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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지 Dec 31. 2022

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누구와 가장 많이 해야 할까

직장맘의 육아일기

오래된 기억인데, 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던 사람이 언제부터인지 '아이의 친구 엄마'가 되었던 것 같다.

왜 그런 현상이 생겼을 까 돌이켜 보니, 육아에서 '교육'이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같다.

다른 엄마들에게 이런저런 귀동냥도 필요하고, 내 아이 상태도 서로 공유도 해야 해서 생긴 변화다.


아이가 학교를 가게 되고, 점차 공부량이 늘게 되면 많은 집들이 '아이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데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집집마다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엄마와 아빠 모두 함께 관심을 가지는 집,

한쪽 부모, 대게 엄마만 관심을 가지는 집,

엄마, 아빠 모두 관심이 없는 집,

부모의 교육열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집도 꽤 있다.


어떤 스타일이 좋은 지 정답은 없다.

더 중요한 건, 내 아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잘 맞는 가족들 모두에게 잘 맞는 방법을 찾아가면 된다.

다른 집이 어떻게 하든, 그래서 결과가 좋건 나쁘건, 그건 그 집 사정이다. 가정 내에서 생기는 일은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에 그저 '특정 교육관'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공식 같은 건 없다고 본다.


타이거맘이 성공한 집도 있고, 자유롭게 방치한 집이 성공한 사례도 있다. 부모 없이도 자신의 몫을 거뜬히 해 내는 기특한 아이들도 있지만, 전폭적인 부모의 서포트를 받고도 엇나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걸 어떻게 한두 가지 원인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아이를 방치했다고 하면서도 부모가 생활에서 좋은 모범을 항시 보여서 아이들이 그걸 보고 자라서 잘 커준 집도 있는데, 성공 원인을 '방치'해서라고 말하는 건 잘못된 해석이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나도 내가 좋은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고,

션파도 션파 좋은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며,

션도 션 좋을 대로 컸을 뿐이다.

그런데 겨우 셋밖에 되지 않는 단출한 가족임에도 이해가 안 갈 때가 많았고 삐그덕 거릴 때도 많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아이가 성인이 되어 다시 둘이 되면서 각자 선택한 방법에 대해 계속 부딪혀가며 상처가 되지 않게 마모시키며 둥글둥글 살아왔던 것 같다.


아빠가 특별히 교육열이 있고 현재의 교육 트렌드에 관심이 있지 않는 한, 대부분 집들이 아이 교육 문제에 있어서는 부부간 서로 입장차가 상당하다.

아빠들은 과거 자신이 공부했던 경험이 우선인 경향이 크다. 그리고 현재의 교육현실이 영 낯설다.

반면 엄마들은 자신이 공부했던 경험보다 새롭게 수집한 정보에 유연한 편이며, 현실 변화에도 민감하다.


사실 이 둘의 조화가 있으면 완벽한데, 처음에는 이 차이가 너무 크다 보니 싸우는 일이 잦아진다.

게다가 아이들이 크면서 자의식도 생기다 보니 훈육하기가 어려워진다. 아이 다루는 방법을 잘 모르니 야단을 치는 경우가 늘어난다.


그래서 교육에 대해서는 부부가 오히려 입을 닫게 되는 경향이 생기고, 점차 엄마에게 교육을 일임하고, 엄마는 변화하는 교육에 쫓아가려니 벅차게 된다.

남편에게 이야기하면 "그냥 내버려 둬, 자기 알아서 하게"라고 말하니, 친구 또는 다른 엄마와 함께 한숨 쉬며 이 사태를 극복할 머리를 모아 본다.  안주로 남편들의 무관심이 아닌 '무지함'을 씹으며..


생각해 보니 나도 이 과정 겪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였나 보다.

영재원에, 각종 대회, 경시 등이 쏟아지는데, '그렇게 까지 다 해야 하나?'부터 남편과 입장차이가 컸다.


경시준비 때문에 학원에 보내면서 갈등이 심해지기도 했다.  다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웃으며 서로를 보는 날이 줄어들었고, 션을 볼 때도 '숙제 다했나?'는 시선이 먼저 내 표정에 드러났다.


불편한 대화가 있을 것 같으면 점점 피하게 되던 어느 날 불현듯

"아니, 우리 자식 이야기를 왜 남편하고 안 하고 남과 더 많이 하는 거야?"를 깨달았다.


