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소품을 만들며, '열두 달 이야기'를 담은 달력이 벌써 3번째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일 년 동안의 노력을 기록한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요. 소품에 다양한 감정들이 들어가며, 어느 순간, 달력은 일 년을 변함없이 지켜봐 주는 든든한 친구가 되어 있었습니다. 좋은 일에는 기뻐하고, 힘든 날에는 위로를 전해주는 동반자 같다고나 할까요?
달력 만든 지 3년 차인 올해에는, 처음 시도해 본 자그마한 생활 습관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독서의 생활화'인데요. 일과삶 작가님이 진행하는 '매일 독서 습관 쌓기'에 인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창 시절 이후, 독서는 해야 할 우선순위에 밀려 늘 뒷전이었는데요. 한 해 동안 92권의 책을 읽고, 간단하게나마 독후감까지 기록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합니다.
당연히 읽은 책 내용을 잊어버리고, 전혀 생각나지 않기도 합니다. 무의식 속에 남아,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하고요. 그러나 작가의 문장을 읽으며 감정이 전해져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생각이 정리되는 계기가 되었으니 참여하길 잘했다 싶습니다. 생각하는 습관이 소품에도 담겼겠지요.
하루의 루틴이 정착된 것도 올해 겪은 변화 중 하나였습니다. 새해 첫날, '좋은 루틴을 갖는다는 것, 나의 한해를 다져 줄 거다'란 다짐을 일기에 썼는데요. 습관을 잘 지키려고 무리하지 않는 눈높이 루틴을 만들었어요. 예전에 지나치게 빽빽한 계획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우다 지쳐 버린 적이 많았거든요. 하나의 루틴이 수월해지면, 또 한 가지씩 추가하는 방법을 사용했더니 할만했습니다.
이 글을 쓰며, 1월 1일에 쓴 일기를 다시 펴보니, 거의 실천 중이어서 신기했습니다. 새벽 기상을 못 했는데, 오전 6시 기상도 습관이 되고요. 매일 루틴(일기, 독서, 산책, 글쓰기)과 일주일에 한 번 체육관 가서 운동하기, 북클럽등 정해진 루틴의 대부분을 지켰습니다. 꾸준히 만든 소품도 마찬가지이고요. 단조롭고, 미미한 매일의 습관이었지만, 모이니 나를 지키는 작은 힘은 된 거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어쩌면 강력한 변화를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가져보게 됩니다.
반면,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스스로는 충실하게 보냈지만, 주위 사람과는 시간을 자주 갖지 못했습니다. 은퇴하면, 여유가 생겨 더 만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어요. 가족과 공식적인 모임 외에는 외부 활동도 현저히 줄었는데요. 그래서인지 외롭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습니다. 물론 친정과 시댁 가족들, 절친의 대부분이 한국에 살고 있는 이유도 있긴 합니다만, 자초한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외로움은 삶은 전반적인 부분에서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자기 초점 적 사고(Self-centeredness)를 증가시킨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요.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하지원) 명심하고, 앞으로 개선해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한 해를 보내며, 잔잔한 삶 속에서 최선을 다했음은 인정합니다. 삶이 그렇듯이, 사랑하는 가족이 아프기도 했고, 계획대로 되지 않아 속상한 날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작은 달력 속의 소품을 보며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참 예쁘다! 잘하고 있어! 힘내!"라고요. 향기를 남기고 떠난 자리에는 새로운 '열두 달 이야기'가 놓이겠지요. 새해에는 그동안 다져진 좋은 루틴은 계속하며, 소홀했던 관계에도 좀 더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내년 이맘때쯤, 미소 지으며 바라볼 수 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