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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지 Aug 22. 2023

누군가의 경험이 도움이 되는 이유

직장맘의 육아일


션이 태어나고 나서 회사에서 역할은 커지고 일이 어찌나 많던지 일과 육아 병행을 어찌해야 할지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육아휴직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롤 모델'이 없을까 레이더망을 켰었다. 나보다 연차가 많으신 분, 이미 임원을 하시는 분 등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는지 여쭈어도 보고 이야기도 들어봤었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절망 섞인 이야기들만 해 주셨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제대로 된 육아나 교육은 포기해야 한다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이를 제대로 돌볼 시간이 없어서 친정집, 언니네 집 등에 아예 보내고 주말이 되어서야 가족이 다 모이는 집들도 제법 있었다.


IBM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당시 씁쓸한 농담도 돌았다.  

남자가 IBM 다니면 아이들이 다 잘 되는데, 여자가 IBM 다니면 아이들은 막 나간다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다들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했으니 아빠가 IBM에 다니는 경우 아내의 내조를 받는 경우가 많았으나, 여자들이 IBM 다니는 경우는 맞벌이였기 때문에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 아빠 모두를 못 보게 되어 부모에게 받을 수 있는 세심한 관심을 모두 놓치게 되어서다.


한 몇 년 '그래도 롤 모델 있을 거야' 하고 눈에 불을 켜보다가 결국 포기했다. 희귀하게 극소수 성공사례가 등장하기는 했는데 그 바쁜 와중에 부모가 많은 신경을 썼겠지만,  어느 집에 데려다 놔도 혼자 알아서 잘 해내는 스타일의 아이였다.


워킹맘 사례는 접어두기로 하고, 책에서 전문가들이나 선배맘들이 전해주는 육아/교육 사례를 읽어보고 흉내를 내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에서 하라는 방법은 죄다 '엄마교육'이었다. 엄마가 되는 일이 쉬운 것이 아니나 따로 가르쳐 주는 곳은 없다. 생물학적인 엄마는 되었으나 화학적인 엄마가 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낳기만 한다고 엄마가 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여느 초보 엄마들처럼 나 역시 엄마가 되기 위해 기본 레벨 아이템부터 하나씩 장착해 나가기 시작했다. 책에서 말하는 방법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공부법과 비교하자면 '예복습을 철저히 하세요' 수준이라 나에게, 그리고 내 아이에게 맞는 족집게 비법은 아니었다. 내 아이 맞춤형 육아, 교육은 결국 부모 몫이었다. 아이 나이 맞춰가며 엄마 연차도 함께 올라가였고 그때마다 엄마로서 새로운 미션들이 주어졌다.


그런데, 교육에 있어서는 추가로 꽤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정보도 많이 필요했고, 아이에 맞는 방법을 잘 찾아야 했다. 남들 따라 할 게 있었고, 남들 따라 했다가 낭패를 볼 것들도 있었다.

아이를 처음 키우는 데다 친척들도 죄다 나이차가 나서 아이가 나이마다 어떤 성장과 발육과정을 가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는 키야 평균키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만 그 외에는 빠른지, 느린지도 알기 힘들었다. 션이 한글을 뗀 것이 두 살 때였는데 션만 바라보다 보니 아이들이 모두 이맘때 글을 떼는 줄 알 정도로 무지했다. 션이 매번 쪼그리고 앉아서 그림 그리고 레고 만들기를 했는데  5살 정도가 되어서야 여느 아이들처럼 뛰어놀지 않는 스타일이구나를 알아챘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육아/교육 카페도 가입해 보고 선배맘 블로그는 없는지 찾아봤다. 그렇게 이런저런 간접경험을 해 나가던  중 블로그 하나를 발견했는데 션보다 몇 년 일찍 태어난 누나를 키우는 이야기다. 잘하는 아이 사례가 궁금했는데 야무지고 똘똘한 아이였다.

아빠가 운영하는 블로그로 아이 키우는 이야기가 많지 않아도 있었다.  

션은 남자아이에 문이과 성향 모두 있는 경우고, 그 아이는 여자아이에 전형적인 문과 성향이어서 많이 달라서 '정보'를 얻기에는 가는 길이 다를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아무런 정보도 없던 나에게 단비와 같은 블로그였다.