그래서, 남편과 대화를 더 많이 늘였다.

지금 바뀐 교육현실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기도 하고, 나의 고민도 이야기하기도 했다.

남편의 생각도 들어보고, 아이에 대한 이야기도 서로 나누면서 좀 더 입체적인 이해도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으나, 점점 대화가 늘다 보니 아이 이야기에서 벗어나, 우리 이야기, 우리 가족의 미래 이야기까지 넓혀졌다.

그리고 교육에 대해서도 공감대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대학을 보내자가 아니라, 션이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에 대한 공감대였다.


션파는 교육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션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 이야기를 하면 항상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의견을 줘서, 내가 중심을 잡게 해 줬다.

그게 그리 대단한 말도 아니고 일반적이며 보편타당한 의견인데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다. 내가 고민에 빠져 주변을 둘러보지 못할 때 잠시 나를 수렁에서 끄집어내서 한 템포 쉬게 해 줘서이다. (엄마들이 이런 수렁에 잘 빠진다.)


그런데, 션파의 이런 조언을 내가 두말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션파는 교육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아들에 대한 관심'이 커서이다.

션파는 션을 바라볼 때 '특별함'보다 '그 나이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평균적인 행동에 부합하는지'에 더 초점을 둔다.

그래서 학업적인 부분에서 잘하는 것은 그리 관심 없고, 나이에 비해 너무 처지는 행동발달에 대해 어떻게 부모가 대해줘야 할지, 얼마나 기다려 줘야 할지를 생각한다.

이것이 션파가 교육에 관심 없는 이유다.


아마도 션파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나도 "우리 남편은 자식 교육에 관심이 없어.", "아니 때가 어느 때인데 옛날 자기 공부했던 방식을 이야기해?", "말하면 못하게 할 테니, 그냥 조용히 내가 시키자" 이랬을 수 있다.


오랜 세월 이야기 나누고 또 나누고, 그 과정에서 서로 생각도 맞춰보고 의견도 들어보면서 아빠의 의견이 정말 중요하구나를 알게 되었다.


일터에서 간혹 아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들어보면 엄마들과의 대화에서 배울 수 없는 좋은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비록 교육에 대한 팁이나 전략은 아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리고 사회생활까지 연결되는 큰 그림이 맞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그래도 각자 몇십 년 살면서 체험한 경험이 우러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붙어서 오답노트를 만들어 주네.

우리 아내는 심지어 옆집과 품앗이해서 과목별 요약까지 해 줘요.

시험기간에 왜 집에 애랑 꼼짝을 안 하고 있는지 원..


일터에서 이런 말을 아빠들에게 듣는다. 부부가 가끔씩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물론 당연히 싸울 수 있다.

하지만 대화를 자꾸 나누다 보면 점점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생각에 대해 수정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부부'의 아이인데, 남과 의논하는 게 더 부자연스럽다. 그 누구보다 아이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옆집 엄마가 아니라 아이의 엄마와 아빠여야 한다.  


멀리 떨어진 아들과 통화 후에,


우리 부부 또 대화의 꽃을 피웠다.

그동안 우리 부부의 대화 주제는 아들의 교육이 아니라 '아들 관찰기'였나 보다.

아이들은 자꾸 바뀐다. 오늘의 션은 어제까지 알고 있던 션이 아니다.

그리고 션은 아직 미완성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미완성이고 바뀌고 있다. 단지 우리는 그 변화가 워낙 더뎌서 모를 뿐이지.

그래서 가족 간에 계속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 변화를 끊임없이 공유할 수 있도록.



아이 키우면서 힘들어하는 엄마들이 참 많다.

내 마음대로 안되어서도 있으나, 남편의 도움은커녕,  공감을 못 받아서도 크다.

남편과 대화를 계속 나누라고 하면 이 또한 부담이 될지 모르겠으나, 나의 경험 상 시간이 갈수록 좋았다.


친구보다 남편을 자꾸 찾게 되는 이유다.


ps. 내 블로그에는 아빠들도 많이들 방문해 주시는 것 같아, 아내 마음, 남편 마음 왔다 갔다 하는 글 써봤다. 뭐든 힘들다는 건 그만큼 나중에 열매가 달다고 기억하자.

대화는 힘들다! 그리나 열매는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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