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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모닥불 Sep 26. 2023

8주 차 : 부모가 되어 만난 후배 부부, 첫 소풍

"형 내일 두 시 반에서 세시쯤 한강 갈 예정이에요"

- 2023년 6월 3일 -  


잔디가 태어나기 약 6개월 전인 2022년 10월에 아기를 출산한 친한 후배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주변에서 우리 아기의 출생일과 가장 가까운 시일 안에 먼저 태어난 남자 아기의 부모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출산과 육아와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주고받던 후배였다.


후배와의 인연은 약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서서 한 대학생 단체로부터 시작되었다. 나와 후배뿐만 아니라 아내도 함께 속해 있었고 모두 열정을 갖고 활동했던 단체였기 때문에 우리 셋뜻이 맞았고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이후 아내와 내가 결혼하고 후배도 결혼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자연스럽게 부부간의 만남도 잦게 되었다. 서로의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하고 산으로 강변으로 캠핑을 다니면서 부부가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누고 즐거운 추억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렇게 넷이서 만나는 날이 많았던 우리였는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작년과 올해를 기점으로 각각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큰 변화가 생겼고 마침내 아기 둘이 늘어난 채 여섯 명이 함께 만나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다음날, 오랜만 후배 부부 만남은 예전과는 준비 단계부터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우선 각아기들의 낮잠 시간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약속한 시간에 제대로 만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아기가 있는 선배나 친구들이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을 제대로 지켜서 오는 적이 드물었던 이유를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또한 잔디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기느라 정신없이 분주한 상태에서 계속 짐이 하나둘씩 아내의 양손에 추가되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도 힘들 정도였다. 물론 나도 잔디를 조심히 들고 지탱하면서 울지 않도록 달래느라 양손이 자유롭지 못한 건 매한가지였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는 가운데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 타고 잔디를 품에 꼭 안은 채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잔디의 첫 소풍이었다.      


먼저 도착한 후배 부부는 여의도 한강공원의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부지런하게도 텐트까지 쳐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6개월 먼저 태어난 아기의 부모답게 다소 여유가 있는 모습이었다. 드디어 후배 부부의 아기와 잔디와 만나 순간을 켜보면서 준비 단계부터 예전과 달랐던 후배 부부와의 만남은 그 차이가 더 확실하게 두드러지게 되었음을 느꼈다. 어느덧 우리 부부와 후배 부부는 자연스럽게 이 만남의 주연이 아니라 조연, 아니 촬영 스텝으로서 옆으로 살짝 빠져 있었다. 그리고 주연인 아기들의 모습에 온 신경과 시선을 집중하면서 든든하게 뒤를 잘 받쳐주고 있었다. 두 아기가 처음 마주치 손을 어루만지며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바로  순간을 바라보고 있는 촬영 스텝 두 부부의 표정은 흐뭇한 미소로 가득했다. 주연인 두 아기들도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덩달아 방긋 웃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서로 정겨운 눈빛을 교환했다.   


나와 아내가 태어나던 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연간 출생아 수는 넉넉하게 60만 명 이상을 유지했었다. 나와 아내는 물론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든 집안에서는 두 명 이상의 아기가 함께 지내고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풍경이었을 것이다. 또한 명절 때 친척들이 한 곳에 모두 모이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온통 아이들로 북적북적했었다. 그러나 연간 출생아 수는 1994년에 72만 명대까지 올라갔다가 IMF 외환위기 시기가 지나간 후 2002년 49만 명대, 2017년 35만 명대를 거쳐서 작년에는 25만 명 밑으로까지 가파르게 감소해 왔다. 그 결과 지금은 작년 기준 합계출산율 0.78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듯이 바야흐로 집안에서 두 명 이상은커녕 한 명의 아기도 보기 힘든 시대 되었다.


렇게 주변에서 아기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의 상황 속에서 만난 후배 부부의 아기는 나에게 단순한 친구의 아들 이상의 의미로 깊게 다가와서 마치 친조카 같은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특히나 우리와 가치관이 잘 맞는 후배 부부의 아기이기 때문에 앞으로 각자의 아기가 성장하는 과정을 서로 함께 지켜보면서 평생이 가도록 꾸준히 만남을 이어갈 것이다. 예전에는 아기의 형제자매나 사촌들이 하던 역할을 이제는 부모의 친한 친구의 아기가 어느 정도 대신 담당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유명한 아프리카 속담이 있듯이 육아는 사회 전체의 관심과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아기를 찾아보기 힘든 저출산 시대를 살아내는 가운데서 뜻이 맞는 친구의 아기들끼리라도 자주 가까이 어울릴 수 있다면 서로 보완과 상호작용을 경험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비록 서로 자주 만나기 위해서는 준비 단계도 많이 필요하고 아기를 키우는 집의 특성상 여러 가지 다양한 변수가 많이 발생하겠지만 그 또한 아기를 키워나가는 소중한 과정의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하게 되는 모든 경험들은 처음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동안 아기띠에 안긴 채로 아파트 단지 안을 산책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멀리 한강까지 소풍을 나 것은 잔디의 인생에서 나름 처음 맞이하는 꽤나 큰 경험임이 분명했다. 또한 불과 6개월 차이가 나는(물론 생후 2개월과 생후 8개월은 지금 당장은 엄청난 차이이긴 하지만) 비슷한 또래의 아기를 만나는 것도 처음이었고 무척이나 신기했을 이다. 비록 기억은 하지 못하겠지만 오늘 남겨진 사진 속의 첫 경험의 순간들은 나중에 잔디에게 영원히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어린 시절에 아버지께서 사진을 무척이나 많이 찍어 주셨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얼마든지 사진을 찍고 실시간으로 확인과 저장이 가능하지만 그 시절에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후 나중에 필름을 현상소에 맡겼다가 찾는 순간이 되어서야 잘 나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얼마나 번거롭고 귀찮았을까. 그 덕분에 나는 지금도 그 소중한 사진들을 꺼내어 볼 때마다 내가 처음 경험했던 것들을 어렴풋이 떠올려보곤 한다. 아버지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드는 동시에 잔디가 나중에 내가 찍어준 사진을 보고 떠올리게 될 자신의 첫 경험들과 거기서 느낄 감정들에 대해서 상상해 본다.



* ENFP인 저(남편)와 ESTJ인 아내가 남과 여, 각각의 시선에서 육아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아내의 시선 : 1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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