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깡지 Mar 17. 2022

남편 내 편 만들기

직장맘의 육아일기


애가 고3이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드나 보다.

학부형으로 남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서 여러 모로 정리하고 싶은 글들이 많다.





남의 편 -> 남편 = 내편


집집마다 사정은 잘 모르겠으나 부부 사이게 가장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 아이들 교육관이 아닐까 한다. 대게 아이들 교육은 엄마들이 책임지는데 간혹 아빠들 중 교육열 높으신 분도 있다. 이런 분들은 아이들 교육에 신경 쓰다가 아예 업종 전환까지 하시는 경우도 있다.


션이 초1 때 션과 같은 반 아이 엄마가 나를 따로 만나자고 하며 남편분을 데리고 나온 적이 있다. 자기보다 남편이 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며 데리고 온 것이다. 그때 이분들이 듣고 싶었던 것이 영어학습법이었고 초2인가 초3에 또 나를 만나러 오셨는데 이번엔 수학이었다. 영어는 많은 분들이 비법을 물어보길래 '영어 동화책 1,000권 읽기'에 대해 알려드렸었다. 그 당시 이 방법 실천한 분은 단 한분도 없었다. 그런데 이 아빠는 1년 동안 실천을 하신 거다. 우리 집에 있는 영어동화책 모조리 다 사가셔서 퇴근하고 오시면 아이와 함께 책을 읽게 해 주셨고 결국 아이는 재미있게 1,000권을 읽었다.  수학도 몇 가지 알려드렸더니 꾸준히 하신다. 이렇게 매사에 차근차근 아이와 함께 공부를 하신 분인데 결국 서과영 입학했다. 이런 경우는 정말 희귀한 경우다.


그래도 요즘은 아이들 교육 관심 많으신 아빠들이 늘고 있으나, 아직도 그렇지 않은 분이 더 많다.


오늘 이야기는 맞벌이보다, 남편만 일하는 외벌이에 해당되는 이야기 일 수 있겠다. 남자들 마음을 조금 헤아려 적은 부분이 있어서.


우리 집의 경우, 맞벌이를 한 데다 션파보다 내가 업무강도가 훨씬 높아서 집안일을 분담해왔다. 요즘 사람들은 미리 분담을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하는 것 같은데, 나 때는 그런 거 없었다. 게다가 한참 IT업계가 규모를 키워나갈 때여서 10시, 11시라도 집에 오면 다행이지 허구한 날 새벽에 퇴근하니, 션파가 늦은 밤 나를 데리러 오기 바빴다.


그러다 션 태어나니, 퇴근 후 션파가 션 돌봐야 하므로 나는 매번 택시 타고 귀가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처음부터 집안일을 션파가 거의 도맡아 한 케이스다. 사실 신혼 때는 일이 너무 많고 어쩔 때는 스트레스받아 '힘들다'라고 하면 '힘들면  관둬라'라고 하는 바람에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안 하고 살았다. 뭐 힘든 건 사실이었지만, 재미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고, 일하면서 얻는 성취감이 너무 커서 계속 그리 일했다. (결혼한 지 10년쯤 지나니  일하는 와이프를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갈수록 맞벌이를 선호하는 분위기로 바뀐 것도 있고..)


그래도 션파와 집안일 어느 정도 분담 아닌 분담했는데, 션 태어나서부터는 션 교육은 내가, 집안일은 션파가 아예 도맡아 하게 되었다. 나는 몇 시에 퇴근하건 션에게 책 읽어주고 놀아주고 그리 보냈고, 션파도 일하랴 집안일하랴 정신없이 보냈다. 그런데 션이 크면서 점차 션 교육 관련해서 부딪치기 시작한다. 션파 성격이 워낙 차분하고 논리적이고 웬만하면 내가 하자는 대로 두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내편은 아니었다.


션을 주말마다 도서관에 데려가면, 집에 책이 이렇게 많은데 왜 도서관을 가는지 이해를 못 했고, 영어유치원에 보내자고 했을 때도 반대했다. 학교 다니면서 이런저런 학습경험과 대회에 나갈 때도 이해를 잘 못했다. 반면, 우리 가족 먹거리, 위생, 가족 간 여행과 나들이 등에는 고맙게도 신경을 엄청 써줬고 웬만한 주부 능가할 재능과 정성을 보여줬다.


션이 초등학교 가면서 교육 관련 다툼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션이 무언가를 배우거나 대회 준비하거나 하면 션파는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엄마 욕심 아니냐고. 그래서 그때마다 션과 대면하게 해 줬다. 션은 아빠에게 '하고 싶다'라고 했고 또 션에게 약한 션파는 바로 조용해졌다. 그런데 그 속마음은 애에게만 신경 쓰고 자기에게 소홀한 것에 대한 섭섭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점차 학년이 올라가면서 나도 션 교육이 버겁기 시작했고,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게다가 없는 시간 쪼개서 션 교육 신경 써준 것에 대해 션파가 알아주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가족이라도 대화를 하지 않으면 그 속을 일일이 모른다. 반대로 션파가 집안일을 그리 도와주어도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오늘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 역시 제대로 이해해주지 않았다. 그 당시 션파가 그리 애쓴 것에 대해 고맙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간 읽은 책과 정보를 토대로 현재 교육계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 줬다. 우리 때와 뭐가 달라졌으며, 요즘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게 어떤 것인지를 설명해 줬다. 이런 대화를 한 번을 한 것이 아니라 오늘 있었던 일도 포함하여 짬짬이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 무작정 '요즘 이래, 이렇게 해야 해'라고 하면 반발을 사게 되므로 때로는 '의논을 하는 형식'을 취했다. '고민이 있는데..', '이건 어떻게 할까'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니 션파도 진지하게 응해 준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 부부의 교육관이 아니라 션의 성향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울러 나의 일, 션파의 일, 그리고 우리 가족의 미래 이야기까지 점차 더 깊이 있게 나누게 되었다. 집안일 도와주는 건, 고맙다고 종종 이야기해 줬다.


