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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영 Jun 03. 2022

 17. 바보


 “혹시 L선생님 아니세요?”

 “그렇습니다만,누구신지.”

 “맞군요. Y중학교에서 선생님한테 배운 K입니다.”

 “아,그래요. 몰라봐서 미안해요.”

 시내버스에서 옆자리의 청년이 인사를 해왔다. 십오 년은 족히 지난 일이니 당연히 기억할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선생님, 저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 뭐가?”

 “점심시간이 지난 5교시 수업이 시작되면 으레 껏 선생님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먼저 해 주셨지요.”

 “으응,그랬지. 졸음을 쫓으려고.”

 “그중에서 어느 날에는 칠판에 찍,빡,옥이라고 써놓고 맞히면 10점을 주겠다고 하셨어요. 저는 10점에 혹해서 머리를 쥐어짰는데도 도무지 모르겠는 거예요. 저뿐만이 아니라 모두들 눈을 반짝이며 10점을 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지요.”

 “호호호,그걸 기억하고 있었어?”

 “답이 너무도 황당하니 잊을 수가 있어요? 세상에 찍순이는 찌그러지고, 빡순이는 빠그라지고,옥순이는 오그라졌다는 것이 답이라니. 무슨 역사적인 사건인 줄 알고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으니까요.  또  바보  이야기를  하실  때는 정말 선생님이 바보 같이  말씀하셨잖아요.”

 둘은 한 바탕 웃었다.

 나는 속으로 ‘그런 것만 기억하면 되나? 에이.’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바보 이야기를 시리즈로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바보 삼 형제

 첫째 형:다이도 박다.(달도 밝다)

 둘째 형:다이도 박다가 뭐야,다이도 박다지.

 셋째:두따다 바이보.(둘 다 다 바보)

   

 도도하고  차갑게  빛나던  달빛도  이들에게는  따스하고  포근하게 비춰주었을 것 같다.


  *바보 스승과 열두 명의 바보 제자들

  인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다.

  어느 날 스승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먼 길을 떠났다. 도중에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다 건너고 나서 스승이 제자들에게 강에 빠지지 않고 다 왔는가 세어 보라고 하였다.

 제자는 아무리 세어 보아도 열한 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스승은 한 명이 강물에 빠져 죽은 게 틀림없다고 울자 제자들도 다 따라 울고 있었다. 이때 이곳을 지나던 한 사기꾼이 ‘아하, 네놈들이 모두 바보로구나.’하고 다가갔다.

 “나에게 너희들이 지고 있는 물건들을 다 준다면 내가 그 한 명을 찾아 주겠다.”

 “아이고,내 제자를 찾아만 주신다면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가진 것 다 드리리다.”

 “좋소. 그럼 여기 있는 이 소똥에다 너희들의 얼굴을 모두 박았다가 일어나거라.”

 제자들은 시키는 대로 했다. 

 “자,  이제는 이 소똥에 박힌 얼굴이 몇 개인지 세어보아라.”

 제자들은 열심히 세어보았다.

 “스승님,열두명입니다. 드디어 이분이 찾아 주셨어요.”

 스승과 제자들은 사기꾼에게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진 물건을 모두 주었다. 그리고는 한 명을 찾은 것을 기뻐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사기꾼은 횡재를 했다고 미소 지으며 ‘에그 바보 같은 놈들 세어보고 있는 자신을 빼면 백날을 세어 봐도 하나가 모자라지. 쯧쯧 한심 하군. 그런 것도 가르쳐  줄줄  모르는  바보도 스승이라고 쫓아다니니.’


 진정 누가 한심한 존재인가?

 스승과 제자들은   행복한 마음만 가득했으리라.



 *바보 아들

 헝가리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다.

 어느 마을에 바보 아들이지만 매우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아들에게 장에 가서 바늘을 사 오라고 했다.  아들은  바늘을 사 가지고 오다가 마른풀을 싣고 가는 수레를 보자 거기에 꽂았다가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에 어머니는 “바늘을 모자에 꽂고 와야지.”하고 가르쳐 주었다. 아들은 이 말을 잘 기억해 두었다.

 얼마 후에 이번에는 쟁기의 날을 사 오라고 했더니 모자에 꽂고 왔다. 기가 막힌 어머니는 “이런 것은 광주리에 담아가지고 와야지.”하고 나무랐다.

