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깡지 Mar 16. 2022

아이가 고3이 되어서야 해준 엄마 노릇

직장맘의 육아일기

내 성향은 대략 20대를 기준으로 상당히 다르다. 보이는 성향이 극과 극으로 바뀌었다.

20대 이전은 내성적이고 수줍음 많은 '천상 소녀'였고, 그 이후는 어떤 사람과도 잘 어울리고, 일을 해도 적극적으로 하며 발표나 회의를 주관하는 자리에도 떠는 법이 없는 '여장부'였다. 외관상 변치 않는 점은 항상 웃는다는 것밝다는 것으로 '긍정적', '실천력' 이런 단어는 항상 따라다닌다.



그런데 그 보다 변하지 않은 점은 나의 내면이다. 내 내면이 바뀌었는지 바뀌지 않았는지 알지 못했다. 20대를 지나 30대, 40대. 그리고 50이 되면서 '나란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구나'를 깨닫게 된다.

이런 깨달음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 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면서 저 사람의 말과 행동의 이유를 저절로 짚어보며 그들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고, 나와의 차이도 발견해 본다.

혹여 누군가의 어리숙한 면이나 단점이 보이더라도 저런 시각으로 보면 '그 사람을 이해'를 하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성인군자는 아니다. 단지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고, 나와 맞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 정도로만 생각할 뿐이고 그런 사람들 조차 '장점'이 먼저 보이니, 항상 내 눈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아니라 '단점은 있지만 좋은 놈, 착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나쁜 놈, 자신만의 세계가 분명한 이상한 놈'으로 바꿔 보일 뿐이다.



이런 '사람들에 대한 이해' 때문인지 사람을 대할 때 나의 내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여 줄 때가 많다. 의도적으로 그런 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면 '재미없는 사람'이 될 판국이다. 내가 좋아하는 깊이 있는 이야기는 대다수에게는 지겨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쓰나 보다. 책 속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많기도 하고, 책을 통해 나와의 대화를 하게 된다.

블로그에 그런 글들 꾸준히 읽어 주시고 댓글로 잘 읽고 있다고 적어주시는 분들 보면 나와 같은 부류들이구나 하며 '조용한 소통'에 은근히 반가워진다.



며칠 전 명절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다가 이런 말을 했다.

"제주에서 재택 하는 요일은, 하루 종일 보는 사람이 션 하나요. 집에 션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와 오늘 사람 처음 봤다~' 이러면서 두 팔 번쩍 들고 달려가서 안아요"라고 하니 다들 빵 하고 터졌다.



솔직한 내 마음은 이런 것이었다. 션은 태어나면서부터 바쁜 엄마를 둔 탓에 엄마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컸다. 오죽하면, 배밀이할 때,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늦게 자려고 했을까. 엄마가 10시, 11시 넘어 집에 오니 최대한 늦게 자야 엄마 얼굴 보기 때문이다. 자라면서도 집에 오면 이모님이 계셨고, 여느 아이들처럼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 또는 좋은 일, 나쁜 일을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션도 몰랐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다른 집과 차이를 느끼면서  '나도 집에 올 때 엄마가 마중 오면 좋겠다'라고 말한 적이 많았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불안요소로도 작용했다. 급기야 중학교부터 제주도로 갔으니 나와의 물리적 시간은 더더욱 없다 보니, 작년 한 해가 션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을 오래 보낸 것이 '처음'이었다.



평생 못해줬던 '밥'을 해 주고 싶었고, 아기 때부터 그리 바랬던 하굣길 '엄마 마중'을 해주고 싶었다.

션이 고3이니 어디 가지도 자유롭지 못한 데다, 제주 학교 근처는 학교와 아파트 외 아무것도 없다. 운전을 잘 못하니 외식도 힘들다. 그래서 '션만의 맛있고 예쁜 1인 밥상'을 차리고 싶었다. 성향상 관심이 꽂히면 제대로 하는 성격이긴 하나, 내 평생 요리라고는 안 하고 살 줄 알았는데 하루하루 만들다 보니 션이 좋아하고 나도 재미를 붙였다.  하루 종일 힘들었을 텐데, 예쁜 밥상 받아보는 그 시간이라도 행복했으면, 그리고 위로받았으면 했다.

또 하나는 그리 바랬던 '엄마 마중'을 해주고 싶었다. 션이 학교 마치고 오면 '응, 왔니'가 아니라 두 팔 번쩍 들고 현관으로 달려간다. 달려가서 꼬옥 안아주고 밝게 웃어준다. 겨울에는 귀가 얼어와서 손으로 감싸주기도 하고.

대학에 공부하러 떠났을 때, '엄마'를 떠 올리게 되면, 바빠서 보기 힘들었던 엄마에서 항상 웃고 두 팔 들고 '울 아들 왔어~'이러면서 달려오고 정성 가득한 밥상을 기억해 줬으면 했다.



이런 마음은 친지들에게, 동료들에게, 친구들에게, 션의 친구 엄마들에게 굳이 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잘난 척'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저 나만의 생각, 나만의 행복일 뿐이고, 이렇게 가끔 글로 남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물욕도 그다지 많지 않아서, 돈이 생겨도 그리 쓸 일이 없다. 맞벌이의 경우 각자 관리하는 집이 있는가 하면 함께 하는 집이 있는데 우리 집의 경우 션파가 한다. 션파가 꼼꼼하기도 하고 합리적 소비를 해서 션파가 하기도 했고 지금까지 불만이 없다. 내가 쓸 용돈만큼 떼고 다 션파에게 준다 하니, 동료들이 뭐라고 한다. 내가 관리한다고 한들, 그 돈 어디다 쓰라고 저러나 싶고, 션파에게 준다고 해도 필요한 거 있음 불편한 것 없이 다 사주는데 왜 따로 관리하는지가 오히려 이해가 안 갔다.

