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걸까?
매일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을까.
내 미래를 위해서?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돈을 잘 벌기 위해?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 이 말이 다 틀린 말은 아니다. 누구는 미래를 위해서 살아갈 수도,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갈 수도, 안정적인 삶을 위해 살아갈 수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나는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미술학원에 8시간씩 앉아 그림을 그리고 과외 수업도 듣는다. 하지만 남들이 하는 거에 비하면 나는 하는 것도 아니다. 남들이 5시간, 6시간씩 수업을 듣고 집에 와서 공부를 하면 나는 1시간 30분짜리 과외를 한 후 힘들다는 소리를 하고 뒹굴거리면서 놀고 있다. 나는 이 부적절한 습관을 고쳐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항상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맨날 고쳐야지 고쳐야지 생각만 하지 행동으로는 전혀 하지 않는다. 이러는 걸 보면 나는 중학교 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중학교 때 내 삶은 먹고 자고 놀고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1학기가 지나고 어느새 2학기가 무섭게 다가오고 있는 무렵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때 삶과 똑같다. 중간고사도 기말고사도 망쳤는데 아무 생각, 걱정 없이 펑펑 놀기만 하고 … 바보 같다.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맞는 말인 것 같다. 내 습관 하나 고치는 것도 못하면서 다른 걸 바로잡을 수 있을까? 이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죽도록 노력하면 바뀔 수 있다고 본다. 그 과정이 매우 힘들겠지만. 솔직히 지금 블로그 쓸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우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나는 매일 힘들고, 지친다,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서 현실을 회피하고 마주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상황을 회피하고만 있을 수 없다.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이 깨달아야 한다. 공부를 못한다고, 나는 못하겠지 라는 의문을 가지지 말고 도전해보자. 그 누구도 도전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법이니 말이다.
|작성자 몽그을
손녀가 할머니 혼자만 보라고 글과 그림을 보내왔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있다. 갓난아이도 똥 싸기가 어려우면 얼굴이 빨개지면서 힘을 준다. 그것도 나름대로의 고통이기에 울기도 하는 게 아닌가.
할머니로서는 이러한 손녀의 고민도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