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아이를 둔 아빠들의 대나무밭
직장맘의 육아일기
션이 어릴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션의 발달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궁금한 게 생기면 질문도 했고.
주로 나보다 먼저 아이를 낳아 키우는 분들이었는데 처음에는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다가 나중에는 내가 덜 여쭈어 보게 되었다. 육아관/교육관이 점차 생긴 이유도 있었으나, 아이들 마다 너무 달라서 내가 궁금한 점에 대해 경험을 해 보지 않기는 그분들도 매 한 가지여서 이유가 더 컸다.
그러다 또 몇 해 지나고 보니, 아이들이 모두 다른 것은 맞으나 그렇다고 서로 다른 별나라 사람들은 아니었다. 아이를 키우는 경험은 다 거기서 거기 같기도 했다. 이때부터는 대화에서 자연스레 아이들 이야기 나오면 귀담아 들었다. 다시 질문이 늘기도 했다. 이때 질문은 내 아이가 아닌 말해준 분의 아이에 대한 질문이었다.
언젠가 나도 겪을 일이기도 했고, 부모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아이 대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나라면"이라며 간접 체험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션이 초등학생이 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션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잘 못 이야기했다가 '자식 자랑'이 되어 버릴 수 있어서다.
특히 션 친구 엄마들에게는 더 조심해야 했다. 션이 그간 해온 성취 때문에, "아유, 아이가 잘하잖아요. 엄마가 욕심도 많아" 이런 소리 듣기 십상이다. 더욱이 "OO대회에서 상 탔어요. OO 합격했어요."라는 말은 아예 하지 않았다.
분명히 내 입장에서는 '저 노무 자슥!' 하며 머리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일이거나 고민스러운 일인데, 같이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배부른 엄마'로 보일 때가 있다. 조언까지는 아니어도 위로받고 싶어서 말한 적도 있지만,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욕심부리지 말라고 들려서 괜히 기분만 상한다.
공부는 애가 하는 거고, 인성, 예의, 생활습관 등은 부모가 가르쳐야 하는 건데... 이런 걸 안 잡아 주면 '공부만 잘하는 덜 자란 어른'으로 클 것이 아닌가.
대게 나의 고민이라는 게 생활습관이나 성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 했기 때문이므로 대부분 엄마들이 공감할 이야기일 텐데도 이분들의 고민은 학업에 관련된 게 더 많다 보니 점점 입을 닫게 되었다.
그러다가 션이 자라면서 '누군가'에게는 좋은 말벗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잘하는 아이'의 부모, 그중에서도 아빠다.
사회에서 아빠들은 아이가 잘하는 건 잘한다, 못하는 건 걱정이다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으나 그랬다가는 왠지 눈총을 살 것 같으니 말을 아끼게 된다.
프로젝트할 때 이런 분 만나면 내가 먼저 말을 꺼내 주곤 한다. 아이에 대한 칭찬도 해 주고 부모의 고충도 헤아려 주고. 칭찬에 익숙지 않은 아빠들이라 쑥스러워하면서도 '흐뭇'해 하는 눈치다.
남자들은 자식 자랑은 거의 하지 않는다. 좋은 소식이 있어도 누가 옆에서 물어보지 않는 이상, 먼저 말하는 법은 거의 없다. 와이프 칭찬도 쑥스러워 못하는 게 대한민국 남편들인데 뭐.
내 반응이 사심 없이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고충에 대해 진지하게 들어주다 보니, 나에게는 아이들 이야기해 주시는 분들(아빠들)이 제법 많다. 션이 잘하는다는 (괴) 소문도 좀 나서 그런지, 아이들 자랑도 마음 편히 하신다.
특목고 갔네, 서울대를 갔네, 의대를 갔네 등의 이야기를 나에게는 편하게 하시고, 나는 격하게 함께 기뻐해 주니..
이럴 때 내가 질투, 시기, 부러움 이런 게 없는 성격이라는 게 너무 좋다.
이번 프로젝트에도 엄친딸을 둔 딸바보 아빠가 가끔 아이 이야기를 해 주시는데 기쁘게 듣고 있다.
(좋은 의미로 쓴 엄친딸, 딸바보라고 표현했다. 딸 이야기할 때 표정이 정말 행복 그 자체라 나도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주신다.)
키도 크네, 예쁘게 생겼네, 노래도 잘하네 등 말씀해 주시는 데, 자랑으로 보이지 않고 아이가 예뻐 어쩔 줄 몰라하는 아빠의 모습으로만 보였다. 공부도 잘해서 좋은 특목고 갔는데, 그곳에 대해 내가 아는 척하고 호응해 드렸더니 좋으셨는지 아이가 거기서 무리하지 않을지 걱정도 많다고 하신다.
아무 조언 없이 이야기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 보이셔서 언제건 아이 이야기 편히 말씀하시라 했다.
누구나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은 주변에 몇 명 있을 수 있으나, 자랑을 해도 괜찮은 사람은 의외로 별로 없다.
친한 친구에게 고민은 말할 수 있으나 함께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라면 자식 자랑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공부 잘하는 아이를 둔 아빠들의 '대나무 밭'이 되어 주는 것도 좋은 일 같다.
(잘하는 아이를 둔 엄마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