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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모닥불 Sep 15. 2023

7주 차 : 음주 재개와 일상 회복, 모유수유 종료

'막걸리 750ml 1병, 캔맥주 500ml 1캔, 그리고...'

- 2023년 5월 27일 -  


집 앞 슈퍼마켓에서 술을 사고 있는 내 모습이 왠지 모르게 어색해 보인다. 아내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작년 8월 초로부터 5월의 마지막 무렵인 어제까지 무려 10개월 동안, 그리고 나는 아내에 비하면 약과이지만 잔디가 태어나기 2주 전부터 태어난 후 6주가 지난 어제까지 약 2개월 동안 술을 아예 입에 대지 않았었다. 그랬던 아내와 내가 바로 오늘 아주 오랜만에 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기로 한 것이다.


아내와 나는 각각 성인이 된 후부터 꾸준히 술을 즐겼었다. 그리고 서로 마음을 함께 하게 된 연애 시절의 2년과 결혼 후 8년을 합쳐서 약 10년 내내 항상 술을 손에서 놓지 않았었다. 각자 회사 생활에서 꾸준히 회식과 각종 술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이었고 동시에 집에서도 퇴근 후와 주말에 식사를 할 때 항상 술은 약방에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함께 했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언제 어디에서든지 적당히 즐기는 술은 여러 모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좋은 활력소가 되어 주는 것 같다. 빡빡한 업무의 연속인 회사 생활에서 가끔 동료들과 기울이는 술 한 잔은 자연스러운 소통과 돈독한 신뢰감을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가정에서도 아내와 내가 함께 기쁜 일이 있을 때나 혹은 각자 서운한 일이 있을 때 술 한 잔 하면서 하는 대화는 우리의 결혼 생활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더욱 단단하게 채워주기도 했다.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과 육아를 한다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새로운 기쁨과 설렘을 안겨주지만 그와 동시에 임신을 하는 당사자인 아내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많아지게 된다. 금주는 기본에 먹는 것도 가려 먹어야 하는 것이 많아지고 아플 때 약물 복용도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장거리 여행도 가급적 피해야 한다. 또편도 아내가 임신하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출산 후 본격적으로 육아에 동참하면서 외부 활동이 줄어들게 되기 마련이다. 작년 8월 초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확인한 그 순간부터 아내는 자동으로 금주에 돌입하게 되었고 나도 술을 못 마시는 아내를 옆에 두고 혼자만 마시기에는 미안해서 자연스럽게 집에서 술을 마시는 일은 줄어들게 되었다. 나는 밖에서 따로 다른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그전보다는 횟수와 시간차츰 줄어들었고 아내의 출산예정일이 가까워지고 있던 시점에서는 나도 금주를 시작했다.


아내의 금주 시작과 함께 우리 집에서 사뭇 달라진 풍경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냉장고에서 맥주캔과 막리 병이 사라지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무알콜 맥주와 포도 주스가 등장한 것이었다. 그전에는 맛이 없는 무알콜 맥주를 도대체 왜 마시는 거냐며 항상 의문을 갖고 있던 아내였지만 이제는 그나마 맥주를 먹는 기분을 약간이라도 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었다. 카타르 월드컵 축구 대한민국 경기를 보면서 치킨을 시켜놓고 콜라만 마시는 것보다는 무알콜 맥주라도 마시는 게 그나마 나았던 것이다. 그와 더불어 'Non-Alcoholic', 'Alcohol-Free' 등의 문구가 화려한 글씨체로 표기된 무알콜 맥주라고 해도 알코올이 일정량 포함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중 임산부가 마셔도 상관없는 알코올 함량 0.00%의 진정한 무알콜 맥주는 국내에 딱 2개가 있다는 사실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포도 주스는 어떤 용도였을까? 가끔 집에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방문할 때 사온 와인을 다 같이 마실 때가 있었는데 이때 아내만 소외될 수는 없었다.(술자리에서 혼자만 술을 안 마시고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와인 잔에 포도 주스를 따라서 같이 잔을 부딪히면서 청량하고 맑은 소리를 듣는 순간이 아내에게는 와인을 마시는 것과 다름없었으리라.