이런 성향이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션파 생일날 제법 좋은(?) 선물을 하기 시작했다. 용돈 중 일부를 모아두긴 했으나 딱히 내가 갖고 싶은 게 없다 보니 션파 생일날 선물로 준다. 그렇다고 이런 걸 선물 줬네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지 않았다. 자랑질 같기도 해서..



또 이번 명절, 어쩌다 이쪽 이야기로 흘러가서 이야기가 나왔는데, 세상에. 그리 준 선물 중 꽤나 큰 금액이 있었는데 션파가 받은 적 없다고 잡아떼지 않는가. (나중에 보니 잊었던 거였다.) 뭐 명절날 씨름판과 같은 후꾼 달아오르는 재미난 열기로 번져 통장 열어보자 이리되었다. 다행히 내 통장에 '션파생일선물'이라는 메모까지 달린 계좌이체 기록이 있었다. 이때 용돈에서 따로 떼어내 적금을 들었는데 만기가 되어 딱히 쓸데가 없어 생일 선물로 줬었다. 이리하여 나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으나 이때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여러 가지 면에서 나에 대해 다시 본 듯하다. 이런저런 이야기 하지 않았으니 갈수록 의외의 면을 발견할 수도 있겠다 싶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하다. 나는 선물을 받을 때 보다 선물을 줄 때가 더 행복하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특히 션파에게는 더 그렇다. 내가 갖고 싶거나 받고 싶은 게 없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션파가 오래 간직할 그 무언가를 주는 것이 좋다. 내가 유일하게 사는 건 옷이긴 하지만, 여러 벌 옷을 '다양하게 조합해서 코디'하는 즐거움이 큰 거지, 명품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옷이나 가방이 명품인 것보다 사람이 명품인 게 좋다' 생각이 강해서 일 수도 있겠다. 속 깊은 사람 만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으니까.

션파는 좋은 물건을 고심해서 신중하게 사는 편이고, 그렇게 샀을 때 상당히 오래 간직한다. 그래서 션파에게는 사주고 싶은 게 많다.



이런 생각 역시도 남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부럽다'라는 생각을 줄 것 같아서.

가끔 '그 집은 누가 관리해요?'라고 물으면 '제가 그런 쪽 무식하잖아요. 남편이 꼼꼼해서 다 줘버려요~'라고 말한다.



다시 나의 내면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션파와 션이 내 가족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대화가 잘 통해서이다. 나와 생각이나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나 들어 보면 상당히 타당하다. 그래서 주거니 받거니가 되면서 재미가 있다. 물론 내가 말이 많아지면 도망가버리지만..



이제 스물 된 아들과 정서적 교류, 대화도 많고 서로 '찐친'으로 살고 있는 엄마는 흔하지 않을 듯싶다.

게다가 여러 방면의 책을 꾸준히 읽은 덕인지, 원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덕분인지 몰라도 새로운 지식을 계속 장착해 나가는 덕분에 '아직은' 션과 그런 대화도 되고 있다. 괴델, 조르바를 이야기하고 철학 과학 예술문학을 논하는 것을 서로 재미있어한다. 션은 몇 지식이야 나보다 훨씬 깊지만 나머지는 이제 시작이다.  다시금 '책'의 위력을 느끼고 있다. 그렇지 않았으면 어떻게 아들 녀석의 커가는 사고와 지식을 쫓아가고 때로는 이끌어 주겠는가.

어떤 이에게는 '책'이 공부가 될 수 있겠으나, 나는 '밥'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 생활할 영양소를 음식으로 섭취하듯, 오늘 하루 뇌가 필요로 하는 지식을 '책'으로 먹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 먹으면 행복해지듯, 맛있는 책 만나면 역시나 행복해진다.



션은 지나가는 말처럼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이 '엄마'라고 했다. 이번 미국 대학 에세이에 나도 소재로 썼다고 한다. 아마 존경하는 사람이 여럿 있을 텐데 그중 엄마가 있나 보다. 성실히 사는 삶도 아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구나 싶어서 괜스레 '이번 생은 성공했어'라는 생각도 든다.

션은 나중에 내가 늙으면 안 죽게 할 꺼라고도 했다. 찐친이기 때문에 자기 죽는 날까지 자기와 대화 나누자며. 나의 대답은 '이노마가 날 미라 만들려고 그러나, 곱게 죽게 냅둬라'라고 웃으며 말해줬다.

내가 어릴 때 노인들은 존경의 대상이자, 지혜를 상징했다. 아마도 인터넷으로 해답을 찾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들은 뒤안길로 물러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꾸준히 책을 읽고, 생각하고, 경험을 통해 과거의 선입견들을 깨면서 새로운 통찰을 얻어 나간다면, 션에게는 내가 '지혜로운 노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동안 엄마로서는 한없이 부족했던 엄마 1기였다.

작년에서야 겨우 밥 한끼, 집에 오면 안아주기로 엄마 1기를 벼락치기로 마무리했다.

이제부터의 '엄마 노릇'은 '인생선배, 사회생활 선배'로써의 엄마 2기가 되겠다.

션이 대학생활, 사회생활 잘해 나가겠으나 가끔 대화 나눌 상대 필요할 때 꽤나 괜찮은 말동무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오랜 세월 사회생활하고, 책 읽은 덕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