지금도 생각나는 션파의 말들이 있다. 별거 아닌 것들 일 수 있어도 이런 사소한 말이 꽤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자면,


- 남자애들은 엄마에게 그냥 기대고 싶을 때가 있어. 그래서 그런 걸 거야.

- 나이 들면 자연스럽게 고치는 것들은 잔소리하지 말고 그냥 두자

- 저번에 식당에서 보니, 한 외국 꼬맹이가 사고 쳤는데 아빠가 아이 앞에 무릎 꿇고 아이 눈 쳐다보며 끈덕지게 설명하더라. 우리도 그러자


이런 식으로 말해준다. 아마 션이 눈앞에 있었다면 나도 화가 나서 '샤우팅'할 일이 많았을 텐데, 션파와 이렇게 이야기하며 흥분을 미리 가라 앉히니 션에게는 고요하게 대할 수 있었던 적도 많다.


처음 서로 일이 많을 때는 사소한 일로 섭섭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었던 것 같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때였을 것이다. 오랜 세월, 매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 순간, 대화 주제도 엄청 다양해졌다. 지금은 언제 말다툼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웬만한 친구보다 션파와 이야기하는 게 더 재미있고 잘 통한다.


내가 일터에서 함께 일하시는 분들은 90% 이상이 다 남자분이시다. 즉 아빠다.

 이분들 중 상당수가 이런 경우가 많았다.

'왜 퇴근 안 하세요?'-> '애가 시험기간이라 좀 늦게 집에 들어오래요' / '밥 안 먹고 들어가면 와이프가 싫어해요'

'아니, 휴가 내셨으면서 왜 사무실 나오셨어요?' -> '평일이다 보니 집에서 할 게 없어서'

'오늘은 일찍 가시네요' -> '애 라이딩해 줘야 해서'

'주말에/휴가 때 어디 가셨어요?'-> '애가 고3이라 아무 데도 못 가요'

'시험기간이면 친구분들이랑 놀러라도(골프. 낚시) 가시면 되겠네' -> '와이프가 싫어해요'


매번 이렇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저런 말씀 많이 하셨고, 남자들끼리 '나도 이해해'하는 눈빛이 되시는 경우가 많았다. 뭐 현실 아빠이긴 한데, 괜히 짠 했다. 아이들 돌본다고 엄마들이 정신없을 때, 아빠들은 집에서 겉돌거나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나야 엄마들이 집에서 얼마나 힘든지도 알고, 아빠들이 얼마나 외로운지도 알다 보니 괜히 더 마음이 아팠다.


엄마들도 아이들과 씨름을 하며 머리 아프게 입시 준비하는데 이를 알아주지 않은 남편이 야속할 때가 있을 것이고, 아빠들은 일터에서 스트레스받고 와서 퇴근했더니 뭔가 썰렁한 집안 분위기에 리모컨만 찾게 될 수 있다. 이런 세월 몇 해 보내면, 안 좋은 점은 아이들도 아빠를 서먹해 할 수 있다.


사실 남편과 교육관이 다를 때, 남편의 공감을 얻는 건 하늘의 별따기이다. 당연히, 남편들은 '나 때는 안 그랬어, 극성맞기는'이라는 소리를 한다. 반면 남편 몰래 알뜰살뜰 아껴 아이들 교육비 더 쓰고 있는 것이 엄마들이다.


이걸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미래의 가치"와 "현실의 목표"에 대한 GAP 같다. 남편이 생각하는 미래에 필요한 공부를 지금 시키면 좋겠으나, 당장 눈앞의 입시 앞에서 엄마의 방향성이 더 맞을 수 있다. 어쩔 수 없지 않나, 입시전략이 왜 있겠는가. 전략에 맞춰서 공부해도 시간이 부족하니...

그런데 그런 아빠들이 아이 대학 갈 무렵 되니, '애들은 알아서 커, 뭘 그리 신경 써' 하셨던 분들이 후회를 하신다. 이런 후회를 집에서도 티를 내시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부부간 대화 많이 나눴으면 좋겠다. 우리가 대학 졸업하고 나서 사회인이 되면 '칭찬'이라는 건 받을 기회가 없다. 특히 남자들은 더 그렇다. 생각보다 많은 스트레스받은 날조차 티를 잘 안내는 게 남자들 속성이다 보니, 집에 돌아오면 많이 보듬어 주면 좋겠다. 처음만 영리하게 대화를 이끌어 내면 생각보다 쉽게 대화가 풀린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나만 해도 정말 오랜 세월이 걸렸다.


오래 걸리는 게 당연하므로, 아이들 이야기는 홀로 짊어지지 말고 함께 나누면서 조금씩 하면서 점차 맞추어 가면 좋겠다. 희한하게 교육에 관심이 없거나 학원에 반대하는 아빠들도 아이가 어디서 '상'을 타 오거나 성적이 좋으면 입꼬리가 실룩거린다.


세월을 두고 찬찬히 아이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꾸준히 하면 가족들이 서로 소속감도 강하게 생긴다. 그리고 나이 들면 자식 필요 없다! 그냥 내 남편, 내 마눌이 최고다.


ps. 아이 중 사춘기가 격하게 오는 경우가 있다. 이때 엄마 혼자 감당이 힘들다. 미리미리 남편 몫도 조금 떼어주자.




이전 19화 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누구와 가장 많이 해야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