지루하고 기나긴 약 10개월간의 임신 기간이 지난 후 출산을 하고 나서도 아기의 엄마는 계속 술을 마실 수 없다. 바로 모유수유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모유수유가 아기에게 좋다는 이야기는 주변에서 익히 들어왔었지만 실제로 아내가 출산하기 전까지는 나도 그에 대한 지식은 전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름대로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미리 육아에 대한 공부를 틈틈이 하긴 했지만 모유수유까지 자세히 알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모유수유를 하는 주체는 엄마이지만 그 옆에서 같이 있어주고 도와줘야 하는 아빠도 모유수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갖추는 것이 좋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모유수유는 장점이 많은 만큼 따로 신경을 쓰고 주의해야 하는 들도 매우 많았다. 또한 아기의 상황과 엄마의 컨디션 등에 따라 수유량이 충분치 않을 수도 있고 지속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아서 결국 원한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젠가 해야 하거나 알아봐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막상 실제로 눈앞에 닥치기 전에는 미리 준비하거나 공부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자책할 틈도 없이 잔디가 태어나자마자 당장 모유수유는 시작되었고 그 진행은 매우 빠르고 신속하게 전개되었다.


우선 잔디가 출생 후 바로 신생아 중환자실로 들어가는 바람에 모유수유는커녕 안아보지도 못한 채 서로 떨어져 있게 되었다. 모유수유는 가급적 아기가 태어난 직후부터 바로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하는데 일단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모유수유는 엄마가 직접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방법인 '직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축기로 젖을 짜내어 젖병에 담아서 먹이는 '유축'도 있었다. 아내가 출산 후 4박 5일간의 입원을 마치고 퇴원한 후 산후조리원에 가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유축이었다. 산후조리원의 산모실마다 비치되어 있는 유축기의 사용법에 대해 교육을 받은 후 바로 아내의 유축이 시작되었다. 잔디가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당시 상황에서 우리 부부가 잔디를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는 아내가 유축을 한 모유를 내가 병원으로 배달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아내의 모유 수유는 '직수'가 아닌 '유축'으로 시작되었고 내가 배달 모유는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님들의 손길을 통해서 잔디에게 전달되었다. 간호사님께서 보내주신 영상을 통해서 잔디가 배달된 모유를 힘차게 먹는 모습을 보고 어찌나 뿌듯했었던지.


6일간의 모유 배달 기간을 거쳐서 퇴원하고 마침내 우리 부부 곁으로 온 잔디는 그제야 젖병을 통해서가 아니라 엄마의 품 안에서 직접 모유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렵게 시작된 모유수유를 지속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선 모유량이 생각만큼 충분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출산 후 바로 직접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직수를 하는 것이 모유량 증가에 도움이 되는데 아내는 초반에 이게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10일이 지나고 나서야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 영향으로 모유량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초반부터 충분하지 않았던 모유량 때문에 모유와 분유를 병행하여 먹이기 시작했는데 그마저도 갈수록 모유량이 줄어듦에 따라 자연스럽게 분유 수유의 비중이 늘어만 갔다. 또한 젖몸살에 따른 통증도 지속되면서 아내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이 힘들어하던 터라 잔디가 태어난 지 50일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결국 모유수유 종료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아기에게 좋다는 모유수유가 종료됨에 따라 잔디에게 미안한 감정과 함께 뭔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는 법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해보았다. 육아를 장기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속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기를 돌보는 부모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그렇다면 육아를 하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힘들거나 괴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부모도 가능한 한 이전과 다름없는 온전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면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잔디가 태어나기 직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머니가 첫째인 나를 낳으셨을 때 젖이 잘 나오지 않아서 나도 모유를 전혀 먹지 않은 채 자랐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크게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잘 성장해 오지 않았는가. 모유수유냐 분유수유냐를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것보다는 각자의 상황에 알맞은 유연한 대응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경우에는 결혼 후 8년 만에, 비교적 젊은 시절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보낸 후에 육아를 시작했기 때문에 육아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이 그나마 덜 한 것 같다. 그러나 나보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되는 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아직 하고 싶은 것이 한창 많을 때 육아를 시작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하지 못하게 되는 것들에 대한 상실감이 더 크게 다가올 것 같다. 지금과 같은 저출산 시대가 오게 된 배경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아기를 낳게 되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고 육아의 과정이 너무 힘들고 괴로울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도 어느 정도 한몫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인식이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개선되기 위해서 육아와 일상생활의 간극을 최대한 줄이면서 현명하게 대처하는 성공 사례들이 주변에서 많이 나오고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물론 나도 그중의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오늘 밤, 잔디가 잠이 들고 난 후 정말 오랜만에 우리 둘만의 식탁에 술이 등장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막 배달된 반반치킨과 함께 각각 맥주와 막걸리가 가득 따라진 유리잔이 "짠" 하는 함성과 함께 서로 부딪히고 술이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우리 둘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밤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앞으로 우리 부부 앞에 남은 육아의 길은 아직 멀고도 험난하겠지만 이렇게 일상 속에서 함께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아내가 옆에 있으니 든든하고 힘이 난다.



* ENFP인 저(남편)와 ESTJ인 아내가 남과 여, 각각의 시선에서 육아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아내의 시선 : 1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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