 며칠 후에는 말을 한 마리 사 오라고 하였더니 아들은 큰 광주리에 넣어 가지고 와서 말은 질식해 있었다. 어머니는 “앞으로 이런 것들은 끌고 와야 해.”하고 가르쳤다.

 이번에는 베이컨을 사 오라 했더니 밧줄에 묶어 끌고 온 것이다.

 “너는 너무 바보구나. 집이나 보아라. 엄마가 교회 갔다 올 동안에 양배추에 베이컨이나 채워두어라.”

 아들은 마당의 양배추에 베이컨을 채우니 온 동네의 개들이 다 와서 먹어버렸다.

속이 상한 어머니가 “너도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가서 쓸모 있는 일을 배워보아라.”하여 아들은 집을 떠났다.

 그러나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느냐고 어머니에게 물으려 다시 돌아오자 “하느님이 만드신 바보 중에 너 같은 바보는 처음이다.”하고 소리를 질렀다.

 다시 길을 떠난 아들은 강가에서 낚시군을 만나자 “하느님이 만드신 바보 중에 너 같은 바보는 처음이다.”라며 인사하였다.

 낚시꾼은 화가 나 아들을 패주고는 “하느님, 이분에게 행운을 주십시오.”라고 해야 되는 것을 일러 주었다.

 아들은 이번에는 묘지 앞을 지나다 보니 농부들이 시신을 매장하고 있었다. “하느님 이분에게 행운을 주십시오.”하고 인사를 하였다.

 화가 난 그들은 두들겨 패면서 “바보야, ‘하느님 이 사람의 가여운 영혼을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해야지.”라고 일러 주었다.

 다시 길을 가다가 말가죽을 벗기려 끌고 가는 이를 만났다. 이것을 보자 “하느님 이 사람의 가여운 영혼을 거두어 주십시오.”했다. 그러니 또 때리며 “‘그런 시체를 끌고 가다니 안됐습니다,’라고 해야지.”하였다.

 번번이 매를 맞아 멍 투성이로 어느 교회 앞을 지나려 하자 결혼식이 열려 팔짱을 낀 신랑 신부가 교회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시체를 끌고 가다니 안 됐습니다.”라고 하자 그들은 몹시 불쾌해하며 “‘이런 것을 보니 저의 마음은 기쁨에 넘치고 있습니다.’라도 해야지.”라고 가르쳐 주었다.

 또 길을 걷고 있는데 단두대에 한 사람이 끌려 나와 있는 것을 보고는  “이런 것을 보니 저의 마음은 기쁨에 넘치고 있습니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래? 너도 기쁨에 넘치도록 해 주마.”하고는 때려 결국 바보 아들은 죽고 말았다.


 웃긴다며 듣던 아이들은 마지막에 ‘죽고 말았다’라는 말에 다 같이 슬퍼했다. 결국은 바보라서 죽었으니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순간 아이들은 자기를 바보를 낳아 주지 않은 부모에게 감사했을 것이다.

 바보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잘 못도 아니고 똑같은 인간임에도 불행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불행해 보일지 몰라도 그들의 내면에는 불행이라는 것이 없을지 모른다. 

 바보에 관한 이야기를 정말 웃자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자책이 들었다.

 그들의 영혼은 평범한 이들이 가지지 못하는 영롱한 아침이슬 같은 순수함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악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세상의 누가 누구를 감히 바보라고 우롱할 수 있는가?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정상인이라 해서 정신세계가 바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자고 나면 일어나는 온갖 비리와 악행은 누가 저지르는가? 차라리 그들이 바보 대열에 있었다면 그렇게 세상을 어지럽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나는 바보짓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를 짚어 봐야 할 것이다.


 온갖 이야기를 때로는 꾸며서 해 주었다. 웃음으로 머리를 정화시키고 수업에 열중하라고 한 것인데 정작 기억에 남는 것은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 인가보다. 꾸민 이야기도 참말인 것처럼 하면 선생이 하는 말이니 참말로 새겨듣곤 하던 깨끗한 영혼의 아이들은 지금도 그 아름다운 순박함으로 때 묻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렇다면 참으로 좋을 텐데~.

아네모네 (이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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