다 전국 방방곡곡 산과 바다에 있는 캠핑장을 찾아다니면서 즐거운 추억들을 많이 남겼다. 특히 우리 부부에게 아기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바로 전인 작년 7월 말에 갔던 캠핑장유난히도 넓고 푸른 잔디밭 위에 있었다. 아기의 태명을 잔디로 지은 것도 그 마지막 캠핑에서의 넓고 푸른 잔디 우리 부부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준 것만 같아서였다. 그토록 캠핑을 좋아하던 아내와 나였지만 임신을 한 후부터 출산을 하고 난 지금까지 캠핑 갈 생각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잔디가 태어나기 전 아무것도 모르던 때에는 우리 가족은 아기가 생후 1개월만 지나면 다 같이 캠핑을 갈 것이라고 주변에 호언장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막상 잔디가 태어나고 나서 보니 캠핑은커녕 외출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던 중 우리 가족 셋이 모두 함께 캠핑을 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아내라도 따로 친구들과 캠핑을 다녀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었다. 육아로 지쳐 있는 아내가 캠핑을 가서 모처럼 기분 전환을 하고 잠시나마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게다가 더 이상 모유수유를 하는 것도 아니었 때문에 아내가 없더라도 내가 하루는 충분히 잔디를 잘 돌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나의 제안을 들은 아내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계속된 나의 권유로 결국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드디어 오늘 떠나게 된 것이다.


나름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던 나였으나 혼자 육아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분명히 아내가 나와 바통 터치할 때 방금 대변을 봤다고 했었는데 채 1시간도 되지 않아서 또 대변을 봤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아내와 내가 같이 있을 때는 아내가 대야에 따뜻한 물을 준비하는 사이에 내가 대변이 가득한 기저귀를 빼고 물티슈로 1차 뒤처리를 하고 욕실로 달려가서 물로 씻기는 시스템이었으나 지금은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수행해야만 했다. 이러한 멀티 플레이는 잔디가 분유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로 계속 요구되었다. 조금만 배가 고프더라도 갑자기 울면서 소리를 질러서 표현하는 것이 아기인데 그러한 상황에서 잽싸게 분유를 타서 바로 먹여줘야 했다.   몇 초만 지연되더라도 아기의 울음소리는 어찌나 커지던지.


중간에 잔디가 살짝 졸린 기색을 보이자마자 온갖 방법을 다 써서 어떻게든 낮잠을 재워보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운 좋게 잠이 들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잠시 앉아서 책이라도 읽어보려고 하면 불과 몇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여지없이 깼다. 그리고 중간에 내가 화장실이라도 잠시 다녀오기 위해서는 모빌과 아기체육관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것이 필수였다. 아내가 떠나고 난 뒤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고 낮잠을 재우고 다시 기저귀를 가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오후 7시가 되었다. 아내가 오후 1시에 떠났으니 벌써 6시간이 경과된 것인데 도대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지나가 버렸다.


다행히 잔디가 수면교육에는 잘 적응하고 길들여져 있던 터라 오후 7시에는 바로 무사히 잠자리에 들었다. 잔디가 잠들었지만 육아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동안 쌓여 있던 젖병 설거지와 소독을 하고 건조기로 돌려놓았던 세탁물들을 꺼내어 개어 놓고 정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쉴 수 있었다. 미리 시켜놓은 치킨과 함께 맥주를 한 잔 하고 나니 나도 한 주간 쌓여왔던 피곤함이 갑자기 몰려오는 바람에 씻지도 못한 채 이내 잠이 들어 버렸다. 그 달콤함을 뒤로하고 자정에 울린 알람 진동에 의해 깨어난 나는 다시 분유를 타서 먹이고 트림을 시킨 후에야 남은 잠을 마저 청했다. 다음날 새벽 6시가 되자 잔디의 생리 현상과 배고픔은 알람 소리로 변해서 나를 깨웠고 다시 어제 오후의 일상이 똑같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아내가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디어 후 1시에 아내가 돌아오면서 나의 '다큐멘터리 1일 잔디 편' 촬영은 종료되었다.


언젠가부터 '독박 육아'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많이 쓰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기를 낳기 전에는 출산을 한 주변 친구나 선배가 따금 혼자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독박 육아'라는 단어를 쓰는 게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원래 독박이란 혼자서 모든 것을 뒤집어쓰거나 감당한다는 뜻으로 주로 고스톱에서 쓰는 용어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걸 육아에 붙여서 쓴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남의 자식을 돌보는 것도 아니고 다름 아닌 내 자식을 돌보는 것인데 아무리 혼자 한다고 하더라도 그걸 굳이 독박이라고까지 표현해 하는 것일까.


나의 부모님 세대에서는 아빠 외벌이가 대부분이었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엄마가 전업 주부로서 거의 모든 육아를 혼자서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시절에 엄마들은 그 무시무시한 독박 육아를 일 년 내내, 그것도 한 명도 아닌 두 명이나 세 명을 맡아가면서 묵묵히 해냈던 것이다. 지금의 관점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이 적었던 시대적인 배경이 가능하게 한 일이었고 그러한 엄마들의 희생으로 오늘의 우리들이 있었을 게다. 맞벌이를 하는 가정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지금의 시대에서는 과거처럼 무조건적인 독박 육아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빠들의 육아 참여는 갈수록 늘고 있으며 설사 외벌이라 하더라도 과거와 같이 육아는 엄마의 몫인 것이 당연한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물론 아직까지는 출산 후 육아휴직을 거의 필수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엄마가 아빠에 비해서 아무래도 독박 육아를 하는 시간이 많기 마련이다. 하지만 남자가 어느 정도 자유롭게 육아 휴직을 쓸 수 있는 회사는 신문 기사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인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아빠들도 답답 것은 매한가지다.


이번에 한 달도 아니고 일주일도 아닌 겨우 기껏 단 하루, 24시간의 혼자 육아를 해 보니 독박 육아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혼자 육아는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욱 힘들고 어렵게 느졌던 것 같. 아기는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혼자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독박이라는 단어의 의미처럼 정말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억울한 생각도 얼마든지 들 수도 있겠더라.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육아에 독박이라는 단어까지는 쓰이지 않았으면 한다. 어찌 보면 독박 육아라는 다소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표현 때문에 혼자 육아를 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이 사회 전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긍정적인 측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혼자 하는 육아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표현해서 누군가가 경각심을 가지게 하고 변하게 만든다 한들 그게 진정한 동기 부여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독박을 쓰는 사람도 힘들겠지만 결과적으로 독박을 씌우게 된 사람도 의도한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사랑스러운 내 아이를 돌보는 육아라는 고귀한 행위에 굳이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를 덧붙일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안 그래도 사회적으로 육아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이 만연해 있는 지금의 시대에 감정적인 판단이 들어가 있는 '독박 육아'보다는 차라리 그냥 객관적인 사실을 나타내는 '혼자 육아'로 바꿔 부른다면 어떨까. 누군가가 혼자서 뒤집어쓰거나 감당해야 하는 독박 육아도 최대한 없어져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객관적인 사실 그 자체로 혼자 육아를 하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었으면 한다. 육아는 엄마와 아빠 둘 중 누군가가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전제가 널리 통용될 수 있다면 우리 사회 속에서 육아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 ENFP인 저(남편)와 ESTJ인 아내가 남과 여, 각각의 시선에서 육아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아내의 시선 : 1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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