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하'란 단어를 아시나요?
'아주 보통의 하루'란 뜻으로 김난도 교수님의 『트렌드 코리아 2025』년에 소개된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소한 현재의 삶을 중시하는 '소확행'이란 트렌드가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끝없는 경쟁보다는 현재 삶의 질에 관심을 두는 행복관에 공감했는데요.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단어는 2018년, 일본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랑겔한스 섬의 오후』수필에서 처음 선보입니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은 속옷이 쌓여있을 때’ 등....일상 속 작은 즐거움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인데요.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많은 사람이 SNS를 하며 소확행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소한 생활의 즐거움'에서 시작된 소확행이 나를 위한 '작은 사치'....명품쇼핑, 고급 레스토랑, 화려한 여행 등으로 바뀌고 작은 행복마저 남과 비교하는 문화가 생겼는데요. 값비싼 소비를 자랑하는 게시물이 넘쳐나면서 많은 사람이 박탈감과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아보하'는 '무탈한 하루를 보내며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의미로 많은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SNS상에서도 #무탈#보통#평범 등의 키워드가 많이 언급된다고 합니다. 누구나 느끼는 것은 비슷하단 생각에 위로와 안도감이 들었는데요. 저 또한 평범한 일상이지만, 하루 중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여럿 있었습니다.
#1
며칠 전, 거실에서 소품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자연광에서 사진이 예쁘게 나와 하얀 커튼을 젖히는 순간, 집 앞 오래된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다 못해 하늘까지 타오르고 있었어요. 길가에서 집안이 보인다고 커튼을 항상 쳐놓아서 잘 못 봤거든요. 분명 우리 집인데, 처음 본 듯한 생소한 광경에 넋 놓고 황홀한 불길을 바라보았습니다. 늦가을을 느끼고, 만끽할 수 있는 하루에 감사했습니다.
#2
이른 저녁을 먹고 남편과 동네 산책을 하고 있었어요. 낙엽의 감성 때문일까요? 문득, 5년 전에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다녔던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다행히 완치는 됐습니다만, 그 당시엔 낙관적이지만은 않았어요. 다시 건강해진다면, 감사하고, 아등바등하지 않겠다! 란 다짐을 수도 없이 했는데요. 어느새 또 잊고 있었어요. 그때가 생각나서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묵묵히 걷고 있던 남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여보, 우리 둘 중 한 명이라도 아프면, 그때처럼 산책을 못 다니겠지?"
"당연하지!"
"그러니까 아무 일 없이 걸을 수 있다는 것도 감사고 축복이야. 그지?"
"그럼! 그러니 건강하라고! 밥 잘 먹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평범한 부부의 진부한 대화였지만, 서로의 마음이 전해져 따뜻했습니다.
#3
미국은 11월 마지막 주에 추수감사절 연휴가 있습니다. 한국의 추석처럼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인데요. 저희는 자식들이 가까이 살아서 간단히 보내다가 올해엔 터키도 굽고, 정성껏 식사 준비를 했습니다. 번거로워도 가족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두 딸과 사위, 그리고 남편....조촐하지만, 서로 도우며 즐겁게 지냈는데요. 뒷정리까지 다 끝내고, 단풍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커피를 마시며, 뿌듯한 행복감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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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최인철 교수의 『아주 보통의 행복』이란 책의 서문에서는 '행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우리는 늘 특별한 행복, 예외적인 행복, 미스터리한 행복을 바라지만 그런 건 없다. 행복은 ‘내 삶을 사랑하는 정도’다. 딱 그 정도로만 이해하면 된다. 진정한 행복은 아주 보통의 행복이다."
매일의 삶이 늘 특별할 수는 없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고군분투하다 낙심되었을 때, 또 여러 이유로 늘 해오던 일상을 할 수 없을 때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무탈한 하루, 어쩌면 내놓을 것 없는 하루, 평범한 하루'가 눈물 나게 그리운 하루였음을요. '아보하' 의 행복 찾기를 꾸준히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숨겨져 있는 행복을 어디선가 찾을지도 모르겠어요.