뛰어난 아이 어서 몇 학년에 토익을 만점 받고, 몇 학년에 어떤 상을 받았는지 글도 꽤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 어떤 대회가 있는지, 그 나이 무렵에 어느 수준으로 해야 잘하고 있는 건지, 그런 감조차 없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지표가 될 수 있어서다.  일단 이런 대회가 있구나만 알아도 그 대회를 조사해 보면 관련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션이 어릴 때 김연아 선수가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아서 '하늘의 별'이 따는 상인가 보다 하고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블로그를 지켜보는 중 그 누나가 자라서 스스로 어는 저런 봉사활동을 하더니 대한민국 인재상을 따는 것을 보고, '아, 뭐가 되었건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꾸준히 하다 보면 이렇게 대한민국 인재상도 받을 수 있는 거였구나'를 알게 되었다.

나중에 보니,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는 학생들 중 운동선수가 매년 한 두 명 있는데 이 학생들은 해당 종목에서 탁월한 성취와 업적을 보인 경우, 예를 들어 올림픽이나 아시안 대회 메달리스트였다. 이런 학생들과 비교하면 나처럼 문턱이 턱없이 높은 것으로 오해를 하기 쉽다.

이런 식으로 몇 가지 굵직한 대회의 '존재'를 알게 된 것만 해도 큰 도움이 되었고, 이미 누군가가 해 낸 경우이기 때문에 '한번 해 보자'하는 마음도 먹게 되었다.


롤 모델을 찾고자 했던 이유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누군가가 해 낸 일이라면 나도, 내 아이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고자 함이었다.

아이들 상황이 서로 많이 다르긴 했지만 아예 모르는 미지의 세계의 누군가를 상상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 블로그는 누나가 대학생이 되면서 문을 닫았다. 개인 정보 관련 사항은 모두 숨겨서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내 블로그는 반대다. 션이 어릴 때는 글들을 숨겼다. 내가 일하는 동안 션과 떨어져 있어서 션을 보호할 장치가 없어서가 가장 큰 이유다. 정작 나는 바빠서 블로그를 가지도 못하는데 모르는 불특정 다수에게 별 장치 없이 오픈되어 있었다.

또 하나는 어릴 때 뭔가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그 당시 잠깐의 반짝임이다. 앞으로 갈 길이 멀기에 그 순간순간의 결과에 우월감을 가지는 것도 경계하는 것이 좋다. 어릴 때 괜한 시선을 받아서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보여주려고 쓰는 글이 아니었고 가족 기록이었기 때문에 글은 감추었으나 꾸준히 글은 남겼다.


그러다가 션이 성인이 되어 션의 동의하에 글을 풀었다. 물론 이제는 어느 정도 우리 각자 스스로 보호할 수 있어서이기도 했다.


가끔 댓글로 션 형/오빠가 하는 걸 보고 자신감 얻고 도전해서 좋은 결과 얻었다고 근황을 알려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럴 때는 나도 옛 생각이 나서 정말 축하해 드렸다.

아이의 성취를 떠나 엄마, 아빠들이 부모 마음에 대한 공감을 해 주시는 경우도 많았다. 이럴 때는 괜히 동지애도 생긴다.


나도 션 키우면서 앞이 막막할 때 인터넷에서 뒤지고 뒤져 질문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과한 친절을 받았다. 짧은 글에서 큰 위로받은 적도 있다.

그 보답을 나 역시 후배 맘들에게 하고 싶었. 비록 어설픈 육아, 교육관이긴 해도 나의 경험이나 생각이 어떤 분들에게는 도움이 되면 좋겠다 싶어서 이 글, 저글 생각나는 대로 남기고 문의 오면 답변해 드린다.

오래전, 멘토를 찾으려 하고, 롤 모델을 찾으러 애썼던 때가 문득문득 떠오른다.

이렇게 남기는 글들 중 단 한 줄이라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 준다면 내가 책에서, 인터넷에서 받았던 호의를 돌려주는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나의 경험을 나누는 것은 생각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https://blog.naver.com/jykang73/22297683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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